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뉴욕에서 흙을 빚는 작가, 제니 지은 리

2024.12.05

뉴욕에서 흙을 빚는 작가, 제니 지은 리

제니 지은 리는 한국 전통 가마에 돌아가며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다. 그녀는 알렉산더 맥퀸 협업 등을 거치며 도예와 회화, 미술과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나비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으며, 그 꽃은 그녀의 도자에서 새로운 생명을 이어간다.

스튜디오에서 페인팅 작품 ‘Stanley’ 앞에 앉은 제니 지은 리 작가. 블라우스와 팬츠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구두는 마르티니아노(Martiniano).

9월 어느 날, 뉴욕 근교의 설리번 카운티로 향하는 길엔 어느새 색색의 단풍이 찾아왔다. 한참을 운전해 도착한 제니 지은 리(Jennie Jieun Lee)의 공간은 자연으로 가득한 풍경에 이질감이나 위화감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풍경과 정원, 집의 경계가 흐려질 정도였다. 입구에 들어서 담장 옆 뿌연 창 너머로 가마가 힐끗 보이는 작업실, 반려견 이름을 딴 ‘Lora’s Garden’이라는 진녹색 팻말이 달린 작은 정원을 지나 그의 집에 발걸음이 닿았다. 직접 만든 그릇으로 작은 상차림을 준비한 다이닝 룸에서부터, 방금 읽은 듯 책갈피를 끼운 책이 쌓인 거실 테이블, 정원에서 기른 아마란스와 달리아를 멋스럽게 꽂아둔 벽난로 위 화병까지 그녀의 손길은 모든 곳에 닿아 있었다. 차나 커피를 권하는 목소리는 활기찼으며, 말린 토마토, 샌드위치, 올리브를 차려 내놓는 손은 정성이 가득했다. 그녀의 이 애정 어린 공간은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를 이렇게 따뜻이 맞이했다.

다이닝 테이블 옆에 진열된 소품. 색색의 세라믹 화분은 그녀가 코일링 기법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제니 지은 리는 1970년대 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미술 선생이던 어머니 이혜영(작가는 어머니의 한글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어주었다)은 그녀와 동생을 종종 뉴욕의 미술관에 데려가곤 했다. 남들과 다른 피부색으로 혼란스럽던 어린 시절, 미술은 안식처가 됐다.

단순히 미술학교를 졸업한 도예가로 그를 정의하긴 어렵다. 미술 학도 시절 ‘학교가 끝나는 것이 싫어’ 휴학을 택한 작가는 뉴욕의 반스 앤 노블, 타워 레코드, 어반 아웃피터스, 콜리세움 북스 등 온갖 상점에서 일하며 울타리 밖 삶을 배웠고, 졸업 이후 11년 동안 미술보다는 다른 일로 생계를 꾸렸다. 그 때문인지 그녀와 그 작업들은 자유롭다. 도자기 만드는 과정에서 물레와 슬립 캐스팅을 넘나드는 성형, 시중에 없는 본인의 유약을 제조하는 등 다채로운 실험을 이어간다. 그뿐 아니라 그녀의 작업 세계는 도예와 회화, 미술과 패션,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다이닝 룸에서 거실, 그리고 거실에 연결된 아담한 작업실을 거닐며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슬립 캐스팅 기법으로 만든 도자기에 유약을 입힌 작은 흉상 작품 ‘Flat Nose’.

스튜디오 입구에 쌓인 것은 무엇인가요?

올봄 쿠퍼 콜(Cooper Cole)에서 열린 개인전 <Strawberry Nose>에서 사용한 석고 틀이에요. 액체 점토를 틀에 부어 도자기 형태를 만드는 슬립 캐스팅 기법이죠. 업스테이트 뉴욕의 오래된 창고에 수북이 쌓인 이 틀에서 어느 기억이 떠올랐어요. 1980년대 뉴저지, 하루는 어머니가 이런 틀을 활용해 찍어낸 도자기에 색을 칠하는 공방에 데려갔어요. 도자기를 처음 접한 기억 중 하나인데 여전히 생생해요. 그 기억처럼 이 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본격적으로 도예를 시작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다양한 매체 중 왜 하필 도자기였나요?

