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음식으로 차린 만찬_2024 미식 트렌드
음식이 경험이자 놀이, 이동의 목적인 시대다. 서울의 식당은 점차 젊어지고, 야식보다 조식이 떠오르며 푸드 홀 3세대가 시작됐다. 뉴욕 레스토랑은 예약 각축전을 벌이며, 버려지는 음식으로 마련하는 디너는 주요 옵션이다. 서울과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의 식탁 뉴스.
버려지기 전의 음식을 판매하는 앱을 이용해 아홉 명의 디너 파티를 준비해봤다. 과연 이런 행동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몇 주 전 우리 집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준비해 모이는(포트럭) 디너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 참석한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친구가 세 번째 포크를 입에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맛있는데! 이런 건 처음 먹어봐. 이게 뭐야?” “좋은 질문이야!” 수수께끼의 앙트레를 가져온 코미디 작가가 말했다. 그녀는 회색 하키 퍽처럼 생긴 것을 칼로 찔렀다. “이건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오래된 고기처럼 생겼어. 2번가에 있는 푸드 트럭에서 산 건데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이야.”
그날 밤 나와 여덟 명의 친구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모였다. 지구를 완전히 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평소 열었던 디너 파티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줄임으로써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했다. 저녁 식탁에 오른 모든 음식은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시장, 레스토랑, 베이커리, 기타 아웃렛에서 남은 음식을 할인가에 판매하는 앱을 통해 구입한 것으로, 원래는 버려질 음식이었다. 친구를 디너 파티에 초대하며 음식을 준비해 오라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면, 환경보호는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우선, 절망할 만한 몇 가지 상황을 이야기해보자. 미국에서는 농부, 제조업체, 식료품점, 레스토랑, 소비자에 의해 식품 공급량의 30~40%가 버려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음식물 쓰레기 배출에선 우리가 세계에서 선두 주자다. 버려진 음식물은 미국 도시 매립지에서 다른 어떤 물질보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메탄을 발생시킨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거의 10%를 차지한다. 음식물 쓰레기의 40%가 식료품점, 레스토랑, 식품 서비스 회사에서 발생한다. 43%는 당신에게서 나온다. (진정하기 바란다. 콕 집어 당신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포트럭 디너 파티에 필요한 음식을 투굿투고(Too Good to Go) 앱에서 구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앱을 통해 뉴욕시에 있는 6,987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에서 어떤 상품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서프라이즈 백’을 구매할 수 있다. 소비자는 앱을 스크롤해 일정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상점을 선택한 다음 정해진 시간에 미스터리 음식 가방을 수령하면 된다. 음식은 평균적으로 1.99달러에서 9.99달러에 판매되며, 원래 음식의 판매 가격은 그 세 배에 달하기도 한다.
뭘 살지 모르고 쇼핑하는 것은 소개팅을 하는 것과 같다. 그 결과 델리(조리된 육류나 치즈, 흔치 않은 수입 식품 등을 파는 가게)에 풀어놓은 어린아이가 고른 것처럼 말이 안 되는 메뉴의 조합이 되기도 한다. 지난 1월, 스코틀랜드의 한 남성은 4.20달러로 서프라이즈 백을 구매했고 그 안에 개별 포장된 치즈 덩어리 36개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8월, 시카고의 한 여성은 투굿투고 앱에서 구입한 가방을 열어보니 7파운드짜리 부서진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이 여성과 그녀의 친구는 이 케이크를 먹어치웠다고 고백했다).
손님들이 도착하자마자 주방 싱크대에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쏟아부었다. 데리야키 연어 덮밥, 에그롤, 스위스 치즈 한 팩, 필리 치즈 스테이크, 치킨 파르메산 치즈 샌드위치, 피자 세 조각, 볶음밥, 카레 2인분, 렌틸콩 수프, 당근 스무디, 완두콩, 감자, 포도와 오렌지로 이뤄진 과일 팩, 고수, 양배추 2개, 미니 가지 2개, 여주 2개, 한 뼘 길이의 비단 단호박, 오이 약 25개, 망고 치킨 샐러드, 마카로니 샐러드, 쿠스쿠스 샐러드, 비트 샐러드 등 다양했다. 베이글 15개들이 한 봉지를 포함해 빵 제품도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는데, 모두 전혀 손대지 않은 새것이었다. (“디너 파티에 베이글을 가져갈 때 좋은 점은 얼리면 다음에 초대받은 디너 파티에 가져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너드 칼리지의 한 졸업생은 말했다.) 사실 가장 많이 낭비되는 식품 중 하나가 빵이다.
