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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은퇴할 계획이 없다

2024.11.25

90세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은퇴할 계획이 없다

90세 거장이 90개 룩으로 말하는 과거와 미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뉴욕에서 선보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2025 S/S 쇼 리허설을 직접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체크하는 Mr. 아르마니.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아르마니는 일에 대한 추친력은 얼마나 그 일을 즐기고 만족감을 느끼는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지난 49년간 본인 이름으로 컬렉션을 발표해온 아르마니는 여전히 100% 일을 즐기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는 왜 뉴욕을 사랑하는가? 아르마니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축물 파크 애비뉴 아모리(Park Avenue Armory)에서 2025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이기 전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은··· 그 속도, 끊임없는 재창조, 그리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달라지면서도 언제나 진정한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의 말은 뉴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7월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거장은 쇼에서 지난 49년간의 디자인 세계를 아우르는 90개 룩을 선보였다. 이건 단순히 경건한 회고전 이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선했다.

그렇다면 아르마니는 왜 뉴욕으로 갔나? 마지막으로 아르마니가 뉴욕에서 쇼를 선보인 건 2013년 ‘One Night Only’였다. 그리고 2024년, 그가 쇼를 위한 도시로 밀라노가 아니라 뉴욕을 선택한 명목상의 이유는 매디슨 애비뉴에 위치한 새로운 아르마니 빌딩 오픈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2층 규모의 이 빌딩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아르마니/까사(Armani/Casa) 부티크, 아르마니 레스토랑(Armani/Ristorante) 그리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레지던스까지 갖춘 그야말로 아르마니의 모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프리쇼에서는 이 스토어가 개장 후 첫 3일간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아르마니에게 뉴욕이 특별한 건 단지 새로운 빌딩 때문만은 아니다. 1975년에서 1982년 사이, 그러니까 아르마니가 무명의 작은 부티크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과정에서 뉴욕은 큰 역할을 했다. “특히 1980년에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리처드 기어가 넉넉한 테일러링 수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미국은 ‘아르마니의 미학’을 새로운 시대의 스타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뉴욕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그에게 뉴욕은 잊을 수 없는 도시였다. “처음 뉴욕을 방문한 건 19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화면에서만 보던 ‘그 도시’를 직접 경험하는 건 무척 자극적이었어요. 1970년대 후반은 뉴욕은 물론 미국 전역이 흥미진진한 시기였고, 내가 그 일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쇼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 대의 증기기관차가 파크 애비뉴 아모리 벽에 투사되는 순간, 한쪽 벽의 붉은 커튼이 떨어지며 반원형 벤치 좌석으로 구성된 거대한 쇼 공간이 드러났다. 그 모습이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연상시켰다. 우리는 아르마니가 만든 대기실에 앉아 영화 속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펼쳐지는 장면 같은 쇼를 지켜보았다. 첫 번째 승객, 아니 모델은 짧은 트렌치 코트에 주름 잡힌 바지를 부츠 안에 넣은 채 등장했다. 양손에 짐을 든 포터와 함께였다. 그리고 니트 소재 타이를 어깨 위로 척 넘긴 혼란스러운 표정의 남자와 분홍색 실크 재킷 드레스 차림으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업타운 걸 같은 다양한 캐릭터가 차례로 런웨이를 걸었다.

더 넓게 보자면, 이 쇼는 아르마니 디자인 세계의 여러 단계를 아우르고 있었다. 다채로운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아르마니 특유의 광택을 입힌 여행복으로 출발해 체크 직물과 실크 자카드로 시각적 질감을 더했다. 어깨를 강조한 튜닉 스타일 셔츠나 심플한 조끼, 복잡한 레이어링의 오간자 스커트, 정교하게 짜인 셔츠 등 아르마니의 상징적 디자인 코드가 이어졌다. 쇼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옷은 낮에서 밤이 됐다. 첫 번째 모델이 처음 포터가 들고 있던 코랄 패턴 자수가 들어간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은은한 크리스털 장식 벨벳 재킷을 입은 남성 세 명이 그녀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키워드는 역시, 테일러링이었다. 아르마니에게 테일러링은 과거이자 미래였다. “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는 사람의 개성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걸 해내는 것이 테일러링이고, 그 점에서 테일러링은 시공을 초월한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테일러링이 미래라고 믿습니다.”

