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편집숍 덴스크, 김효진 대표의 집
덴마크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해온 리빙 편집숍 덴스크의 김효진 대표. 그는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수집한 물건을 비워내며 삶과 책임, 미래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덴스크(Dansk)’의 김효진 대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태원 중심에 산다. 어린 시절을 중동에서 보낸 영향인지 다양한 문화와 세대가 공존하는 동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2008년 가로수길에서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편집숍으로 시작해 덴스크와 결이 맞는 국내외 공예 작가, 브랜드 제품을 소개하거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그에게 집은 의미가 크다. 인체의 피부와 옷에 이어 건축을 ‘제3의 피부’라 표현한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의 말처럼, 집은 세상의 자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컬렉팅하며 취향을 다듬어온 김효진은 최근 물건을 비우고 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구인 테이블에 앉아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집은 어떤 공간인가?’ 질문하면서.
여러 계절을 지나 비로소 제 몸에 꼭 맞는 집을 찾고 싶었어요. 주인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니까요.
누군가의 디자인과 집을 동경할 수 있지만 내 삶에 들일 순 없잖아요. 우리 집 인테리어 컨셉이라… 글쎄요. 그저 제가 편안함을 느끼는 스타일이죠. 이 집에 이사 온 지 2년 정도 됐어요. 체리목 몰딩에 시트지를 덧붙이고 카펫과 커튼을 설치한 것 말고는 엄청난 인테리어도 하지 않았어요.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삶의 흔적이 느껴져서 좋아요. 특히 유년 시절을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내서인지 거실 정면으로 보이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소리 ‘아잔’이 흘러나오면 향수에 젖어요.
덴스크를 통해 명확한 취향을 확인했기에 컬렉션이 궁금했어요. 최근 미니멀리즘에 몰두한다고요.
처음 집에 왔을 때, 의자랑 조명 딱 하나씩만 있었어요. 이전 집에선 물건을 테트리스 하듯 빼곡히 쌓아두었는데 비우니 편히 숨 쉴 수 있었죠. 그 전까지는 좋아하는 그림, 가구, 향으로 집을 가득 채우며 살았어요. 10대 때부터 예쁜 그릇이나 컵, 물건 사 모으는 걸 좋아했거든요.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캐리어가 터질 정도였어요. 요즘은 되레 비우는 데 관심이 많아요. 컬렉팅한 가구, 그릇을 많이 처분했습니다. 지난 15년을 되돌아보니 이사를 열 번 다녔더라고요. 집이나 사무실에 짐이 참 많은데 어느 순간 짐이 제 목을 조르는 것 같았어요. 그저 사 모으는 게 아니라 물건을 쓰고 버리는 과정 전반에 책임이 필요하구나 싶었어요. 2021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레이어드 홈’을 주제로 전시를 하며 소유한 물건의 쓰임과 책임을 얘기했는데요, 공간을 꾸밀 때 가장 중요한 건 스타일이나 컬러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뭘 좋아하고 집에서 뭘 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가. 요즘 제일 기피하는 건 쉽게 버려질 물건이에요.
정말 애정하는 물건만 남았겠군요.
멀었어요. 아직도 비워내는 중이에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물건은 알바 알토 화병이에요. 기교를 부리지 않고 꽃 한두 송이만 꽂아도 아름답죠. 90년 가까이 된 디자인인데 여전히 사랑받아요. 매일매일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디자인, 시간을 공유하며 나이 드는 물건이 좋아요. 거실 소파 앞에 놓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커피 테이블도 마찬가지예요.
<보그 리빙>과의 만남을 앞두고 거실 가구 배치를 바꿨다고요.
원래 덴마크 디자인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가느다란 실루엣의 소파를 좋아했어요. 10년 넘게 북유럽 특유의 3인용 소파를 쓰다가 최근 집에서 늘어져 쉴 수 있는 묵직한 덩어리 느낌의 흰 소파로 바꿨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음악도 듣고 책도 읽어요. 주위엔 조선 시대 가구, 덴마크 브랜드 프레데리시아의 ‘2213 모겐센’ 소파 등을 배치했어요. 공간 자체를 즐기고 싶었던 터라 가구가 많지는 않아요. 공간이 트여 있으니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아침이면 빛과 방향에 따라 다른 색을 내는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작품 위로 키 큰 고무나무 잎사귀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참 아름다워요. 일상의 작은 묘미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해요.
