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페이스’, 이 영화의 베드신은 난처하지 않다
* 이 글에는 영화 <히든페이스>의 주요 반전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베드신에 대한 얘기는 조심스럽다. 여배우의 노출에 세상이 어떤 관심을 가질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유명한 배우일 경우 당연히 이 관심은 더욱 커진다. ‘관심’보다 ‘호기심’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김대우 감독이 연출하고 송승헌, 조여정, 박지현이 출연한 영화 <히든페이스>는 현재 극장에 걸린 작품 가운데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이다. 이 영화를 제작하고 홍보하는 입장에서도 이 호기심을 알고 있다. 영화 개봉 전후로 인스타그램 돋보기 페이지에 늘어난 <히든페이스> 관련 바이럴 콘텐츠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두 주연배우의 과감한 노출 연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출’이 가장 강력한 흥행 포인트지만 공식적인 마케팅으로 강조할 수 없는 난처한 입장. 그래도 이런 난처함에는 배우에 대한 배려가 있다. 작품 안에서 난처함이 드러나는 것보다는 나은 경우라고 할까? 베드신이 화제가 된 영화는 종종 이 영화가 단순히 베드신만 보여주려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 그 베드신은 인물들의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할 때 난처해진다.
<히든페이스>를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전작도 영화 속에서 난처함을 보이곤 했다. <음란서생>(2006), <방자전>(2010), <인간중독>(2014), 그리고 그가 각본을 썼던 <정사>(1998)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는 모두 당시 도발적인 설정과 연출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사대부 집안 출신의 문장가가 난잡한 책을 쓰는 일에 빠져든다거나 성춘향이 이몽룡과 백년가약을 맺기 전에 이미 방자와 사랑을 나누었다거나. 주로 시대와 사회의 금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그렸고 이때 베드신에서 보여주는 건, 결국 욕망에 무너지는 캐릭터였다.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신분 상승을 위해서는 천한 노비와 이러면 안 되는데… 부하의 아내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이때부터 그의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욕망’ 대신 ‘사랑’으로 변질시킨다. 그러고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도 끝내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며 끝내곤 했다. 이런 선택이 꼭 난처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도발적인 설정의 에너지가 결국 통속적인 감정에 의해 지워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히든페이스>의 베드신은 전혀 난처하지 않았다.
<히든페이스>는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원작의 존재감을 의식해야 하는 영화는 아니다. 원작에서 핵심적인 설정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밀실’이 있는 저택,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 갑자기 사라진 여자, 남자가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또 다른 여자. 사라진 여자는 밀실에 갇혀 있었고, 그녀는 이 밀실의 특별한 시스템 덕분에 자신의 남자와 다른 여자의 섹스를 목격한다. 솔직히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기생충>에서 보았던 그런 밀실도 아니고 방과 욕실에 ‘매직미러’가 설치되어 있는 데다,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로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밀실이라니. 그런데 <히든페이스>는 각색 과정에서 억지스러운 걸 말이 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더 억지스럽게 밀어붙인다. 이때 공을 들인 부분은 ‘그녀는 왜 밀실에 갇히는가’에 대한 맥락이다. 남자의 진심을 확인해보겠다는 얄팍한 의도는 같다. 하지만 원작의 그녀가 실수로 갇히는 데 반해 이 영화의 그녀가 갇히는 이유는 누군가의 ‘음모’다. ‘음모’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에는 관계가 있으며, 관계에는 사연이 있다. <히든페이스>는 이 사연에서 원작과 아예 다른 도발적인 상상을 한다.
덕분에 <히든페이스>가 보여주는 베드신도 두꺼운 레이어를 갖는다. 이 베드신은 당연히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것이지만, 영화 안에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벌이는 사건이다. 또 이 베드신은 김대우 감독의 전작에서 본 것과 거의 흡사한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선배의 남편과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욕망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욕망이 사랑으로 변질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영화 속 베드신을 애써 통속적인 감정으로 포장해야 하는 난처함도 없다. <히든페이스>의 베드신은 또 다른 욕망을 찾게 되는 계기이고, 이 새로운 욕망은 더 도발적인 결말로 향하는 에너지로 쓰인다. 인물들의 욕망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관계가 정립된 결말은 보기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누군가는 결국 고착화된 신분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아예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히든페이스>의 이 결말 역시 오히려 더 억지스럽게 밀어붙인 덕분에 기이한 매력을 갖게 됐다. 이런 매력을 공식적인 마케팅으로 대놓고 드러낼 수 있다면 노출을 강조하는 것도 덜 난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적인 반전이라 그럴 수 없는 또 다른 난처함이 있을 것이다. 김대우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재밌었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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