아르마니는 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이 쇼가 열리기 며칠 전, 그가 2~3년 안에 은퇴할 계획을 밝혔다는 기사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추억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여정이자 다양한 스타일과 옷 입는 방법에 대한 비전을 시사한 컬렉션의 무게는 과거에 있을까, 아니면 미래를 향하고 있을까? 90개 룩으로 이뤄진 영화 같은 쇼를 직접 보니 그의 은퇴를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아르마니에게 그의 모든 시간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보냈다. 그리고 끝에 대한 진심을 묻는 말에 90세 거장의 꿈이 담긴 답이 돌아왔다.

백스테이지에서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치는 소재에 반짝이는 비즈로 물결 패턴을 수놓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쇼를 준비하는 모델들.

예전만큼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동안 내 작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고, 그래서 인터뷰 횟수가 줄어든 건 맞지만 여전히 인터뷰에 거부감은 없다. 이제 대면 인터뷰보다 서면 인터뷰를 선호하는 건 사실이다. 더 효율적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터뷰에 임하는 태도는 늘 같다. 언제나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답변할 것.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르마니 2025 봄/여름 컬렉션은 여정에 관한 이야기였고, 영화 같았다. 장르로 따지면 아르마니 디자인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로맨틱한 타임 슬립에 가까웠다.

디자이너로서 뉴욕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늘 중요한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적 스타일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컬렉션에는 오랜 시간 지켜온 아이디어가 항상 반영되어 있다. 또 영화 애호가로서 뉴욕의 도시 풍경은 스크린으로 자주 접한 무척 익숙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번 쇼는 영화가 전개되는 듯한 느낌이길 원했다. 아르마니 옷을 입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한 편의 영화 말이다. 그들의 의상, 현재의 옷장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아르마니를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강아지를 안고 등장한 모델의 모습은 소셜 미디어에서 바이럴됐다. 그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그 모델이 피팅에 강아지를 데려왔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에 영향을 받는지 궁금하다.

소셜 미디어가 새로운, 특히 젊은 고객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도구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실행 부분은 전문가로 구성된 팀에게 맡긴다. 개인적으로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는다. 창작 과정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나 패션의 일시적인 유행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보다는 더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스타일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이번에 새롭게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빌딩을 오픈하며 그곳이 새로운 5번가가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발견한 미래는 무엇인가? 그리고 아르마니의 새로운 빌딩이 그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매디슨 애비뉴는 럭셔리의 정수이자 전형이다. 1980년대에 뉴욕에 첫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을 열었을 때, 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현대적인 우아함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곳으로 맨해튼을 선택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거리와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나의 철학과 미적 비전을 반영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옷을 입고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싶었다. 새로운 매장, 주거 공간, 레스토랑이 한곳에 모인 이 빌딩이 21세기의 흥미로운 럭셔리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아르마니 빌딩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미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왜 1930년대와 1940년대인가?

항상 아르데코에 매료되어왔고, 1930년대와 1940년대의 기하학적 라인과 고급스러운 소재는 특히 아르마니/까사 인테리어 컬렉션에 많은 영감이 됐다. 패션 스타일 면에서도 그 시대는 흥미롭다. 1930년대와 1940년대를 현대적 패션이 진정으로 시작된 때로 보고 있다. 이전의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와 비교했을 때 한결 우아하고 정제된 접근은 물론이고 아름다움뿐 아니라 실용성에도 중점을 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흔 번째 생일을 맞았다. 나이 든다는 사실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있나?

이제까지 이룬 모든 것에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더불어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염두에 두게 됐다.

최근 밀라노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 인터뷰가 굉장히 화제였다. 앞으로 2~3년 안에 은퇴하고 싶다고 했는데 진심이 아니었나?

나 역시 그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정말 그냥 가볍게 한 말이었다. 분명히 하자면, 끝을 정해둔 건 아니다.

1975년부터 49년 동안 자기 이름을 내건 컬렉션을 발표해왔다. 여전히 첫 쇼와 같은 긴장감을 느끼나?

솔직히 말하면 매번 그렇다. 하지만 처음과 같은 감정은 아니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인지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쇼는 살아 숨 쉬는 이벤트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점에서 언제나 설렐 수밖에 없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거대한 패션 대기업의 성장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의 삶에 미친 엄청난 영향 같은 것. 지금은 시장이 글로벌화되었고 마케팅 일정에 맞추기 위해 매년 제작되는 컬렉션의 수가 급증하지 않았나. 나는 이런 변화가 소비자의 필요에 의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근본적으로 나는 여전히 특정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고 소중히 여기며 입는 옷을 만드는 방식을 믿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패션이 만드는 단순하고 정서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지금까지의 컬렉션 중 최고의 피스를 꼽을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음··· 정형화되지 않은 구조의 재킷. 아르마니를 시작하기 전 니노 체루티(Nino Cerruti)에서 일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더 부드럽고 편안한 테일러링을 구축할지 고민해왔다. 그게 내 인생의 작업이었다.

