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아트 투어
자카르타에 아트 투어를 간다? 매년 ‘아트 자카르타’가 열리는 가을은 자카르타에 여행 가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아트 페어 ‘아트 자카르타’가 열리면서 자카르타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가장 자신 있는 전시를 연다. 게다가 올해는 자카르타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렸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에만 아트 페어가 70개가 열린다. 미술 애호가라면 이 가운데 주요 아트 페어를 방문하고도 부족함을 느끼기에, ‘아트 바젤’ 같은 세계 유명 아트 페어까지 원정을 가곤 한다. 2022년부터 세계 2대 아트 페어인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리면서 우리나라 미술계는 한껏 달아오른 상태다. 하지만 아트 페어를 몇 군데 보고 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아트 페어가 닮은꼴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 지금 세계 대부분의 페어는 아트 바젤과 프리즈 스타일을 추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아트 페어가 비슷비슷해지고 있어 아쉽다.
그런 점에서 인도네시아의 대표 아트 페어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는 특별하다. 아트 자카르타는 아시아 갤러리만 초대하는 아트 페어다. 특히 동남아시아 갤러리에 중점을 둔다. 전 세계 아트 페어가 하우저 & 워스, 데이비드 즈위너 같은 빅 갤러리를 초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아트 자카르타는 처음부터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유명 갤러리를 배제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자신감인가?
그럴 만한 것이 페어의 중심을 이루는 인도네시아 갤러리는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작품을 선보인다. 인도네시아는 미술계의 숨은 고수이기 때문에 작품성을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예술성은 카셀 도큐멘타 15(Kassel Documenta 15)의 예술감독인 아트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가 2022년 <아트리뷰> ‘파워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예술가로 이루어진 루앙루파는 2022년 열린 카셀 도큐멘타 15의 감독을 맡으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는 집안 대대로 컬렉션을 하는 가풍이 이어지고 있으며, 먹고 노래하는 일상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미술에 대한 편견이 없다. 또한 루앙루파와 미술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같은 대표 미술가들은 이왕이면 형편이 어려운 주민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메시지를 나누자는 협업 정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미술은 국민 곁에 가까이 있다. 그들은 정치·경제의 문제점을 세련되게 작품에 반영하고 있으며, 얼어 죽는 사람 없는 따뜻한 나라답게 흥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은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아트 자카르타에는 총 73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갤러리 39개,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필리핀·베트남·중국·한국·일본·대만 등에서 온 34개 아시아 갤러리가 참여했다. 사흘 동안 3만8,368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7% 증가한 것이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시아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트 자카르타는 막을 내렸지만, 자카르타에 가면 언제든 페어에 참여했던 갤러리를 방문해 전시를 볼 수 있으니 반갑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는 컬렉터가 많고, 예술대학이 있는 욕야카르타와 반둥에는 미술가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바자 아트 자카르타’로 시작한 이 행사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컬렉터 출신 사업가 톰 탄디오(Tom Tandio)가 2019년부터 운영에 참여하면서, 재정비를 거쳐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톰 탄디오는 2016년 우리나라 송은아트센터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한 적 있을 만큼 작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난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아트 자카르타에서 가장 놀라운 작품을 선보였던 인도네시아 갤러리를 살펴보자. 중국이 대륙의 스케일이라면, 인도네시아는 태평양의 스케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작품이 시원시원하고 매력적이다.
