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크루즈가 에든버러로 간 까닭은
에든버러에서 탑승한 디올 크루즈 컬렉션은 프리즈 런던의 예술 세계를 목도한 뒤,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보고자 제주에 닻을 내렸다. 가을이 깊어지자 성수동 더 사운드 오브 프라다에서 음악에 몸을 맡겼고, 다시 홍콩 샤넬 크루즈 컬렉션에 몸을 실었다. 6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여정의 프런트 로에 승선한 〈보그〉가 시시각각 바뀌던 풍경을 회고한다.
음울한 백파이프 선율 속 일상과 판타지의 조우.
백파이프 소리가 얼마나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백파이프 소리를 뜻하는 스컬(Skirl)은 스코틀랜드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저 두통을 유발하는 악기의 울부짖음이다.) 늘 슬프고 애절한 한탄의 소리를 내는 백파이프는 악기계의 비요크(Bjork)다. 공상적이어서 의견이 매우 갈린다는 뜻이다(하지만 나는 비요크에 대해선 분명한 견해가 있다. 그녀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는 신록의 화려함으로 물든 영국 스코틀랜드 드러먼드 성(Drummond Castle)의 질서 정연한 정원에서 선보인 디올 2025 크루즈 쇼의 시작과 끝을 백파이프 음악으로 장식했다. 그 선율은 백파이프 소리엔 절대 눈물을 글썽이지 않는 이 스코틀랜드인마저 놀라게 만들 정도로 감동을 이끌어냈다.
디올 가문의 역사와 낭만적이고 극적이되 솔직히 때로는 피투성이였던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엮어 엄청난 효과를 거둔 키우리의 이례적인 컬렉션이 불러온 감정은 그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감정은 욕망이다. 그 이유는 키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 즉 현실주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이를 초월하는 의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크루즈 쇼는 여성이 실제 그녀의 옷을 어떻게 입는지에 대한 약간의 경험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이는 브랜드의 실질적인 리트머스 테스트다. 나이와 몸매, 태도에 관계없이 모래시계 실루엣 재킷, 풀 스커트, 투박한 부츠 혹은 리본으로 장식한 슬링백을 착용한 ‘키우리 군단’은 성숙하고 여유로우며 멋졌다.)
키우리는 스코틀랜드와 관련된 모든 의복을 작업하기로 결심했다. “스코틀랜드는 패션계에서 중요한 레퍼런스입니다.” 쇼 하루 전, 그녀가 컬렉션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었어요. 우리 세대에게는 펑크와 깊이 관련돼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물을 통해서죠. 패션에서는 외형에 너무 집중합니다. 하지만 직물 역시 우리 작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결정하니까요.” 키우리는 타탄과 캐시미어, 트위드와 아가일 등 전통적인 요소를 택했다. 그리고 이를 컬렉션에 능숙하게 녹여내 원단의 지정학적 특성을 다채롭게 그려냈다.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일명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와 그녀가 자수를 통해 정치적 논평을 하는 방식, 그리고 당연하게도 반항적인 아름다움으로 요동치는 ‘비브 르 펑크(Vive le Punk)’ 무드 등 도전적인 에너지가 이어졌다. 타협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쩌면 여성은 그 외에는 아무것도 될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특히 지금은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은 격자무늬 숄을 덧댄 하우스의 클래식한 바(Bar) 재킷이다. 코르셋은 강인해 갑옷과 같은 느낌이었고, 자수로 이루어진 꽃을 몸 위로 드리웠다. 검정 자코비안 벨벳으로 된 이브닝 드레스는 섬세한 흰색 레이스 장식이 목과 데콜테를 감싸고, 드레스에 패널로 덧댄 청회색과 금색 레이스는 자잘한 러플 형태로 물결치고 있었다. 대부분 진주가 달린 가죽 초커, 스터드 장식의 가죽 퀼팅 크로스 보디 가방과 함께했다. 무심하게 지퍼를 열어둔 채 착용한 바이커 부츠와 악어가죽 신발은 키우리가 다른 어떤 부츠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멕시코, 스페인, 모로코 등으로 떠났던 이전 크루즈 여행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현지 디자이너 및 장인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존스턴스 오브 엘긴(Johnstons of Elgin)의 트위드와 캐시미어, 에스크 캐시미어(Esk Cashmere)의 니트웨어, 로버트 맥키(Robert Mackie)의 전통 모자, 그리고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의 가장 견고한 원단이다. (키우리는 자신의 집에서 작업하는 직조공들을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 북서 해상에 있는 아우터헤브리디스(Outer Hebrides) 제도를 직접 방문했다. 그리고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와 바람이 휘몰아치던 11월, 그녀에게 주요 소품이 전달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착용자를 위해 스코틀랜드 전통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르 킬트(Le Kilt)의 젊은 디자이너 사만다 맥코치(Samantha McCoach)와 함께 완성한 룩도 있다.
여행을 통한 대대적인 조사, 사고의 광대함, 치열한 연구(이번 컬렉션의 출발은 스코틀랜드 문화사학자이자 예술가인 클레어 헌터(Clare Hunter)의 글이다), 그리고 키우리가 크루즈 컬렉션을 만드는 방식의 인류학적 감각 등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욕망을 보여준다. 좀 더 멀고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한 욕망, 자신이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의미를 찾기 위한 욕망이다. “요즘은 패션을 브랜드에 관한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패션을 단지 브랜드로만 설명할 순 없죠.”
하지만 모든 것은 디올에서 시작하며, 하우스가 세상을 항해한 역사를 따른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무슈 디올이 퍼드셔 글렌이글스 호텔(Gleneagles Hotel)의 잿빛 연회장에서 개최한 자선 패션쇼 사진이 키우리의 출발점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을 끈 것은 쇼의 화려함이나 형식이 아니라 쇼가 끝난 뒤의 이미지였다. 자신의 이브닝 드레스와 정식 킬트 의상을 차려입은 현지인들과 파티를 즐기는 모델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담긴 보도사진이다. 환상과 일상의 충돌, 그것이 언제나 최고의 방법이다.
당시 쇼를 보면서 어쩌면 그녀는 지금의 쇼와 오늘날 패션을 돌아봤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스코틀랜드 헌정 크루즈 컬렉션은 평소처럼 현실주의로 가득 찼지만, 과거 어느 컬렉션보다 연극적이고 장식적이었다. 패션에 그 어느 때보다 글자 그대로이며 은유적인, 3차원적 입체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이 컬렉션은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째질 듯한 백파이프 소리 너머로도 들릴 정도로 말이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패션 에디터
- 김다혜
- 포토
- Acielle(Style du Monde), Adrien Dirand, GettyImagesKorea, Courtesy of Dior
- SPONSORED BY
-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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