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K-주얼리 시대를 이끄는 한국의 하이 주얼러 4인

2024.11.11

K-주얼리 시대를 이끄는 한국의 하이 주얼러 4인

독창적인 미학으로 ‘K-주얼리’ 시대를 이끄는 한국의 하이 주얼러 4.

PANACHE CHASUNYOUNG

브랜드명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파나쉬는 투구 위의 깃털 장식을 뜻한다. 투구는 강인한 메탈로 만들지만 투구를 장식하는 깃털은 우아하고 부드럽다. 투구와 깃털의 이질적인 대비가 내가 만드는 주얼리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주얼리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발레나 뮤지컬 같은 무대에서 사용하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었다.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과거의 주얼리 디자인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마냥 예쁘기만 한 주얼리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주 오래전 주얼리 양식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는 편이다. 파인 주얼리 ‘콜레트’ 컬렉션은 조지 왕조 시대의 콜레트 세팅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이다. 당시에는 은으로만 제작했지만, 금으로 소재를 바꿔서 완성했다.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는 곳은?

비잔틴 스타일을 좋아해서 비잔틴 시대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최근에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책 <Type: A Visual History of Typefaces and Graphic Styles>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아주 오래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펴보며 폰트가 그 영역을 크게 뛰어넘는 것을 발견하고 상당히 흥미로웠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파나쉬 차선영에 미치는 영향은?

산호나 비취, 자개 같은 원석을 자주 활용하는데, 이것은 내게 ‘서울스러운’ 원석이다.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등은 어딘가 서양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파인 주얼리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

데님과 어울리는 주얼리를 만드는 것. 모든 사람이 매일 이브닝 드레스에 주얼리를 착용하는 건 아니니까.(웃음) 결국 일상에서 자주 착용할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값비싼 원석을 휘황하게 세팅하는 것보다는 살짝 힘을 빼서 완성하는 것을 추구한다.

메달 작업도 했다.

런던에서 지낼 때 만든 메달은 대영박물관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서울 명예 시민 메달’이다. 외국 귀빈이나 왕족이 서울에 오거나, 서울에 크게 기여한 외국인에게 주는 메달을 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원석은 무엇인가?

자개를 제일 좋아한다. 자개를 비롯해 터키석이나 산호, 오닉스 등은 너무 투명하고 반짝이는 보석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지적이고 묵직한 위엄이 있다. 강렬한 빛을 뿜지 않는데도 훨씬 더 존재감이 크달까?

주얼리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결국 스스로를 잘 아는 것에서 독창적인 디자인이 탄생한다.

한국의 주얼러로서 지닌 사명은?

한국의 주얼리 제작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다. 주얼리를 만드는 장인이 존재해야 주얼리 브랜드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SALLY SOHN


작곡을 전공했다. 주얼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이어가다 우연히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를 방문한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보석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사실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17년을 이어온 공부를 접고 과감히 진로를 바꿀 정도로 말이다. 보석에 대해 파고들면서 스토리텔링에 바탕을 둔 디자인을 꿈꾸게 됐다. 2000년 전 고대 로마와 이슬람, 비잔틴 시대에 만든 도자기 구슬을 꾸준히 수집했고, 여기에 골드와 에메랄드, 루비 등으로 완성한 원석 볼(일명 ‘샐리 볼’)을 고무줄로 연결해 팔찌를 만든 것이 ‘고대 비즈(Ancient Beads)’ 컬렉션의 시초다.

한국 주얼리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버그도프 굿맨과 니만 마커스에 입점했다.

그렇게 만든 첫 팔찌를 국내에 먼저 제안했지만, 고가의 원석을 저렴한 고무줄로 엮은 것에 부정적이었다. 주얼리 시장이 큰 미국에서는 오히려 신선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았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디자인으로 2007년 버그도프 굿맨에 입점했고, 첫해에 파인 주얼리 부문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좋은 반응을 보이자 이듬해 니만 마커스에서 연락이 왔다.