자카르타와 발리에서 운영 중인 갈레리 ZEN1은 이번 아트 자카르타에서 미술관급의 화려한 작품을 보여주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디 술리스툐(Yudi Sulistyo)와 망 모엘(Mang Moel, 물야나(Mulyana)라고도 불림)의 대형 작품은 바닷속 잠수함을 연상시키며 포토 스폿이 되었다. 공예 기법을 활용한 망 모엘의 작품은 우리나라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galerizen1.com/ @galerizen1)
만약 자카르타에서 단 하나의 갤러리만 봐야 한다면 그것은 로(ROH)다. 로는 프리즈 서울에도 참여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친숙하다. 하지만 프리즈 서울에서는 늘 작은 부스로 참여해왔기 때문에 로의 진면목을 보기 어려워 아쉬웠는데, 아트 자카르타에서는 가장 큰 부스를 선보였다. 로 갤러리는 아트 자카르타에는 항상 ‘로’와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라는 두 개의 부스로 참여한다. ‘로’는 에코 누그로호 같은 인도네시아 유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큰 부스이고, 바로 옆의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는 엄청난 예술 애호가라도 구입을 고민할 것 같은 실험적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도 메인 공간에는 인도네시아 국민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작품이 걸려 있다. 에코 누그로호는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입국하자마자 작품을 만날 수 있을 정도 유명하다. 바로 건너편의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에서는 한 달간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마친 아티스트 듀오 이타 요타(Ittah Yoda)의 사랑스러운 작품을 선보였다. (@rohprojects)
뮤지엄 오브 토이스(Museum of Toys)는 사랑스러운 피규어 작품으로 인기가 높은 갤러리다. 크고 작은 피규어 작품을 멋지게 전시해 MZ세대로 붐볐다.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는데, 특히 미술가 콩 앤드리(Kong Andri)는 단순히 귀엽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 인류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아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museumoftoys)
페어장 가운데 대형 작품을 선보이는 스폿(Spot) 섹션은 올해 다소 축소되었지만 티스나 산자야(Tisna Sanjaya), 티모테우스 앙가완 쿠스노(Timoteus Anggawan Kusno) 등 무게감 있는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아트 자카르타의 동선은 우리나라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트 페어를 보고 나가면서 젊은 작가의 티셔츠라도 구입할 수 있도록 출구에 작은 아트 상품 판매 부스를 가득 배치했다.
자카르타에는 갤러리 10개가 모여 있는 갤러리 빌딩 ‘아트 허브’도 있다. 자카르타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다. 이곳에 입점한 갤러리 대부분을 매년 아트 자카르타에서도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아트 허브의 갤러리는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아트 자카르타에서는 거대한 부스에 마음껏 작품을 전시한다. 뮤지엄 오브 토이스, 자가드 갤러리(Jagad Gallery), 루바나(Rubanah), 레이첼 갤러리(Rachel Gallery), 유니콘 갤러리(Unicorn Gallery), 아트로카(Artloka), V&V 갤러리(V&V Gallery) 등이다. 3년 전까지 갤러리 3개만 입점했는데, 아트 자카르타가 인도네시아 대표 아트 페어로 자리 잡으면서 갤러리 빌딩이 제대로 꾸려졌다.
자카르타에서 단 하나의 미술관만 봐야 한다면 단연 마찬 뮤지엄(Macan Museum)이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니만큼 우리나라 리움미술관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트 자카르타 기간에는 기괴한 생명체 조각으로 유명한 패트리샤 피치니니(Patricia Piccinini)의 개인전을 선보여 모두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강렬한 전시를 보고 싶은 마음이다. (www.museummacan.org)
이번 아트 자카르타에는 백아트, 띠오, 예화랑, 예술공간집 등 한국 갤러리 6개가 참여했다. 백아트는 로스앤젤레스, 서울에 이어 지난해 자카르타에 갤러리를 개관해 본격적인 동남아시아 진출 의지를 보여주었다. 백아트의 수잔 백 대표가 아트 자카르타에 계속 참여하다 현지 미술계의 열정에 매료되어 아예 갤러리를 연 것이다. 이로써 백아트는 미국, 한국, 인도네시아 작가를 중심으로 국제 전시를 펼침으로써 앞날을 더 기대하게 한다.
아트 자카르타를 방문하고 느낀 점은 한국 문화계가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프리즈 서울이 열린다는 자부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모를 뿐 인도네시아 같은 예술 강국이 세계 곳곳에 포진하고 있으니, 자만해선 안 될 것이다. 다음 아트 자카르타는 2025년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 컨벤션 센터(JIExpo Kemayoran)에서 열린다. 삼빠이 줌빠 라기(Sampai jumpa lagi)! 다음에 또 만납시다!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이소영(미술 저널리스트)
- 사진
- 아트 자카르타,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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