구찌, 펜디, 푸치 등 이탈리아의 거대 명품 브랜드가 프랑스 대기업 케어링과 LVMH에 매각될 때, 아르마니는 수년간 독립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보그>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아르마니가 독립 기업체로 지속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긍했다. “누군가는 이 중요한 이탈리아 기업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으며 꼭 패션 기업일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내가 회사와 관계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앞으로 미래에 관해 대화하는 방식에 열려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내게 독립성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동안 독립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얽매이지 않고 내 방식대로 관심사를 추구하고 창의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도전적일 수 있었다. 단순하게, 이건 예술적 자유의 문제다.

아르마니식 혁신은 기존 체제에 반하는 것이었다. 지나칠 때 그에 반하는 행보를 보인다고 해야 하나, 글래머러스한 시대에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했고 슈퍼모델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중성적이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웠다. 지금도 여전히 명성보다는 당신만의 기준으로 모델을 고르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창의적인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서 자신의 비전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모델을 선택하는 기준 중 가장 우선시되는 건 이거다. 아르마니에 적합할 것. 그들이 유명하거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두 번째다. 쇼에서는 옷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인터뷰 마지막 페이지의 사진은 2005년 4월 한국에 방문했을 때, 6명의 한국 모델과 촬영했던 <보그 코리아> 화보 컷이다. 이 사진을 보니 어떤 기분이 드나?

어제 찍은 사진 같다. 무엇보다 사진 속 옷이 여전히 우아해 보인다는 것이 기쁘다. 우아함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기에 우아한 옷과 함께한 사진은 지난 20년 중 언제 찍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20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매우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고 한국 사람들이 나의 디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한국인은 창의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특별한 감성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멋진 나라와 멋진 사람들이었다.

대중이 입고 싶어 하는 옷에 대해서도 민감하지만 철저하게 내 스타일이 아닌 것은 배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사진과 2025 봄/여름 컬렉션을 비교해보면, 시대를 초월한 고유의 스타일이 분명하게 보인다.

나는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가며 본질에 다가가면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것들이 남게 된다. 이런 것들은 수년 동안 입어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입었을 때 구식처럼 보이거나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배제하는 당신 스타일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과시적이거나 유행을 좇는 것. 너무 애쓰는 것 혹은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 상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

지금 삶에서 덜어낼 것이 있다면?

없다. 지금은 대부분의 것을 내려놓았다. 예전에는 일에 너무 몰두해왔고 완벽주의자라는 것,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최근엔 내가 그런 사람이고, 나를 만든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에 대한 추진력은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즐기고 만족감을 느끼는지에서 비롯된다. 후회는 없다.

예술의 장르를 막론하고, 명작은 개인의 통찰과 시대의 흐름이 함께 만들어낸다. 당신이 살던 시대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주변 문화와 시대의 흐름을 살피는 건 내게 무척 중요한 문제다. 1980년대, 젊은 여성들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옷을 원했고 나는 그에 응답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아하고 좀 더 모던하게 보이기를 원한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해체주의 작업, 새롭고 가벼운 원단, 여성들을 위한 남성적인 스타일, 남성들을 위한 부드러운 실루엣 등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당대 문화와 변화에 반응해왔다고 자부한다.

스스로 동시대적이라고 여기나?

‘동시대적’이라는 말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는 의미라면, 그렇다. 스스로 동시대적이라고 느낀다.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길 바라나?

항상 자신의 미학적 원칙을 고수하며, 무엇보다 우아함을 추구한 사람.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그들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돕는, 옷을 통해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 사람.

당신도 꿈을 꾸나? 이상하거나 흥미로운 꿈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는 꿈. (VK)

2005년 5월 <보그 코리아>에 실린 아르마니의 화보. 6명의 한국 모델이 입고 있는 아르마니 옷은 지금 봐도 여전히 우아하며 다른 방식으로 2025 S/S 컬렉션과 같은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디터
    권민지
    Luke Leitch
    사진
    Courtesy of Giorgio Armani
    SPONSORED BY
    GIORGIO AR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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