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아니다, 조식 시장은 부활 중_2024 미식 트렌드
음식이 경험이자 놀이, 이동의 목적인 시대다. 서울의 식당은 점차 젊어지고, 야식보다 조식이 떠오르며 푸드 홀 3세대가 시작됐다. 뉴욕 레스토랑은 예약 각축전을 벌이며, 버려지는 음식으로 마련하는 디너는 주요 옵션이다. 서울과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의 식탁 뉴스.
피로 사회에서 세끼 중 선택적으로 도태시킨 아침 식사. 그 시장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점심(點心)의 한자를 풀이하면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훨씬 더 높은 형이상학적 뜻을 품고 있으나, 쉽게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를 비롯해 농경민족은 일찍 일어나 새벽 어스름을 뚫고 논밭으로 나갔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져 볕이 뜨거워지면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었다. 첫 끼를 정오에 다다라 먹었으니, 점심으로는 저녁까지 허기를 달랠 정도의 적은 양을 취했다. 지금 상식대로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고 점심을 정오에 먹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 이후의 변화다. 노동자들은 아침 9시부터 공장에 나가 일해야 했으며 노동량도 상당했기에 출근 전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점심도 푸짐히 먹어야 했다. 육체노동이 줄어든 지금은 점심을 첫 끼로 여기는 사람이 늘며, 일상에서 아침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아침밥은 유난히 존재감을 잃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비율은 34%이며, 특히 20대는 60%에 육박한다. 반면 미국의 아침밥 결식률은 16%, 일본은 10% 안팎이다. 일본은 자국의 2030세대가 아침밥을 거르는 것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했는데, 그래봤자 일본 2030세대의 아침밥 결식률은 25.8%에 불과하다. 우리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수치다. 한국에 유난히 아침밥을 거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잠이 부족해서다.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7시간 41분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한편 우리가 잠이 부족한 이유는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130시간 많으며, 아시아에서 15세 이상 인구 중 1인당 연간 알코올 섭취량이 가장 많다는 불명예스러운 성적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독한 피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침을 먹느니 5분이라도 더 자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유난히 건강에 관심이 많다. 아마도 “지금의 3040세대가 자신의 부모 세대보다 빨리 늙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성 발언이 불러온 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젊은 세대는 노화 공포증에 사로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알코올을 기피한다. 지금의 4050세대가 젊은 날 알코올 러버였다면, 지금의 2030세대는 운동 중독이다. 앞선 세대가 술 마실 시간에 필라테스, 피트니스를 하거나 러닝을 즐기며, 항산화·항노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활발하게 분비되는 밤 10시에서 11시면 잠을 청한다. 어쩌면 지금의 4050세대가 국내 나이트라이프의 마지막 목격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또한 두 세대 간의 생활 방식이 아예 축을 달리할 만큼 크게 변화한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이트라이프가 소멸하고, ‘나이트 루틴’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자연스럽게 아침이 여유로워졌다.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아침 시간을 보내고 즐기는 방법을 활발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침 일찍 여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개업하고 이용자 또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은 나이트라이프의 소멸을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여기며 ‘나이트클럽의 죽음: 이것이 빅 나이트 아웃의 종말인가’ ‘외출 사절, 런던 나이트라이프는 마지막인가’ 등 암울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4시간 하는 가게는 사라지고, 조식 기반의 식당 체인이 강세를 보인다.
프리랜서 인구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한몫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 부르는 프리랜서 기반의 임시직 경제가 1997년부터 지금까지 연평균 2.6% 성장률을 보이며, 매년 더 높아지고 있다. 반면 정규직 고용은 같은 기간 연 0.8% 성장에 그쳤다. 프리랜서 인구가 늘며 하루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아침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직장인일 때는 강제로 하루를 시작했다면, 프리랜서가 되고 처음 가져본 자율성과 주도권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스럽다. 무엇보다 프리랜서가 스스로 아침을 어떻게 여느냐에 따라 하루의 성패가 결정되고, 컨디션과 기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검색창에 ‘프리랜서’ ‘아침’을 쳐보면 프리랜서들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프리랜서는 아니지만,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또한 직장인보다는 시간을 활용하는 데 주체성을 지닌다. 그들 중 나이트 루틴을 가지고 미라클 모닝을 추구하는 젊은 자영업자들이 시장성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밤 장사를 포기하고 아침 장사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조식 문화가 일찍이 정착한 일본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그 문화가 한층 더 발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식이 힘들어지자, 사람들은 비교적 한산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아침 시간대에 외식을 즐겼다. 코로나19로 정부가 밤 8시 이후 외출을 자제하도록 권고하자 매출에 타격을 입은 외식업자들도 자구책으로 오픈 시간을 당겨 조식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이자카야처럼 밤 장사에 집중하는 가게도 조식 메뉴를 내놨다. 엔데믹 이후 일상은 코로나19 이전으로 상당 부분 돌아갔으나, 일본의 조식 시장은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그 배경에는 고령화된 사회가 있다. “일본에 놀러 가면 꼭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침밥을 즐겨요. 갈 때마다 생소해 더 유심히 관찰하는 광경이 있어요.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조식을 즐기는 고령의 손님들에게 젊은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이 서비스를 제공해요. 특히 고베처럼 노인 인구가 많고 부유한 도시에 갔을 때 그 광경이 더 두드러져요.” 한 지인의 말이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며 시간적 여유가 있는 노년층이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조식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한다. 조식 시장은 젊은 세대에 의해 도래했으나,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은 노년층일 것이다.
