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은 몸이 보내는 구조 신호일지 모른다?
가려운 곳을 긁을 때 느끼는 쾌감, 카타르시스가 또 다른 상처로 변환되는 악의적 중독. 가려움은 제3의 뇌, 피부가 보내는 구조 신호일지 모른다.
인류 문화사의 고전, <신곡: 지옥 편>에는 기기괴괴한 형벌이 묘사돼 있다. 불꽃에 휘감겨 타오르거나, 오물에 파묻히고, 땅에 거꾸로 처박히며 서로의 살을 물어뜯는 아수라장··· 그리고 가려움의 벌을 받는 죄인들이 있다. “미칠 듯이 가려워도 다른 방도가 없는 가려움증 환자처럼 몸부림치면서 손톱으로 제 몸을 할퀴고 있었다. 그들은 식칼로 잉어나 그보다 더 거친 비늘로 덮인 큰 물고기의 비늘을 벗기듯이 손톱으로 상처의 딱지들을 긁어 떼어냈다.” 단테에게 가려움은 고통에 비견할 만한 감각이었던 듯싶다. 시대가 흘러 통증과 가려움은 엄연히 다른 감각임이 밝혀졌지만, ‘가려운 곳을 긁고 싶다’는 주체 못할 충동이 가끔 인간을 극한의 괴로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못된 손
나의 지난 1년은 온통 가려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시작은 올 초 앓은 대상포진. 커리어에 몸을 갈아 넣었지만 개인의 삶은 퇴보하는 듯한 실망감에 울적해지던 시기였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고 기왕이면 오랜 콤플렉스를 없애줄 호기로운 도전 과제를 찾기로 했다. 나비처럼 우아한 팔동작, 돌고래 같은 허리 놀림이 일으킬 물보라의 궤적을 상상하며 잘 시간을 쪼개 수영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한겨울 새벽 6시, 인공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엔드리스 풀(Endless Pools)에서 필사적으로 선생님의 구령을 좇았다. 그리고 미처 자유형 숨쉬기도 마스터하지 못한 어느 날, 오른쪽 귀에 이상이 느껴졌다. 수영장 물 때문에 생긴 단순한 염증이라 치부하기엔 동반된 두통이 심상치 않았다. 뇌에 수천 개의 바늘을 꽂아놓은 듯한 고통이 뒤따르기에 무겁고도 뜨거운 몸을 이끌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대상포진이군요. 너무 무리했어요.” 의사는 환부가 고막에 가깝지 않고 초기에 발견했으니 매우 다행이라며 위로했다. 연고와 내복약을 처방받고 병원을 오간 지 일주일쯤 지나자 괴롭던 두통과 몸살은 사라졌다. 나는 업무로 복귀했고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같이 보였다. 한 가지만 빼고. 치료받은 오른쪽 귀가 가렵기 시작한 것이다.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불쾌감이었다. 찌르는 듯하다가 근지럽고 가끔은 화끈거리기도 했다.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놓으면 좀 나아지는 듯하다가 금세 또 가려웠다. 불청객의 습격은 시도 때도 없었다. 브랜드 리뉴얼 회의 중 귀를 후비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모습을 누가 이해해주겠는가? 고민하는 척 귓바퀴를 잡아당기거나 손으로 귓구멍 전체를 막아 누르며 견디고 또 견뎠다. 그리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달린 뒤 소독약 묻은 면봉으로 사정없이 귓속을 긁어댔다. 손대지 않는 것이 최상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짜릿한 시원함 뒤에 찾아오는 잠시의 평화는 너무 중독적이었다. 물론 평온은 얼마 지속되지 않았고 수분 내에 귀는 다시 간지러웠다. 채 아물지 못한 포진 부위를 계속 자극하니 피가 배어나는 건 당연지사. 불쾌한 색이 묻어 나온 면봉을 버리며 거듭 다짐하곤 했다. “참을 수 있다, 긁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의 말이 떠올랐다. “긁는 행위는 가장 달콤한 만족감을 안겨주고 이 만족감은 언제든 간편하게 얻을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긴 즉시 너무나 짜증스러운 후회가 따라온다.” 가려움은 단테와 몽테뉴를 거쳐 2024년의 나에게도 열패감을 안겼다. 긁고 싶은 충동과의 싸움은 그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서서히 잦아들었다.