보스턴의 한 미술대학에 회화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도자기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언젠가부터 도예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날이 반복됐죠. 지금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바로 그 공간에서요. 특히 물레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 흙 반죽을 올려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이게 때로는 몇 개월이 걸리는 어려운 과정이에요. 하지만 쉼 없이 노력했고 결국 중심 잡는 법을 터득했어요. 물론 초기 작품은 옆으로 기울어지고 바닥도 벽돌처럼 두꺼웠지만 유약을 입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니 즐거웠어요.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구워내면 유리처럼 반짝이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 유약을 겹겹이 쌓는 과정이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죠.

유약 바른 도자기와 유화로 작업 중인 자화상.

하지만 졸업 후 한동안 작업을 멈췄지요.

졸업 후 뉴욕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 비싸졌어요. 생계를 감당하느라 11년 동안 작업을 완전히 중단했죠. 그러다 우연히 한 친구가 소개한 브루클린 도예 공방 클레이스페이스 1205(Clayspace 1205)에서 열리는 홀리데이 마켓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디렉터가 아주 따뜻하게 대했고 공방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바닥을 닦고, 유약을 만들고, 가마에 불을 지피며 작은 작업 공간을 갖게 되었어요. 작품을 다시 할 수 있다니 행복했습니다. 11년 동안의 공백이 터져나오듯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2014년 뉴욕 마르토스 갤러리(Martos Gallery)의 그룹전 <Bad Fog>에 참여했고, 그렇게 다시 커리어가 시작되었어요. 이 갤러리와 함께 일한 지도 벌써 10년이군요.

이 갤러리에서 2022년 열린 개인전 <Marie>가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내 경험이나 기억을 바탕으로 전시를 준비해요. 이 전시 제목은 동명의 역사적 인물 마리 라보(Marie Laveau)에서 따왔어요. 혼란스러운 청춘이었던 1990년대, 친구들과 뉴올리언스로 떠난 로드 트립에서 부두교 실천가이자 산파로 알려진 그녀의 무덤을 방문했어요. 무덤 주변에는 다녀간 이들이 소원을 빌며 놓아둔 꽃과 작은 물건이 가득했죠.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그 기억이 맴돌았어요. 그러다 누군가 무덤 전체를 분홍색으로 칠하고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석고와 재료가 떨어져나가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제 그 무덤이 있는 세인트 루이스 묘지는 가이드 투어로만 방문할 수 있고요. 전시에서는 기억 속의 그 무덤을 재현했어요. 무덤 주위에 테라코타로 만든 항아리와 직접 기른 꽃, 인생에서 소중히 여겨온 다양한 물건을 놓아두었어요. 보석, 크리스털, 영화 티켓같이 이삿짐 상자 속에서 하나씩 꺼내며 아름다운 기억을 곱씹는 그런 물건들 말이죠. 그리고 관람객도 직접 표식을 남기거나 작은 공물을 놓으며 이 작업을 실제 무덤처럼 대할 수 있게 구성했어요.

물레로 제작한 도자기 화병 ‘Juice’.

그 꽃도 이 정원에서 기른 것인가요? 언제부터 가드닝을 시작했나요?

팬데믹 직전, 브루클린 집보다 더 여유로운 공간을 찾아 남자 친구 그레이엄 콜린스(Graham Collins)와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의도치 않게 여기에 묶여 있으니 어떻게 하면 이 땅을 유용하게 활용할지 고민하게 됐죠. 당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절정기였고,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어요. 뭐든 세상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 싶었죠. 그래서 세상에, 적어도 나비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 꽃밭을 가꾸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유튜브와 책을 참고하며 하나씩 배워갔고 그걸 바탕으로 꽃을 피워 전시를 열었어요. 집 주변에 작은 정원이 몇 개 있어요. 이제는 꽃 말고도 여러 식물을 심고 있고요. 토마토, 고추, 아스파라거스가 3년 만에 드디어 자랐고 파, 감자 같은 야채도 키웠어요. 다테리노라는 작은 주황색 토마토가 있는데, 파스타에 넣으면 정말 맛있어요.

