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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푸디들의 가장 뜨거운 놀이터_2024 미식 트렌드

2024.11.30

서울 푸디들의 가장 뜨거운 놀이터_2024 미식 트렌드

음식이 경험이자 놀이, 이동의 목적인 시대다. 서울의 식당은 점차 젊어지고, 야식보다 조식이 떠오르며 푸드 홀 3세대가 시작됐다. 뉴욕 레스토랑은 예약 각축전을 벌이며, 버려지는 음식으로 마련하는 디너는 주요 옵션이다. 서울과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의 식탁 뉴스.

Subodh Gupta, ‘7:15pm’, 2013, Oil on canvas, 28×38×2.5cm

음식 자체가 이동의 목적이며, 새로운 경험이자 놀이가 되는 세대. 그들이 푸드 코트 3.0 시대를 열고 있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백화점을 비롯한 몰(Mall)에서 곧잘 약속이 잡히고는 했다.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쇼핑을 하고, 지하 푸드 코트로 향하면 하루는 금세 지나갔다. 위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영등포인지, 강남인지, 삼성동인지. 만나는 그룹의 편의성에 따라 달라질 뿐, 어디를 향해도 비슷한 경험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니까. 몰 바깥의 세상에서 훨씬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자명해 보였지만, 편리함이 우선일 때는 이만한 선택지가 없었다. 특히 쇼핑이 주된 목적이라면 더욱 그랬다.

이렇듯 한곳에서 쇼핑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공간은 우리 라이프스타일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곳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해묵은 복합 몰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음식이 거대하고 중요한 콘텐츠로 떠올라서다. 부유층의 하루를 농담 삼아 표현하던 “점심에 우동 먹으러 일본 다녀온다”는 말을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 삶에서 실현하기 시작했고, 어느 시골의 짬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불편한 교통도 불사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여행사는 특정 관광지 대신 현지 맛집으로 루트를 짠 먹방 패키지를 출시하고 나섰다. 여행하는 김에 먹고, 쇼핑하는 김에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가 이동의 목적이 된 시대에 간단히 한 끼 때울 만한 푸드 코트의 음식에 여간해서는 발걸음이 동하지 않는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백화점 푸드 코트를 필두로 몰이 변신을 시도한 이유다. 가치 있는 먹거리를 집대성한 거대한 ‘푸드 홀’로 거듭나며 푸디들을 새롭게 유혹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치란, 당시의 주된 소비 세대가 먹고 싶어 하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 여행의 목적이 음식이 됐다면, 그 음식을 몰 안으로 들여놓으면 될 일이었다. 각 지방은 물론 전 세계 이름 있는 맛집을 앞다투어 섭외하며 푸드 코트 2.0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먹으러’ 백화점과 몰에 가기 시작했다.

이것도 어느덧 10년 전 이야기다. 이후 음식은 여러 문화 요소와 결합하며 더욱 강력한 콘텐츠로 성장했고, 푸드 홀의 발전을 촉구했다. 특히 백화점은 이제 기존 푸드 코트 입점 매장 교체와 리뉴얼을 넘어 작정하고 미식에 방점을 찍은 새로운 공간을 설계하고 나섰다. 기존처럼 분점 개념의 지역 맛집은 기본이고, ‘이곳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 몰링(Malling)을 하기 시작했다. 3년 전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이 대표적이다. 백화점이란 이름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기존 백화점 공간의 전형성을 완전히 탈피했다. 공간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광장. 지하 1층에 무려 1만4,820㎡(4,483평), 국내 최대 규모로 오픈한 푸드 홀 ‘테이스티 서울’은 점포 하나라도 더 채우는 경제적 구조를 포기하고 집중과 선택을 통한 비움을 지향함으로써 광장 같은 공간으로 구현됐다. 10여 개의 푸드 트럭이 모여 있는 공간, 카페와 베이커리 존, 몽탄과 금돼지식당, 뜨락의 합작이자 첫 매장인 수티를 비롯해 맛집이 모여 있는 푸드 스트리트 존, 그리고 프리미엄 슈퍼마켓인 테이스티 서울 마켓 등 크게 네 구역을 저마다 특색 있게 꾸렸다. 각 구역을 지나는 통로는 최대 5m. 기존 백화점의 최대 두 배 이상이 되는 통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을 ‘걷게’ 만들었고, 곳곳에 위치한 휴식 공간은 각자가 먹거리 쇼핑을 마치고 모여 즐기도록 꾸몄다. 결정적으로 비움을 실현한 공간의 유동성은 팝업 설치에 유리했다. 1년 동안 450여 개의 팝업을 치러내며 성수동 못지않은 팝업 성지가 된 비결이랄까. 셰프들의 시연부터 유명 위스키 팝업 등 다채로운 F&B 이벤트로 1년 내내 새로운 무드를 연출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온라인에서 ‘더현대 서울 오픈런 팁’이 공유될 정도다.

