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보그’가 해석한 한강의 세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국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강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아시아 여성 최초이자 21세기 최연소 수상자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습니다. 주로 나이가 많고 경력이 오랜 작가들을 노벨상 후보로 거론하던 한국 사회에서 이번 수상은 큰 사건으로 여겨졌습니다. 최근 여성을 향한 괴롭힘 스캔들이 있었던 한국에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문학적 차원의 성과를 넘어서는 의미로 보입니다.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해준 소설 <채식주의자>(2006)는 고기를 먹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육식 중단이라는 단순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자세히 그려냈죠.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의 아인호아 우르퀴아 아센시오(Ainhoa Urquia Asensio) 동아시아학과 부교수는 한국이 서구 세계에 가장 크게 개방된 것은 한국 영화에서 시작되었고, K-팝 밴드가 그 뒤를 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외부 세계에 상당히 개방적인 나라이며, 해외에서 좋아할 만한 상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스카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이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통해 BTS를 비롯해 여러 K-팝 그룹이 만들어낸 폭발적 인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었죠. 그 끝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분야가 문학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 출간 당시만 해도 한국 문단에서 그의 산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강은 세계 문학 시장에 한국 문학을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르퀴아 아센시오 교수는 “처음에는 윤선미 번역가가 스페인어로, 나중에는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가 영어로 번역하면서 해외에서 알려졌고, 해외에서 관심이 커지면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모국에서도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페인 대중에게 한강과 한국 문학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의 복잡한 세계를 안내하기 위해 그녀의 주요 작품과 그녀와 비슷한 작가 몇 명을 소개하는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 <채식주의자> 237p
<채식주의자>(창비, 2007)
한강을 대표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채식주의자>입니다. 2007년 한국에서 출간되었으며 한강의 첫 소설은 아니지만,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카프카적인 어조로 써 내려간 소설은 꿈 때문에 고기를 끊게 된 주인공 ‘영혜’를 둘러싼 세 사람의 관점으로 전개됩니다. 이 결정은 그녀의 가족 전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죠.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이 자신의 몸이 타자화되었을 때 느끼는 공포감을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와 자신으로부터 고립되는 과정과 그 고립을 초래한 이야기들이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벨 자>(마음산책, 2022) 같은 고전문학이나, 레이철 요더(Rachel Yoder)의 <나이트 비치>(황금가지, 2024) 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국 세계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소외를 고발하는 이야기에는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2017),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2016)이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에서 #미투(Metoo) 운동이 떠오르던 시기에 나왔고 빠르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두 책 모두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을 이야기합니다.
한강채식주의자
(창비, 2007)
구매하러 가기실비아 플라스벨 자
(마음산책, 2022)
구매하러 가기레이철 요더나이트 비치
(황금가지, 2024)
구매하러 가기정보라저주토끼
(래빗홀, 2023)
구매하러 가기조남주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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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
2011년에 처음 출간된 <희랍어 시간>은 몇 가지 측면에서 <채식주의자>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습니다. 음식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꿈’ 같은 몽환적인 요소가 그러합니다. 독일에서 오랜 이민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희랍어 강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혼한 뒤 아들 양육권까지 잃게 된 희랍어 수업의 학생, 두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강사는 퇴행성 실명에, 학생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장애물에 직면하며 점진적 고립 상태로 들어갑니다. 소통을 위한 투쟁, 취약성, 외로움은 내러티브의 기둥입니다.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테스 건티(Tess Gunty)의 <우주의 알>(은행나무, 2024) 속 인물들의 고립을 연상시킵니다.
<소년이 온다>(창비, 2014)
한강의 작품은 아마도 <소년이 온다>에서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스페인에서는 라타북스(Rata Books)에서 출간되었으며, 멕시코에서는 펭귄 랜덤하우스가 최근 출간했습니다. 작품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 항쟁에 따른 학살의 서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채식주의자>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구성하며, 잔혹한 탄압을 겪은 일곱 사람을 하나의 실타래로 엮어냅니다.
한 작가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스타일로 민주 항쟁 당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사람들의 다양한 증언에 주목하고, 그들에게 존엄과 기억을 부여합니다. 한국 역사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을 인도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죠. 한 작가를 한국의 문학적 전통과 연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입니다. 우르퀴아 아센시오 교수는 “한국 문학은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라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존 한국에서 존경받는 작가들은 대부분 외국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고, 한강은 이를 돌파해냈습니다.
스페인어로 번역된 이러한 유형의 문학작품으로는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들이 받은 학대를 이야기한,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 노블 <풀>(창비, 2017)이 있습니다. 한국 문학의 고전인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김금숙 작가가 만화로 각색한 작품도 있습니다. 한국 전후 시대 실제 사건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새잎, 2011) 또한 <소년이 온다>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흰>(문학동네, 2018)
심리적 폭력의 폐해는 <채식주의자>에서 잘 드러나고, <소년이 온다>가 신체적 폭력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흰>은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듯합니다. 전통적인 서사보다 시에 가까운 이 책에서 한 작가는 모유, 눈, 쌀 등 하얀 사물 목록을 구실로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깊은 성찰과 더불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언니에 대한 애도를 표현합니다. 이 구조는 시집과 유사하며, 매기 넬슨의 <블루엣>(사이행성, 2019)을 연상시킵니다. 주제는 아니 에르노의 <다른 딸>(일구팔사북스, 2021)과 유사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한강을 이미 알고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1948년 한국 정부가 제주도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다룬 소설이자 지난해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보세요.
한강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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