북유럽과 한국 디자인이 은은하게 어우러졌군요.
정확해요. 사우디아라비아에 살 때도 북유럽 가구를 주로 사용했어요. 북유럽 가구는 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간결하게 디자인하거든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 여성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아요. 유년 시절에 늘 집 안에 머물며 눈에 익은 가구가 그런 것들이었죠. 그땐 알지 못했는데 영국 소더비와 크리스티 인스티튜트 미술사 & 장식예술사를 공부하며 알았어요. 방학이면 한국에 돌아와 외가가 있는 충북 보은의 선씨 종가 한옥에 머물렀어요. 한옥을 하나의 거대한 공예품으로 봐요. 그 아름다운 곳에서 흙과 물을 만지며 시간을 보냈어요. 해외의 집에서만 머물러 바짝 마른 스펀지 같은 아이에게 오감의 물을 부어주는 격이었죠. 유년 시절 성장하며 쌓은 감각이 지금 집에 녹아 있어요.
집이 달라지면서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나요?
삶이 단순해졌어요. 집이 좋으니까 머무는 시간이 당연히 늘었고요. 요리를 좋아해서 건강한 음식도 차려 먹고요. 지금 앉아 인터뷰를 나누는 샬롯 페리앙의 ‘폼 리브레’ 테이블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었어요. 이 테이블이 참 재밌어요. 프랑스 건축가 샬롯 페리앙이 플레이트 여러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보며 여러 명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모양을 구현한 디자인이죠. 사용해보니 어느 각도에 앉든 정말 편해요.
20년 가까이 리빙 분야에서 한길을 걸으며 느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디자인이란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만 도구 역할을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에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일상적인 행위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오래 사용하기 어렵죠. 내 몸과 생활 패턴에 편안한 것을 찾아야 해요. 다이소든 이케아든 상관없어요. 그러려면 스스로를 아는 시간이 필요하죠. 내게 꼭 맞는 물건이 모였을 때 부드럽게 어우러진다면 좋은 공간입니다. 무엇 하나 모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밸런스가 잡힌 공간 말이에요. 사람도 그렇지만 사물도 대화를 나눈다고 믿어요. 각각이 지닌 아우라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 이유죠. 아트 페어에 가면 갤러리에서 쓰는 집기를 유심히 본 적 있나요? 거의 셋으로 나뉘어요. 도널드 저드의 작품, 피에르 잔느레와 샬롯 페리앙처럼 195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한 건축가들이 만든 가구 혹은 북유럽 빈티지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 아우라를 지닌 것들이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공간이죠. 집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워요. 덕분에 저라는 사람, 덴스크의 다음 챕터도 골몰하게 돼요.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리빙 시장이 많이 커졌잖아요. 그래서 2008년부터 덴스크를 운영했지만 저 또한 고민이 깊습니다. 단순한 제품 큐레이션 이상을 원하는 대중의 갈증도 느끼고요. 오늘도 이 오래된 테이블에 앉아 미래를 궁리할 거예요. (VL)
최신기사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사진
- 김형상
- 글
- 유승현(프리랜스 에디터)
추천기사
-
여행
풍성하고 경이로운 역사를 품은 스페인 중부 여행 가이드
2024.11.22by VOGUE PROMOTION, 서명희
-
푸드
당신이 레스토랑 예약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_2024 미식 트렌드
2024.11.30by 김나랑
-
리빙
"비로소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 앰버 발레타의 친환경 집
2024.12.01by 류가영
-
푸드
아이 주도 유아식?! 아이들이 식탁을 지배할 때_2024 미식 트렌드
2024.11.30by 김나랑
-
웰니스
행복하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들의 9가지 특징
2024.11.24by 장성실, 황혜원, Alessandra Signorelli
-
셀러브리티 스타일
귀엽거나 클래식하거나! 셀럽의 더플 코트 활용법
2024.12.02by 오기쁨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