투굿투고는 2015년 덴마크에서 설립됐다. 5년 후 미국으로 시장을 넓혀 지금은 25개 도시에서 공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17개국에서 9,200만 명이 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하루 30만 개 이상의 음식을 ‘절약’한다고 주장하는 이 서비스는 ‘남은 음식계의 아마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설문에 따르면 캐나다 Z세대의 50%가 음식물 쓰레기 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으며, 그중 투굿투고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 밖에도 다른 플랫폼에는 플래시푸드(Flashfood), 올리오(Olio), 바이너싱(BuyNothing), 미스피츠 마켓(Misfits Market) 등이 있다. 미스피츠 마켓은 흠집 나 상품성이 없는 농산물 판매로 시작해 현재는 모든 종류의 고품질 식료품을 판매한다. 한국에도 일명 ‘못난이 채소’라 불리는 것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 플래시푸드는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먹어도 안전한 식품을 최대 50%까지 할인 판매한다. 올리오와 바이너싱은 커뮤니티 기반 플랫폼으로 회원들이 이웃에게 주고 싶은 식품과 비식품이 올라온다. 종류는 반쯤 남은 다이어트 콜라병부터 다시 조립할 필요가 있는 이케아 거울까지 다양하다.
독재자처럼 나는 투굿투고를 비롯해 네 가지 앱 중 하나씩을 손님들에게 할당했다. 그렇게 가져온 음식 더미를 살펴보며 손님들은 사냥과 채집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친구는 음식 수령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며칠 전 투굿투고를 시험 삼아 사용해봤다. 그녀는 근처에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보통 30분 내외의 제한된 시간에 수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대는 업체에서 정하며 매일 달라질 수 있다. 시험 삼아 시도해본 결과, 그녀는 저녁 식사로 집에서 먹는 피자를 상상하며 파크 슬로프에 있는 누메로28 피자집을 이용했다. 오후 8시 30분 수령 시간에 맞춰 도착한 결과는 카놀리와 도넛이 담긴 3달러짜리 봉투였다. 다음 날, 그녀는 오후 2시 30분에 수령을 예약하면 오래된 페이스트리가 아니라 다른 음식을 받을 줄 알았다. 5달러를 지불하고 받은 가방에서 ‘베이글 170개 정도’를 발견했다. 훌륭한 거래였지만 적절한 식사는 아니었다.
뉴욕에 투굿투고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이탤리언 레스토랑과 상점이 입점한 이탈리(Eataly)다. 앱에서는 지점 두 곳을 이용할 수 있다. 이탈리의 서프라이즈 백은 빠르게 매진되고, 레딧에는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빨리 차지할 수 있는지 팁이 올라온다. 행운의 당첨자들에 따르면, 이탈리의 가방에는 포카치아와 호두 소스부터 ‘심하게 찌그러진’ 산마르자노 토마토 캔까지 다양한 음식이 들어 있다고 한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어와 경제학을 전공하는 디너 파티 손님 중 한 명은 여러 체인 상점과 제휴하는 플래시푸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플래시푸드는 맨해튼에 협력 매장이 없으며 브롱크스, 퀸스, 브루클린의 스톱 앤 숍으로만 한정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플래시푸드의 최고 고객 책임자인 조던 셴크(Jordan Schenck)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 앱이 “저소득층 및 고정 소득 고객과 음식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재미에 빠진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즉 “브롱크스에서 11달러에 산 소시지 12파운드를 어떻게 처리할지 3일 동안 고민하는 것을 즐기는 고객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시 디너 파티 시간으로 돌아가기 전 덴마크에 대한 한 가지 재미있는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매일 버려지는 바나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덴마크의 한 슈퍼마켓 체인에서는 “저를 가져가세요, 저는 싱글입니다”라는 라벨을 바나나에 붙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바나나 쓰레기가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의 뿌리는 수확 후 농경지에 남은 농작물 찌꺼기를 모으는 고대 관습인 이삭줍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선한 사마리아인 식품기부법(Bill Emerson Good Samaritan Food Donation Act)’이 통과된 후, 미국 농무부는 식품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개인과 기업이 책임지지 않도록 보호함으로써 그들의 이삭줍기 활동을 장려해왔다.
