지금 진주가 품은 새로운 야심
어느 때보다 친환경적이고 창의적이게. 진주가 돌아왔다!
하얀 셔츠 깃 위에 걸치거나 여성스러운 더블 코트 네크라인 아래 살짝 흘러내리는, 세심히 계획한 것이 아니라 무심히 걸친 것 같은 미우미우의 진주 목걸이 한 줄은 패션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과 같았다. 밀라노의 크리에이티브 파워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F/W 런웨이에서 선보인 건 (쇼 노트에 설명했듯) “옷의 어휘,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까지”. 프라다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진주의 르네상스다.
과거에는 다소 보수적이었던 목걸이가 이제 도발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진주에는 단아함과 함께 왕족의 에너지가 있으며, 룩을 즉시 우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타일리스트 홀리 화이트(Holly White)는 말한다. 그녀는 <샬럿 왕비: 브리저튼 외전>의 런던 시사회에서 영국 배우 인디아 아마테이피오(India Amarteifio)에게 진주로 덮인 사비나 빌렌코(Sabina Bilenko) 드레스를 입혔다. 진주로 치장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아르마다 초상화(Armada Portrait)를 보는 것처럼 이 룩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전 영화의 우아한 여주인공이 떠오른다.
중세 시대에는 진주를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진귀한 보석이자 장엄한 힘의 상징으로 여겼다. 로마인들은 계층에 따라 진주를 애용했고, 도덕적으로 자제를 권장하는 사치 규제법도 있었다. 늘 귀중한 대접을 받던 이 보물은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다. 1947년 출간한 <진주(The Pearl)>에서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진주는 사고였고, 진주를 발견하는 것은 신이 등을 살짝 토닥이는 것 같은 행운이었다”고 썼다. 굴 껍데기 안에서 신비롭게 생겨나고 잠수부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본 진주의 가치는 한때 매우 높았다. 까르띠에 메종은 두 줄짜리 빈티지 진주 목걸이를 재계 거물 모튼 프리먼 플랜트(Morton Freeman Plant)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뉴욕 5번가 맨션을 인수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양식 진주는 10년 동안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1908년 진주 생산을 민영화하고자 했던 일본 기업가 미키모토 고키치(Kokichi Mikimoto)는 특허 기술을 통해 진주를 팝콘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코코 샤넬이 재빠르고 즐겁게, 양식 진주를 활용해 주얼리를 선보였지만 전반적인 진주의 명성은 그만 초라해지고 말았다. 더 이상 진주는 위대함과 선함의 휘장이 아니라 1960년대 미국 배경의 드라마 <매드맨>의 전형적인 주부 베티 드레이퍼처럼 교외의 권태로움을 상징했다.
진주가 다시 멋있어질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이 있으니까요.” 혁명적인 진주 디자인을 내세운 주얼리 브랜드 타사키의 야마다 요시카즈(Yoshikazu Yamada) 최고 경영자는 확신한다. 이 일본 브랜드의 디자인은 진주를 일렬로 나열해 질서 정연하게 표현하거나 트로피처럼 펜던트 하나로 다루는 대신 진주를 반으로 자르고 금으로 감싸는가 하면, 구멍을 뚫고 스터드를 박는 등 파격을 시도했다. (벨라 하디드가 타사키의 더블 혼(Double-horn) 진주 귀고리와 흰색 진주 커프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브랜드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쿤은 아식스 GT-2160 위에 뾰족한 가닥과 섬세한 아코야 진주 케이지를 매달아 고지식한 진주와 평범한 스니커즈를 ‘럭셔리’하게 바꿔놓았다.
한편 많은 독립 디자이너들이 진주를 시그니처로 받아들였다. 원형을 제외한 모든 유기적인 형태의 바로크 진주는 완벽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주얼리 브랜드 알리기에리(Alighieri)의 중심이며, 잇걸즈(It-girls)의 주얼리 박스는 소피 빌레 브라헤(Sophie Bille Brahe)의 눈처럼 하얗거나 다양한 크기의 진주 다발로 만든 장밋빛 진주 귀고리가 없다면 완성되지 않는다. 타사키와 자주 협업하는 디자이너 멜라니 조르가코폴러스(Melanie Georgacopoulos)는 오직 진주나 자개로만 작업하며, 이 재료들을 사각형으로 자르고 표면을 깎는다. 수많은 진주를 산화된 은사슬에 엮은 망토는 그녀의 가장 야심 찬 디자인 중 하나다.
“까르띠에는 항상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진주를 사용해왔습니다.” 까르띠에의 이미지, 스타일 및 헤리티지 책임자인 피에르 레네로(Pierre Rainero)는 까르띠에 ‘클래시’ 컬렉션의 중심이 되는 반짝이는 은색 타히티 진주를 언급하며 말했다. 또 디올 하이 주얼리 ‘디오라마 & 디오리가미’는 흰색과 분홍색 진주가 눈처럼 뿌려진 동화 같은 풍경을 묘사하며, 나폴레옹이 좋아한 보석상 쇼메의 최신 작품인 ‘쇼메 앙 센’에서는 회색부터 금색까지 모든 색조의 해양 보석이 등장한다.
올 초 지속 가능한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레드 카펫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착용한 정교한 진주 보디 체인은 루이 비통의 주얼리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암피시트로프가 천연 진주의 위태로운 미래, 특히 깨끗한 바닷물에 대한 필요성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디자인이다. 환경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프라다 역시 재활용 프로젝트를 통해 기성복, 보석 및 뷰티 제품을 위해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미우미우의 F/W 런웨이를 장식한 진주는 현재 지구의 암울한 생태계를 신랄하게 상기시킨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VK)
- 글
- Milena Lazazzera
- 사진
- Cecil Beaton, Peter Carapetian, ©Amc, Everett Collection, COURTESY OF LOUIS VUITTON, TASAKI, BVLGARI, CARTIER, Melanie Georgacopoulos, Gorunway.com
- 일러스트레이션
- Georges Lep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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