집과 정원이 아름다워 가족이나 손님이 많이 찾아오겠군요.

맞아요. 특히 어린 손님들이 즐거워해요. 이 집과 주변의 모든 것을 만지고 깨뜨릴 수 있지만 언제나 환영이죠. “어렸을 때 할머니 정원에서 자라면서 이런 걸 배웠다”고 많은 사람이 얘기해요. 들을 때마다 부러웠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거든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저와 여동생, 어머니만 있었고, 아버지는 제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일까요? 정원을 갖게 된 것이 정말 좋았어요. 여동생과 조카는 10여 년 전 스웨덴으로 이주했지만 가끔 이곳을 찾아와요. 그 아이가 꽃을 꺾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세대에게도 무언가를 물려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남자 친구 그레이엄 콜린스가 만든 세라믹 물뿌리개 시리즈.

정원뿐 아니라 다이닝 테이블에 차린 그릇도 직접 만들었군요.

한동안 가르치는 일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유약을 이용한 기능적인 작품, ‘글레이즈무드(Glazemoods)’라는 라인을 만들어 판매했어요. 하지만 커리어가 쌓이며 매년 개인전을 열다 보니 병행하기 어려웠죠. 결국 그 라인은 중단했어요. 그래도 이번 할로윈에 친구들이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 여는 전시 공간 스노우 갤러리(Snow Gallery)에서 선보이기 위해 특별한 에디션을 준비 중이에요.

촬영을 위해 거실에 꺼내놓은 드레스가 눈에 띄는데요, 브랜드와 협업한 것이죠?

레이첼 코미 매장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일하던 오랜 친구가 협업을 제안했어요. 정말 멋질 것 같았죠. 이전에 패션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제 디자인을 패브릭에 적용하고 싶어 한다는 게 영광스러웠어요. 색색의 유약을 겹쳐 바른 제 도자기의 표면을 드레스로 구현한다는 게요. 그리고 2022년 알렉산더 맥퀸으로부터 협업 제안이 왔을 때도 무척 감동했어요.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이 손수 쓴 편지를 봤을 때나, 패션쇼에 초대받았을 때도요.

거실 한쪽에 놓인 제니 지은 리의 ’Onibaba’는 나무에 도자기와 유화로 작업했다.

패션에 대한 이해가 깊어 보입니다.

옷도 하나의 예술적 표현이라 여기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존중해요. 사람들이 차려입고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완성된 퍼포먼스고, 거리 자체가 일종의 갤러리죠. 특히 뉴욕 길거리의 사람들이 여러 세대를 자유롭게 믹스한 스타일을 보며 그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생각에 자극을 받아요. 예전에는 특정 스타일이 유행하지 않으면 눈치가 보였지만, 지금은 모든 스타일이 하나로 섞이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되어버렸죠. 이런 무질서한 혼합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마지막으로 도예로 돌아가, 지금은 뭘 준비하고 있나요?

코네티컷 올드리치 현대미술관(The Aldrich Contemporary Art Museum)에서 2026년 상반기에 개인전이 열릴 거예요. 첫 미술관 개인전이라 들떠 있죠. 2년 전에 한국으로 떠난 리서치 여행에서 본 한국의 전통 가마와 사람들이 돌아가며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과정이 인상 깊었어요. 이에 영감을 받아 이번 전시를 구상 중이에요. 봄방학 동안 짧게 다녀왔지만, 서울 근교 도예 명장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한국에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죠. 미국에서 작업하는 방식과 완전히 달랐어요. 여행 전에는 ‘내가 도예에 사로잡힌 이유는 한국인이기 때문인가?’ 하고 막연히 추측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오히려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이었어요. 제 작업은 한국을 떠나 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면서 적응해가는 과정, 그리고 뉴욕 거리의 경험과 시각이 반영된 결과물이에요.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사진
    이현우
    정하영(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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