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의 샤넬은 무엇이 달랐나
오늘 홍콩의 밤은 어제의 낮보다 아름답다.
내게 홍콩은 여전히 영화의 도시다. 가기 전에는 늘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를 보게 되는데, 네온사인 아래서 ‘몽중인’을 부르는 왕페이의 얼굴, 긴장감 속에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스쳐 지나가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영화 속에서처럼, 홍콩의 밤은 미묘하게 아름답다. 홍콩을 대표하는 소설가 찬호께이가 <13.67>에서 “홍콩이란 단어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무수한 선택이 얽혀 있는 단어였다”고 표현한 대로 홍콩은, 특히 그 도시의 밤은 양가적이며 정의 불가능한 매력이 뒤섞여 있다. 그렇게 좁고, 복잡하고, 과거를 향한 낭만적 향수와 미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섞인 도시. 홍콩은 지금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샤넬이 지난 5월 남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공개했던 2024/25 크루즈 컬렉션을 홍콩에서 다시 선보인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이번 쇼를 위해 프랑스 감독 오드리 디완(Audrey Diwan)이 만든 단편영화 <모던 플러트(Modern Flirt)>에서 역시 현실과 꿈 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홍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홍콩 배우 원예림과 프랑스 배우 벤자민 부아쟁(Benjamin Voisin)이 연기하는 신비로운 두 인물이 역동적인 도시와 반짝이는 밤, 무한한 빛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모습을 그린다. 샤넬은 공식 유튜브에 이 단편영화를 업로드하면서 ‘A Cinematic Encounter(영화 같은 만남)’라는 제목을 덧붙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홍콩에서는 어쩐지 영화 같은 만남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샤넬 2024/25 크루즈 컬렉션의 첫 번째 무대가 된 곳은 마르세유의 ‘시테 라디외즈(Cité Radieuse)’였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하고 샬롯 페리앙이 인테리어를 담당한 세계 최초의 공동주택, 이른바 ‘아파트의 효시’다. 르 코르뷔지에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묘사한 유토피아적 건축물에서 관객은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서점, 빈티지 스토어, 호텔 침실, 전시 등을 돌아봤다. 본격적인 패션쇼 전, ‘다수의 삶’에 영감을 주는 건축물에서 다양한 문화와 삶의 형태를 전시한 셈이다. 홍콩에서도 그 맥락은 계속됐다. 홍콩에서 샤넬이 선택한 장소는 홍콩 디자인 학원(Hong Kong Design Institution, HKDI)이었다. 일단 건축물 자체에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4개의 타워에 거대한 직사각형 구조물이 7층 높이로 떠 있는 형태인데, 철제로 된 격자 외골격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 건물을 설계한 프랑스의 콜데피 & 아소시에(Coldefy & Associés)는 이를 빈 캔버스와 열린 공간을 상징하는 ‘하얀 시트(White Sheet)’ 컨셉이라고 부르며, 자유로운 사고와 탐구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출발점이라 밝혔다.
그리고 그 소통의 철학에 걸맞게 4개 타워 중심에는 커다란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홍콩에서의 샤넬 쇼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쪽에서는 단편영화 <모던 플러트>가 상영 중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HKDI가 주최하고 샤넬이 후원하는 전시 <상상의 어딘가(Imagine an Elsewhere)> 프리뷰가 한창이었다(전시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하이라이트는 광장 한가운데서 열린 토크 세션 ‘라디오 샤넬(Radio Chanel)’. 샤넬 앰배서더인 캐롤린 드 메그레, 저널리스트 겸 프로듀서 제랄딘 사라티아(Géraldine Sarratia), 교수 겸 DJ 웡치청이 진행을 맡아 샤넬 앰배서더 페넬로페 크루즈와 휘트니 피크를 비롯해 주윤발과 마가렛 장 등이 창작과 전승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관객은 샴페인을 마시며 영화와 전시를 보고, 라디오 부스 주변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냈다.
광장에서의 시간은 쇼를 위한 완벽한 예열이었다. 관객은 (홍콩 특유의) 길고 가파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홍콩의 야경을 보면서 쇼의 진짜 무대인 HKDI 7층과 8층으로 이동했다. 캠퍼스 두 개 층의 복도가 런웨이로 변모한 모습이었다. 모델들은 기하학적인 그 공간을 질서 정연하게 규칙적으로 걸었다. 멀리서 보면 공중에 떠 있는 상자에 우아한 무늬가 새겨진 듯했다. 마르세유에서 선보인 것과 같은 컬렉션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네오프렌 같은 저지, 트위드 시퀸 재킷, 메탈릭 수영복 등 여름의 추억을 담은 2024/25 크루즈 컬렉션은 여기서는 어딘지 초현실적이었다. “레플리카 쇼를 오랜만에 보기도 하지만 홍콩에서 봐서 더 새로웠고 베뉴와 잘 어울리는 연출이어서 비주얼적으로 입체감이 있었습니다.” 샤넬의 앰배서더 지드래곤이 <보그> 인터뷰에서 말한 그대로였다. 마르세유에서의 2024/25 크루즈 컬렉션이 낭만적인 서사로 다가왔다면 직선적인 철제 구조물을 사이로, 위아래에서 리드미컬하게 펼쳐지는 컬렉션은 구조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런가 하면 <보그>와 인터뷰한 샤넬의 또 다른 앰배서더인 배우 휘트니 피크는 낮과 밤에 두 번 열린 쇼를 모두 본 뒤 그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 “오늘 쇼를 총 두 번 봤습니다. 낮에 옷을 봤을 때와 밤에 옷을 봤을 때 각각 다른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고, 이런 점에서 이번 컬렉션이 다양한 인상을 주고 하루 중 아무 때나 활용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샤넬의 2024/25 크루즈 컬렉션은 스포츠와 일상, 움직이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건 그만큼 자유롭고 폭넓으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이, 상상 속의 홍콩과 실재하는 홍콩은 다른 장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홍콩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곳에선 언제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설렘이 있다. 샤넬 패션 부문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Bruno Pavlovsky)는 마르세유에서 같은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음악, 춤, 예술 등 매우 강력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샤넬이 여기 오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발견하거나 재발견하는 방법’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건 홍콩에도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어쩌면 홍콩의 밤이 낮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4차원의 세계 같은 생경함 속에서 그 에너지가 더욱 선명히 다가오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11월 5일, 홍콩의 밤은 생동감과 가능성을 부추기며 상상한 만큼 아름다웠다. 영화로 기억하는 그 장면 그대로였다. (VK)
- 에디터
- 권민지
- COURTESY OF
- CHANEL
- SPONSORED BY
-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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