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주도 유아식?! 아이들이 식탁을 지배할 때_2024 미식 트렌드
음식이 경험이자 놀이, 이동의 목적인 시대다. 서울의 식당은 점차 젊어지고, 야식보다 조식이 떠오르며 푸드 홀 3세대가 시작됐다. 뉴욕 레스토랑은 예약 각축전을 벌이며, 버려지는 음식으로 마련하는 디너는 주요 옵션이다. 서울과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의 식탁 뉴스.
이제 부모는 메뉴 선택권에서 손을 떼야 한다. 일명 아이 주도 유아식이다.
아들이 내 뱃속에 있을 때, 나는 혈액순환을 위해 공원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아이가 태어나면 레몬을 먹여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레몬만 주겠다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오븐에 노르스름하게 구운 로스트 치킨과 브로콜리, 과즙 많은 달콤한 복숭아와 새콤한 코틀랜드 사과, 부드러운 매시트 포테이토와 알싸한 루콜라 같은 걸 생각했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이 취향도 그렇길 원했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생각은 미국 부모에게는 솔직히 이단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이었다.
1894년, 소아과 의사 루터 에밋 홀트(Luther Emmett Holt)는 <어린이를 위한 식단과 돌봄: 어머니와 소아과 간호사를 위한 지침서(The Care and Feeding of Children: A Catechism for the Use of Mothers and Children’s Nurses)>를 출간했다. 이는 맛을 최대한 절제한 담백한 음식을 아이에게 장려하는 내용의 스테디셀러다. 10개월이 지나야 약한 불로 삶은 달걀흰자와 오렌지주스 몇 모금을 줄 수 있고, 24개월에는 구운 감자를 먹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채소는 아주 물러서 으깨질 정도로 부드럽게 삶아야 한다. 홀트는 “맛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 그리고 어떤 아이도 고기를 제대로 씹을 거라고 지레짐작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지난 20년 사이 새로운 접근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새로운 방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음식은 아이가 먹어도 괜찮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굳이 물컹한 이유식을 먹일 필요가 없으며, 다양한 음식을 접할수록 더 좋다. 신맛이든 단맛이든 짠맛이든, 아삭하든 질기든, 부드럽든 딱딱하든 말이다. 수저로 음식을 떠먹이는 것도 그만두라고 한다. 더 이상 앙다문 입술 사이로 수저를 꾸역꾸역 들이밀며 식사 시간을 요새 같은 성에 쳐들어가는 것처럼 만들지 말고, 아이가 직접 음식을 만지고 스스로 집어서 입에 넣게 하라는 것이다. 혀로 직접 음식을 이리저리 굴려도 보고, 잇몸으로 씹게 하라는 얘기다. 그러다가 꿀꺽 삼킬 수도 있고, 뱉어낼 수도 있지만, 걱정할 것 없다. 곧 다시 시도해볼 테니 말이다.
생후 9개월 된 메이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특히 정어리를 즐겨 먹고, 송어와 캐비아도 맛봤다.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앞으로 이보다 더 맛있는 거 만나기 힘들 텐데 어쩔 거냐고요.” 다만 이 점을 강조했다. 아이 주도 유아식의 어려운 점은 음식이 목에 걸리는 것과 아이들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일어나는 구역질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이런 식으로 아이를 먹이는 방식에 아이 주도 유아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단어에서 ‘유아식’이란 단순히 모유나 분유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고형식을 조금씩 같이 먹이는 것을 포함한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방식은 아이가 주도적으로 음식을 먹도록 지켜봐주는 것인데, 어떤 어른에게는 쉽지 않다. 결국 애는 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몇 주 전, 나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소아 식이 전문가이자 작업치료사인 주디 델라웨어(Judy Delaware), 부모들에게 아이 주도 유아식에 대해 알려주는 온라인 강좌를 제공하는 회사 ‘피딩 리틀스(Feeding Littles)’를 운영하고 있는 아동 영양사 메건 맥나미(Megan McNamee)와 이야기를 나눴다. 맥나미가 처음 아이 주도 유아식을 접한 것은 2013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출산 센터에서 강사로 있을 때였다. “직장 동료들이 ‘유럽에서는 아주 큰 인기래’라며 권했죠.” 맥나미는 당시 유아였던 딸에게 그 방법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해 델라웨어와 만날 즈음에는 그 방법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아마 당시엔 제가 미국에서 유일하게 그 방식을 이야기하는 영양사였을 거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델라웨어가 이렇게 거든다. “제 배경이 신경생물학 쪽이다 보니 음식을 삼키는 것과 구강 내 힘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아이 주도 유아식을 처음 접했을 땐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거지?’ 싶었어요. 하지만 이내 가능성을 봤죠.”