시그니처인 ‘펜슬(The Pencil)’ 컬렉션은 어떻게 탄생했나?

아버지에 대한 향수가 담긴 주얼리다. 미국에 있을 때 아버지가 보내신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꾹꾹 눌러쓰신 것을 보고,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도구인 연필, 그리고 그 기록이 추억이 된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아 가족에 대한 향수를 영원한 보석으로 남기고 싶어 ‘펜슬’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특히 몽당연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지 않나. ‘펜슬’ 귀고리는 매일 착용하는 주얼리 중 하나다.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보석에는 역사, 문화,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맥락이 담겨 있다. 따라서 보석을 해석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나는 디자인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주얼리의 주인공은 결국 그걸 착용하는 사람이기에, 그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할 때 가치 있는 보석이 된다.

샐리손 주얼리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당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세요(Be the author of your life)!”가 샐리손의 모토다. 내 주얼리를 통해 자신을 더 특별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결국 자신을 믿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샐리손 주얼리의 모든 컬렉션은 하이 주얼리가 가장 먼저 완성된다는 거다. 최근 선보인 ‘십자가’ 목걸이 역시, 하이 주얼리 버전 펜던트의 중앙 모티브만 따로 떼어 파인 주얼리로 만들었다. 참고로 샐리손은 남녀 모두가 함께 착용하는 주얼리다.

지난해 한국으로 거점을 옮겼다.

코로나19로 예기치 않게 한국에 체류한 게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국내에 길게 머물면서 국내외 주얼리 시장의 움직임을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그때 한국이 문화, 예술,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일이 가속화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서울에서 정식으로 샐리손 주얼리를 선보이며, 그간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영감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주얼리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보석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주얼리 리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지면서, 비스포크 트렌드가 지속되고 있다. 기존 주얼리를 주문자의 개성과 필요에 따라 새롭게 세팅해 또 다른 생명력을 갖게 만드는 일은 보석의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다. 보석이 지닌 사연, 본연의 가치에 대해 주얼리 소유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개인적인 친분이 쌓이기도 해서 재미있다.

주얼리를 처음 구입하는 사람에게 당부할 메시지가 있다면?

그저 크고 화려한 보석이 아니라, 자신을 빛나게 하는 보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고가일수록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TANA CHUNG

인생 첫 번째 주얼리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 주얼리는 어머니께 받은 것이다. 부모님께서 여행 중 사온 루비 원석으로 나와 언니에게 나비 모양 반지를 만들어주셨다.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 취미로 방송사 몇 군데에서 리포터로 활동했다. 의상은 정해져 있었지만, 주얼리는 마음대로 착용할 수 있었다. 그 스타일링에 재미가 붙자 더 새롭고 독특한 주얼리를 찾다가 직접 디자인을 하게 된 것이 타나 정의 시작이다.

‘남다른 아름다움’을 뜻하는 브랜드명 ‘타나(他娜)’는 현재 본인 이름이 되었다.

색다르면서 아름다운 주얼리를 찾다가 직접 만든 것을 계기로 탄생한 브랜드의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나. 본명 정현정 사이에 미들 네임으로 넣었다. 결국 내 이름을 지은 셈이 되었다.

타나 정에서 처음 선보인 주얼리는 무엇인가?

직접 손으로 작업한 꽃잎 모티브의 자개 귀고리. 솔직히 반은 재미로 시작한 디자인이었는데, 브랜드 시그니처가 되어버려서 주문 수량을 맞추느라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귀고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최근에 완성한 주얼리는?

최신 컬렉션 중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섞어 화려하게 디자인한 귀고리다. 스터드로도 착용할 수 있다.