아침 일찍 열어 조식을 제공하는 가게가 우리 주변에 늘어나는 배경에는 서울이 인기 여행지가 된 영향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하루를 일찍 시작해 이국의 도시를 더 알뜰히 즐기려는 수요가 생기자, 조식을 판매하는 가게가 늘었다. 공항철도가 생기며 게스트하우스가 집중된 연남동 일대에 아침 일찍 여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은 이유다. 경복궁 바로 옆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은 최근 1층에 있는 카페보안의 오픈 시간을 오전 11시에서 8시로 당기고 조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안스테이에서 묵는 우리 손님들을 배려해 조식을 시작했어요. 의외로 일반 손님이 많고, 특히 이곳이 관광지다 보니 아예 다른 지역이나 숙소에 묵는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와요.”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의 설명이다.
“물리적으로 어느 때라고 시곗바늘이 더 빨리 돌진 않을 텐데, 아침 시간은 유난히 빨리 흐르는 것 같잖아요. 그건 아마도 아침에 잠이 덜 깨 판단력이 흐리고 행동이 굼뜨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확실히 잠이 깨는 방법이 아침밥을 먹는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처음에는 남들처럼 운동도 해봤는데, 스트레칭하며 꾸벅꾸벅 조는 등 별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빵 한 조각이라도 억지로 먹어보니 확실히 잠이 깨요. 생명력이 생기는 것 같달까요? 그건 음식이 에너지 공급원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하다 마음으로 깨치는 경험에 가까웠어요.” 최 대표의 경쾌한 말투에서 확신이 느껴진다. 그의 말마따나 아침밥은 하루의 활동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아침밥이 잠을 깨우는 결정적 요인은 따로 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저작(咀嚼) 운동이 뇌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해 기억력을 높일 뿐 아니라 잠에 취한 뇌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한편 카페보안의 조식 서비스를 인근에 사는, 자신만의 모닝 루틴을 만들고자 하는 프리랜서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도 흥미롭다.
최 대표의 이야기에 마음이 쏠린다. 한번 아침을 먹어보고 싶은데, 그렇다고 공복 시간을 최대한 유지하는 평소 습관을 놓치고 싶진 않다. 그러려면 저녁을 일찍 먹고, 술 약속을 줄이고, 배가 고프니 아침에 맛있는 걸 먹을 상상을 하며 일찍 잠들 수밖에. 이대로 한다면 기분 좋게 나이트 루틴이 잡히고 건강을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쯤 시도하지 않을 핑계가 없달까. 가끔씩은 아침 외식을 통해 여행을 나선 듯한 기분을 만끽해도 좋겠다. 통의동 보안여관 최 대표는 매일 드나드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시간대에 카페보안에 앉아 있으면 여행하는 듯하다고 한다. 아침 시간대만이 안기는 마법 같은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가로수길에는 아침 9시부터 30분 단위로 식빵을 구워내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여행객이 많은 연남동과 금전적 여유를 가진 노년층이 많은 연희동에는 아침 일찍 여는 가게가 밀집해 있다. 서촌에 자리한 카페 시노라도 아침 9시부터 오믈렛과 프렌치토스트 등의 음식을 낸다. 조식 팝업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 최근에는 카페 얼스어스가 실험적으로 조식 서비스를 반짝 운영했으며, 카페 키이로는 한 달에 하루 이틀 정기적으로 조식 팝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 지난 9월 스타벅스가 2010년 종료한 모닝 세트를 부활시켰다는 것 또한 상징적이다. 아직은 그 빛이 옅지만, 저 멀리서부터 조식 시장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아티스트
- Subodh Gupta
- 글
- 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 사진
- Courtesy of the Artist, Subodh Gupta Studio and Arario Gallery, ©Subodh Gup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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