이들이 설립한 회사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우리에게 ‘아이 주도 유아식 하지 말걸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고객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맥나미가 말했다. “하나같이 ‘진작에 할걸’이라고 하죠. 아이들은 손과 입으로 사물을 탐구하는 걸 아주 좋아해요. 양념 맛 또한 어른만큼 좋아하고, 새로운 식감과 맛을 시도하는 데 놀라울 만큼 열려 있죠. 온 세상이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한 생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특히 더 그래요.”
아이들에게 진짜 음식을 먹이면 부모들도 훨씬 편해진다. 아이를 위한 식사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다만 명심할 것은 부모들이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분별력 있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역할은 아이가 음식을 먹도록 만드는 게 아니에요.” 델라웨어가 말했다. “제 역할은 아이에게 식사가 즐거운 경험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만약 아이가 파스타나 미트볼을 신나게 먹으면서 당근은 거부한다면, 그냥 내버려두세요. 아이는 자기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느낄 때 새롭거나 수상쩍은 음식을 시도해볼 확률이 더 크죠.”
모든 아이에게 맞는 급식법은 없지만, 몇 가지 걱정은 쉽게 잠재울 수 있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퓌레만 주려는 공통적인 이유는 고형식이 목에 걸려 아이가 질식할까 봐 걱정돼서다. 질식은 기도가 막혔을 때 발생한다. 구역질은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몸을 보호하는 반사운동이며, 보통은 조금도 아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아들이 처음 고형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 맛있게 먹던 음식을 토해낸 뒤 차분히 다시 먹는 모습을 보며 놀란 적이 많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구토를 하지만, 아이 주도 유아식을 통해 음식을 처음 접하면 이런 경험에 일찍 노출돼 연습을 하기 때문에 더 빠르게 숙달할 수 있다. “혀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비롯해 구강 감각 운동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죠.” 델라웨어가 말했다. “우린 아이들이 감각 피드백을 느끼고, 음식을 직접 만지고 입에 넣는 경험을 통해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길 바랍니다.”
‘감각 피드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엉망진창’일 것이다. 아이 주도 유아식에서는 엉망진창 난장판이 많이 일어난다. 머리카락은 오트밀로 범벅이 되고, 목주름 사이에 토마토소스가 낄 것이다. 식탁과 바닥은 아수라장이 될 게 뻔하다.
또한 안전과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혼자 앉아서 손으로 물건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생후 5~6개월 정도 아이는 고형식 먹을 준비가 됐다고 본다. 이를 위해 안전 끈과 발받침이 있는 의자에 앉혀야 하는데, 가족 식사 시간에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아이 의자는 식탁 높이까지 올라오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긴 닭 다리나 망고 조각 같은 덩어리가 큰 음식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오히려 고형식 초보들에게 안전하며, 덩어리가 작은 음식은 나중에, 아이가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집게발처럼 물건을 집어 들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주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아이 주도 유아식 선구자인 질 래플리(Gill Rapley)는 “여기에는 따라야 할 프로그램도, 떼고 넘어가야 할 단계도 없다”고 말한다. 내가 상상하는 대로, 내 아이의 입맛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15개월 된 아들은 페스토를 잔뜩 끼얹은 파스타를 먹거나 사과 한 알을 통째로 들고 먹는 걸 좋아한다. 가끔 사오는 기성품 시금치 파이는 없어서 못 먹는다. 홀트 박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아들은 정말이지 고형 음식의 팬이다. 이 세상은 우리 아이가 자기 속도로 발견해나갈 수 있는 음식으로 가득하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아티스트
- Subodh Gupta
- 글
- Alexandra Schwartz
- 사진
- Courtesy of the Artist, Subodh Gupta Studio and Arario Gallery, ©Subodh Gup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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