실제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

뉴욕에서는 모든 것이 영감이 된다. 그게 인물일 수도, 공간이나 계절, 향기일 수도 있다. 무언가 떠오르면 바로 스케치로 옮긴다. 그림만 계속 그리는 거다.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팀과 함께 디테일을 정하고 제작에 돌입한다.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착용자와의 조화. 주얼리가 아무리 예뻐도 착용자와 조화롭지 않다면 잘된 디자인이 아니다. 그래서 내 스케치를 종종 오려서 목, 귀, 손등 위로 더덕더덕 붙이곤 한다.

하이 주얼리를 만드는 과정은 좀 더 특별한가?

하이 주얼리는 의뢰받은 스톤의 성격에 따라 디자인하기도 하고, 막연히 떠오르는 머릿속 영감을 바탕으로 어울리는 스톤을 소싱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의뢰자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어도 자주 착용하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하니까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의 등장이 큰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가 암울했던 팬데믹 기간에 에밀리가 등장했다. 캐릭터 특유의 밝은 에너지에 순식간에 모두가 매료되었다.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타나 정 주얼리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호주에서 날아온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약혼녀가 에밀리 팬이라 그녀가 자주 착용한 목걸이를 청혼할 때 꼭 선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프라이빗 트렁크 쇼를 진행했다.

오랜만에 진행하는 국내 행사여서 조금 긴장했는데, 한국 주얼리 시장의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선 주얼리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가 높아졌고, 관심이 훨씬 커졌다. 예전이었으면 과하다고 여겼을 디자인도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 홍콩과 방콕에서도 트렁크 쇼를 준비 중인데,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타나 정 주얼리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온라인을 통해 일부를 판매할 계획이 있지만, 실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 내 디자인을 착용한 모습을 보면 디자이너로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면 메일로 문의해주기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제 무엇을 할 예정인가?

사실 오늘이 16주년 결혼기념일이다. 아들의 수영 대회가 끝나면, 온 가족이 함께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자축할 거다.

SUEL

브랜드명에 담긴 의미는?

나의 이름 ‘Sujin Lee’에서 따온 영문 알파벳을 조합해 브랜드명을 만들었다.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 웰즐리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술을 부전공했다. 이후 뉴욕 주립 패션 공과대학교(FIT)에서 주얼리 디자인과 주얼리 스튜디오 전문가 과정을 공부했다. 내가 만든 주얼리를 자주 착용하곤 했는데, 어느 날 잠시 들른 편집숍 대표가 나의 주얼리에 관심을 보이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지키는 디자인 철학이 있다면?

섬세함! 주얼리에서 각도와 세팅의 높낮이, 굴곡과 두께는 아주 사소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수엘에 어떤 존재인가?

서울은 매우 복잡한 도심과 푸르른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곳이고, 삭막하면서도 인간적인 곳이다. 수엘도 차가운 물성의 소재로 따뜻한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주얼리가 되길 원한다.

주얼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디자인부터 원석을 찾는 과정, 제작 과정 모두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해야 처음에 원한 모습으로 완성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작업이 궁금하다.

몇 달 전, 고객분의 의뢰로 작은 달걀 크기의 타원형 오팔로 목걸이를 만들었다. 오팔이 지닌 광채와 개성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지 오래 고민했다. 오팔의 매력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최고 등급의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를 구한 후 오팔 주위에 장식했다. 제작 기간이 3개월 정도 걸렸고, 의뢰하신 고객분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지금까지 만든 주얼리 중 제일 아끼는 제품은?

시어머니가 주신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내가 직접 만든 결혼반지.

올해로 론칭한 지 19년이 되었다.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

지금까지 수엘은 천연 다이아몬드만 사용해 주얼리를 제작했다. 하지만 요즘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원석 크기에 대한 제약이 있는 반면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크기에 대한 한계 없이 작업이 가능하다. 이런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크기로 만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캡슐 컬렉션에 도전해보고 싶다.

수엘의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클래식한 아름다움. (VK)

    에디터
    김다혜, 신은지
    포토그래퍼
    진소연, 원범석, Graham K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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