자, 이제 몰 바깥의 세상이 더 재밌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Subodh Gupta, ’11:30pm’, 2013, Oil on canvas, 20×28×2.5cm

더현대가 음식을 중심으로 한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세계는 세밀한 ‘큐레이션’으로 승부수를 두었다. 지난여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이 만나는 지점, 면세점이 있던 그 자리에 3층 규모로 세운 ‘하우스 오브 신세계’가 주인공이다. 10여 개의 음식점이 모여 있는 푸드 홀과 전천후 와인 숍을 결합한 새로운 미식 플랫폼이다. 오픈 전부터 소위 이름 좀 날리는 셰프들과의 협업이 알려지며 푸디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고, 역시 오픈런으로 공간은 기분 좋은 몸살을 앓았다. 38년 역사의 강남 초밥집 ‘김수사’가 최초의 분점을 이곳에 냈고, 예약 성공기를 간증처럼 말하는 ‘바위파스타바’의 김현중 셰프도 2호점을 냈다. 용리단길 인기의 주역 남준영 셰프의 새로운 매장 ‘키보 아츠아츠’가 오픈했는가 하면, 부산에서 뉴욕으로 진출한 ‘윤해운대갈비’가 한국으로 역수출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런 시도가 아주 처음은 아니다. 수년 전 특급 호텔이 로드 숍 스타 셰프 모시기에 열중하며 대중에게 매력을 어필했고, 몇몇 백화점에서 셰프들의 델리 숍을 만나볼 수 있었던 사례도 있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는 호텔보다는 접근성 높게, 델리 숍보다는 품격 있는 서비스로 그 간극을 파고든 것이다. 이곳 역시 공간을 ‘비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더현대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재현했다면, 하우스 오브 신세계는 푸드 홀 중앙을 사람들이 머무는 호텔 로비로 구현했다. 널찍하고 안락한 소파와 높은 층고,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우아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까지, 그간 푸드 홀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세련된 여유로움을 새겨 넣었다. 각각의 매장 역시 빽빽하게 좌석을 채우지 않아 ‘옆자리 대화가 쉬이 들리지 않도록’ 설계했다. 보통의 푸드 홀이 1,652㎡(500평) 기준 550석 정도 들어선다면, 이곳은 그 절반에 그치는 좌석만 설치했다. 2층 와인 셀러는 와인 애호가로 완전히 타깃층을 좁혔다. 기존 식품관 한편에 자리한, 주로 ‘급하게’ 와인이 필요할 때 찾거나 겸사겸사 둘러보던 공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려 5,500여 종의 주류를 구비한 가운데, 압도적인 양으로 진열된 매그넘 사이즈 와인을 비롯해 절반 이상이 희귀 와인이다. 주류 산지나 카테고리에 따라 방처럼 나눠 ‘둘러보는’ 재미를 더했다. 여기에 직원이 동행해야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해외 와이너리의 저장고를 방문한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컬렉션 룸까지, 그야말로 와인의, 와인에 의한, 와인을 위한 공간이다. 참고로 하우스 오브 신세계에서 쇼핑을 위한 공간은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을 집약한 분더샵 메자닌이 전부다. 규모로만 보면, 총 7,273㎡(2,200평)에서 6,113㎡(1,850평) 정도가 먹고 마시는 공간으로 기존 백화점이 F&B에 할애하던 공간 비율을 떠올리면 놀라운 수준이다. 이렇듯 대형 리테일러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몰의 전반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여력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기존 푸드 코트 전면 리뉴얼에 나선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은 여전히 명품을 비롯한 패션 아이템에 있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머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단연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 음식이 대중의 삶에 중심이 된 것일까? 종류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비교적 가장 손쉽게 살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지난 몇 년간 서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명품 브랜드의 다이닝 오픈이 활발한 이유도 여기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파리로 향하는 것보다는 파리에서 온 디저트를 서울에 있는 매장에서 먹는 것이, 명품 백 하나 구매하는 것보다는 럭셔리 브랜드에서 오픈한 식당을 경험하는 것이 ‘당장’ 더 쉽고, 접근성 좋은 가격으로 그 가치를 간접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음식을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세대, 먹는 것 자체가 놀이인 세대가 지금의 푸드 코트 3.0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밀하게 큐레이션하거나, 한 장르에 집중하거나, 또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규모와 콘텐츠로 그곳만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푸드 홀은 당분간 서울 푸디들의 가장 뜨거운 놀이터가 될 것이다.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아티스트
    Subodh Gupta
    장새별(F&B 콘텐츠 스타앤비트 대표)
    사진
    Courtesy of the Artist, Subodh Gupta Studio and Arario Gallery, ©Subodh Gup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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