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숨
수영인이라 자부해온 나는 한동안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먹고사는 일의 분주함과 고단함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일상을 건강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수영을 해서 건강해지는 것도 있겠으나 건강하지 않다면 수영을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영이 훠이훠이 자유로이 몸을 움직이는 가벼운 운동과 놀이가 되려면, 전제가 있다. 호흡이 중요하다. 숨을 쉴 줄 알아야 한다. 잡생각과 번민을 버리고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벼워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명상과 무척 닮았다. 생각을 잊고 숨에 집중해 끝내 고요해지는 일 말이다. 또 글쓰기 과정과도 닮았다. 제 호흡에 집중해 생각의 실마리를 따라가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숨을 잘 쉬어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그러하기에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숨에 집중해보려고 부단히 애쓴다. <떠오르는 숨: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2024, 접촉면)은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이다. 평소 물과 몸을 둘러싼 운동성, 성질과 기질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제목만 듣고도 이끌렸다. 나에게는 낯선 저자 알렉시스 폴린 검스는 미국의 시인, 독립 연구자, 흑인 퀴어 페미니스트다. 특히 흑인, 퀴어, 페미니스트라는 저자의 정체성이 곧 이 책의 형식과 내용, 서술의 방식과 자세, 지향과 철학이다. 원제는 <Undrowned>, 즉 ‘익사하지 않는’으로 ‘익사를 예방하기 위한 안내서’(22쪽)가 되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심각한 생존 위협 요소의 현실,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 차별과 폭력의 역사가 모든 종을 숨 막히게 하고 있다는 데 대한 긴급하고 엄중한 문제의식이 전제돼 있다. 이런 세계에서 저자가 탐구하고 탐색한 것이 바로 해양 포유류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숨을 잘 쉬기 위해서라도,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오랫동안 생존해온 ‘해양 포유류의 전복적이고 변혁적인 지침’(21쪽)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상당히 야심 차다. 광대하고 포괄적이고 또한 정치적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에 함께하며, 흑인 해방, 퀴어 해방, 장애 정의, 경제 정의, 인종 정의, 젠더 정의를 위한 운동이 이 책이 담고 있는 명상의 핵심’임을 적극적으로 밝힌다. ‘흑인 퀴어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임을 알고 있는 그 모든 사람을 위한 책’(30쪽)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검은’의 의미는 분명하다. ‘이 책에서 검은(Black)’이라는 단어는 대문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흑인 작가와 편집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덕에 일반적으로 흑인을 지칭할 때는 대문자 표기, 색을 뜻하거나 형용사로 사용할 때는 소문자 표기가 관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검다는 것(Blackness)은 인간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사회에서 검정이라는 용어에 대한 상징적, 묘사적 언설 중 흑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건 없습니다. 따라서 검정은 흑인입니다.’(31쪽)
저자는 고래들과 흑인, 특히 흑인 여성들이 겪어온 유사한 수난의 맥락을 간파하며 이들 사이의 거대한 사랑의 힘이 가능함을 탐색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인간종은 고래의 듣기, 숨쉬기, 소리 내기, 협력하기, 속도 늦추기 같은 삶의 방식과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권한다. 책 말미, 저자는 구체적인 제안의 목록을 제시한다. 우리는 해양 포유류처럼 잠시 그들의 방식과 흡사하게 숨을 쉬거나 휴식을 취하며 명상에 빠질 수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호흡을 추적해보세요. 호흡과의 깊은 친밀성은 모든 해양 포유류에게 필수입니다. 이 구절들을 호흡의 척도로 삼아보세요. 소리 내어 읽으면서 한 번의 숨쉬기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하루 중 다른 시간대에도 시도해보고 시간대나 구절의 내용에 따라 호흡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세요.’(219쪽) 또 이를테면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존재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해양 포유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속에 살며, 물이 움직이면 그들도/우리도 움직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해양 포유류 중 하나를 고르고 녹음된 그들의 소리를 듣거나 상을 보세요… 해양 포유류의 소리를 듣는 동안 호흡을 셉니다.’(21쪽) 또는 이런 제안도 있다. ‘이번 주에 한 가지를 취소해보세요. 딱 한 가지만요. 그 시간에 범고래의 실시간 먹이 활동을 보며 범고래가 언제 나타날지 지켜보세요. 아니면 잠들어서 범고래가 여러분을 지켜보게 해보세요.’(225쪽) 저자는 그리하여 쌍방 소통을 지향한다. 자신의 제안이 독자에게 어떻게 가닿았는지 몹시 궁금해한다. 독자도 제안을 수행하다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땐 언제든 저자에게 연락하면 된다. @alexispauline 계정을 밝히며 이 책은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제안 목록을 펼쳐두고 적어도 한두 가지라도 실행해보려 한다. 한동안 무기력했는데 다시 숨을 골라야지. 해양 포유류처럼 숨 쉬어봐야지. 그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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