온라인 식료품점 미스피츠 마켓은 상품성 없는 농산물을 차별하지 않는다. 2개가 붙은 쌍둥이 토마토? 완두콩 크기의 수박? 밑동이 홀쭉한 배?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배달원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 배송한다. 사실 대부분의 농산물이 완벽하게 사랑스럽다. 나는 멜론 껍데기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도했지만, 그렇게 축복받지는 못했다. “상추를 받았을 때 벌레가 나올 줄 알았는데 괜찮았어요.” 나의 손님 중 한 명이 말했다. 유기농 사과, 귤, 포도 등 그녀가 주문한 과일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제게 오는 도중에 큰 성형수술을 받았나 봐요.”
디너 파티에서 봉지를 열고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은 후 탄수화물 섭취가 시작됐다. 모든 뷔페가 그렇듯 이 뷔페도 모든 사람을 대식가로 만드는 듯 보였다(과학자들은 이 본능을 ‘섭취 통각 상실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음식을 먹는 동안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해 풍요 속에서 계속 먹게 한다. 심지어 배가 불러도 말이다. 이것은 식량이 부족할 때를 견디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나의 손님들은 한 접시 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음식을 뜨러 갔다. 나이지리아 음식(여러 게스트가 10점 만점에 6점이라고 평가)을 제외하고 어떤 음식이 인기가 있었을까? 디저트였다. 특히 투굿투고에서 구입한 베이커리-카페 체인점 마망(Maman)의 다양한 대형 페이스트리는 이탈리아 요리만큼 인기가 높았다.
소화시키면서 우리는 그 앱이 변화할 수 있는지 논의했다. 농장에서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미미한 훼손(농작물 해충, 부적절한 보관 및 냉장, 노동력 부족 등으로 인한)은 잠시 잊어버리자. 식당에서 사용하지 않은 음식의 85%와 마트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식료품의 30%는 어떤가?
나는 터프츠 대학교의 식품 경제학 및 정책학 교수인 윌리엄 마스터스(William Masters)에게 음식물 쓰레기 앱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그는 “남은 음식물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앱에 찬사를 보낸다”고 비꼬며 답했다. 즉 비평가들은 이런 앱이 환경 및 인도주의적 영향을 과장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앱이 남는 음식을 상품으로 전환함으로써 식당과 소매업체가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고 남은 음식으로 빈곤층을 돕는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려는 동기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우리를 먹이는 손을 깨물다: 어떻게 소수의 똑똑한 법이 우리의 식량 시스템을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가>의 저자 베일렌 리네킨(Baylen Linnekin)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이런 앱이 문제를 더 인식하게 해 음식물 쓰레기가 조금이라도 줄고, 일부 사람들이 더 저렴한 음식을 구매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긍정적입니다.” 그가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파티는 끝났다. 아홉 명이 과식하는 데 들어간 총비용은 244달러였다(내가 준비한 와인과 버터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버터는 산더미처럼 쌓인 빵에 딸려온 것이다). 내가 테스트한 손님 중 음식물 낭비 방지 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몇 명일까? 손님 중 한 명은 투굿투고를 사용할 거라고 말했다. 그 앱을 통해 다양한 레스토랑을 체험할 수 있고 “누군가 케이크를 낭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손님 중 세 명은 그날 디너 파티 전에 이미 그 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나머지 손님들은 앱을 사용하지 않을 다양한 이유를 제시했다.
“저녁 8시 40분에 반쯤 상한 베이글을 먹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서프라이즈 백에 내가 좋아하는 베이글 맛이 들어 있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하루를 보내는 거예요.” “상하거나 배탈 날 수 있는 음식을 받지 않을까 의심스러워요. 차라리 돈을 더 내고 믿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요.” “돈을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앱은 사용자가 평소보다 다섯 배나 많은 물건을 구매하도록 부추기고 있어요.”
손님들이 남은 음식을 가방 가득 들고 떠난 후에도 나에게는 사과 여러 개, 비트 샐러드 한 통, 치킨 파르메산 치즈 샌드위치 등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버리는 것은 구조견을 개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만큼 잘못된 일이라고 느꼈다. 나는 모든 음식을 밀폐 용기에 조심스럽게 포장해 냉장고 구석에 넣어두었다가 며칠 후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쓰레기통에 모두 버렸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아티스트
- Subodh Gupta
- 글
- Patricia Marx
- 사진
- Courtesy of the Artist, Subodh Gupta Studio and Arario Gallery, ©Subodh Gup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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