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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가 만든 장미 향취의 핑크빛 와인

2024.12.06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가 만든 장미 향취의 핑크빛 와인

음악과 패션을 아우르는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의 창작욕이 이번에는 와인으로 향했다. 그가 사랑한 장미의 향취를 머금은 새 로제 와인 로즈블러드 데스투블롱 이야기다.

파리의 개인 녹음실에서 만난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

프로방스 지방 한가운데 자리한 샤토 데스투블롱(Château d’Estoublon) 주변으로 향기로운 장미가 한가득 피어 있다. 18세기 성은 라벤더밭과 온갖 채소밭에 둘러싸여 있지만 풍성하게 여문 장미는 결코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지 않는다.

슈퍼모델 겸 싱어송라이터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Carla Bruni-Sarkozy)는 2020년 남편인 프랑스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와 함께 이전 소유주가 매물로 내놓은 이 성을 처음으로 찾았다. 당시 와인 애호가인 브루니 사르코지를 매료한 것은 드넓은 포도밭. 1949년부터 훌륭한 와인 생산지로 자리매김한 무려 약 30만㎡(9만 평)에 달하는 대평원이었다. “우린 이곳을 보자마자 완전히 푹 빠져버렸어요.” 파리에 자리한 개인 녹음실에서 <보그>를 맞이한 브루니 사르코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녹음실 벽면은 수십 년에 걸쳐 작업한 브루니 사르코지의 사진으로 가득했고, 클래식 코르도바 어쿠스틱 기타와 그 밖의 기타 여러 대만 걸어둔 벽도 있었다). “포도나무와 장미, 플라타너스가 이 성에서처럼 무성하게 자라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답니다. 특히 여름이 되면 지상 낙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여기에 심상찮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건축물까지, 형용하기 힘든 모든 로망이 한데 어우러진 나만의 에덴동산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18세기에 지은 샤토 데스투블롱에 방문한 순간,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는 어디에나 피어 있는 장미의 풍성한 색채와 향기에 순식간에 매료됐다

샤토 데스투블롱의 훌륭한 유산과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사르코지 부부는 도멘 바롱 드 로칠드(Domaines Barons de Rothschild) 와이너리의 전 소유주 장 기욤 프라(Jean-Guillaume Prats), 그리고 프랑스의 미디어 사업가 스테판 쿠르비(Stéphane Courbit)와 힘을 합쳤다. “과거에는 한 가족이 이 부지 전체를 소유했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꿈꾸는 만큼 이곳을 가꾸고 키워내진 못했죠.” 브루니 사르코지가 이야기했다. “두 사람과 우리 부부는 이 성을 둘러싼 새로운 비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눠요. 파트너이긴 하지만 친구처럼 아주 가깝게 교류하면서요. 우리가 이곳을 멋지게 가꾼다면 더 많은 사람과 이곳에서 누린 멋진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달성한 첫 미션. 이들이 함께 만든 로제 와인 로즈블러드 데스투블롱(Roseblood d’Estoublon)의 2023 빈티지가 비로소 미국 와인 시장에 출시됐다. 성이 있는 지역에서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미 품종인 로즈블러드가 와인 이름으로 채택됐다. “모든 것엔 의미가 있잖아요.” 브루니 사르코지의 의뭉스러운 이야기가 곧바로 장미에 대한 찬사로 이어졌다. “로즈블러드라는 이름은 사실 장미 그 자체를 의미해요. 샤토 데스투블롱에서는 어딜 가나 장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죠. 이곳에서 장미는 단순한 꽃이 아니랍니다. 이 땅 전체를 상징하죠. 심지어 제가 사랑하는 포도밭에서도 장미를 볼 수 있는데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때 장미가 포도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졌어요.” 그르나슈, 시라, 생소, 롤 품종의 포도를 혼합해 만든 로제 와인은 지중해 음식과 특히 훌륭한 궁합을 이룬다고 소개되지만 채소밭에서 갓 딴 재료로 요리한 모든 신선한 메뉴와 잘 어울린다.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의 새로운 창작열로 탄생한 로제 와인 로즈블러드 데스투블롱. 샤토 데스투블롱에 만개하는 로즈블러드를 이름으로 앞세웠다.

브루니 사르코지는 즉흥적인 영감에서 비롯한 작곡이든, 그보다는 훨씬 침착하고 더딘 과정인 와인 메이킹이든, 전부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창작의 결과물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부 이 세상에 뭔가를 만들어 선보이는 행위죠.” 오랫동안 모델로 활동한 브루니 사르코지는 샤토 데스투블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와중에도 패션계에서 꾸준히 활약 중이다. 지난해는 사랑스러운 로제 와인을 세상에 내놓기 직전의 분주한 시기였지만 그는 칼 라거펠트에 대한 헌사로 가득한 멧 갈라에 참석했음은 물론 같은 날 열린 <칼 라거펠트: 아름다움의 선(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 언론 시사회에서 친구를 향한 감동적인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토니 바카렐로가 전개하는 생 로랑 스타일이 매우 마음에 들어요. 2024 가을/겨울 쇼에도 정말 기쁜 마음으로 섰는걸요.” 지금 그에게 영감을 주는 동시대 패션 디자이너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안토니는 모든 쇼를 놀랍도록 매혹적인 분위기로 연출해요. 몰입해서 쇼를 감상하면 무슈 생 로랑이 살아 돌아와서 어둠 속을 배회하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니까요. 지난해 생 로랑 쇼에서 모델들이 후드가 달린 저지 드레스를 입고 걷는 모습을 봤을 땐 생 로랑의 뮤즈였던 룰루 드 라 팔레즈가 떠올랐어요. 무슈 생 로랑과 생전에 아주 가깝게 지냈기에 그의 비전이 안토니를 통해 계속 발전해나가는 걸 보는 게 무척 감격스러워요.”

하지만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브루니 사르코지의 관심은 또다시 프로방스의 장미로 향했다. 그는 장미가 만개하는 여름만큼 로즈블러드 데스투블롱을 음미하기 좋은 때는 없다고 실토했다. “로즈블러드를 마시기 가장 좋은 타이밍은 아름다운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죠. 긴 하루 끝에 느긋한 석양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음미하는 것도 좋고요.” 말을 멈춘 듯하더니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여름이 찾아오며 해가 길어지고, 모든 이의 기분이 다소 희망적으로 들뜨는 시기만큼 완벽한 때는 없겠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든 기분 좋게 잔을 들어 올릴 거라고 대답하자 그가 와인 잔을 내밀었고, 우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사진
    SÉBASTIEN VALENTE
    DAVID GRAVER
    COURTESY OF
    MASTER MEDIA LAB, THE TRAVEL B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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