두 번째 사투는 대상포진의 후유증이 거의 잊힐 즈음 시작됐다. 이번엔 온몸이었다. 건조하다는 핑계를 대기엔 습하고 더운 한여름에 벌어진 일이다. 가장 기이한 건 가려움의 타이밍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말짱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쉬기 위해 침대에 몸을 누이면 가렵기 시작했다. 그놈은 ‘네가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 고독하고 고민스러운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소곤소곤 피부를 간질였다. 진정 크림을 바르는 건 물론 매트리스 소독 서비스를 신청하고 민감성 피부를 위한 천연 소재 냉감 이불을 사들였지만 일단 긁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가려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피부과에서 신경과 혹은 정신과적 처방을 내리는 건 흔한 일이에요. 가려움의 원인이 피부 자체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서울대학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피부과 조소연 교수는 피부과를 찾는 높은 비율의 환자들이 정신적인 문제, 신경적인 질병 때문에 가려움을 호소한다고 설명한다. 긁고 또 긁는 나의 못된 손에는 스테로이드나 항히스타민제 외의 구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가려우면 늙는 뇌
‘가려움’은 아직 완벽히 규명되지 않은 질병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략의 메커니즘은 피부에서 만들어진 염증 물질이 피부에 존재하는 감각신경을 자극해 뇌의 시상으로 신호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이 사인은 뇌의 각 부분으로 전달되는데, 가려운 감각을 느끼는 부분부터 가려운 정도를 판단하는 부분, 가려운 감각을 기억하는 부분, 가려움 때문에 변화하는 감정을 조율하는 부분까지 각기 다른 뇌의 기능이 총동원된다. 그런 다음 손에 명령한다. 손톱을 세우라고. 그리고 ‘간지러워서 긁었던’ 일련의 기억은 모두 저장된다. 옆 사람이 긁으면 따라 긁게 되거나 가려움을 떠올리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근질근질해진 경험이 있나? 뇌가 가려웠던 상황을 기억하고 사회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가려움의 시작이 염증 물질이라면 그것의 생성 자체를 원천 봉쇄하면 해결될 일이다. 물론 염증의 원류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려워서 미치겠어요>를 집필한 피부 항노화 분야의 석학, 정진호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은 원인을 명확히 가려내지 못하면 가려움은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나처럼 대상포진을 앓은 후 경험하는 가려움은 아직 남아 있는 바이러스가 통증을 동반한 염증을 조금씩 유발하기 때문인지라 신경 치료제를 쓰는 것이 지름길이다. 스트레스 가득하던 여름밤에는 무엇이 구원이었을까? 조소연 교수는 신경안정제나 우울증 관련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더 빨리 가려움이 가라앉는다고 조언한다. “정신적으로 시달린 뇌가 분비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염증 매개 물질의 분비를 촉진했을 테니까요.” 이 외에 노화, 복용 중인 약이나 영양제, 음식, 피부 질환, 내과적 질병 등 가려움의 원인을 나열하자면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가려움은 예측 불허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나 흔히, 그리고 나이가 들면 경험할 수밖에 없는 건조함은 대처 가능할지 모른다.
피부는 건조한 환경에 놓이면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각질층을 더 두껍게 만들고 지질도 더 많이 합성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며 염증이 유발된다. 피부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장기! 이 광활한 공장에서 생산된 어마어마한 양의 염증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 뇌까지 이른다. 노화란 서서히 염증에 잠식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처리하지 못할 양의 염증 공격이 투하되면 폐허의 시기는 당겨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게 보습제를 꼼꼼히 바르는 일은 단순히 ‘자신을 가꾸는 좋은 습관’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될, 매우 핵심적인 뇌 안티에이징, 전신 항노화 액션 플랜인 셈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피부과 마오치앙 맨 박사의 실험에 주목하길. 몇 년 전 맨 교수의 연구 팀은 중국 북부의 두 도시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65세 이상 참가자 2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만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하루에 두 번 아토팜 크림(우리가 아는 K-뷰티 장벽 크림이 맞다!)을 바르게 했다. 장장 3년에 걸쳐 진행된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보습제를 발라 피부 장벽을 지켜낸 그룹은 염증성 화학물질의 수치도 낮고 뇌의 인지 기능 또한 그대로 유지됐지만, 건조함을 방치한 비교군의 인지 기능은 빠르게 저하됐던 것이다. 이 연구는 가려움의 원인, 피부 염증이 나의 노후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혹시 뇌와 피부가 발생학적으로 같은 외배엽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구조와 기능이 매우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나아가 장, 뇌, 피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장-뇌-피부 축 이론은 대세를 넘어선 팩트다. 시세이도 라이프사이언스 연구센터 주임 연구원 덴다 미쓰히로는 저서 <제3의 뇌>를 통해 “피부는 또 다른 뇌”라고 설명하며 소중히 케어해야 할 장기라고 거듭 강조한다. 표피는 단순히 몸의 최전방에서 환경을 모니터링하는 센서 역할을 넘어, 감지한 정보를 스스로 처리하는 기능까지 하며 이는 신경, 면역, 순환, 내분비계 등 몸의 다양한 시스템뿐 아니라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자외선 차단제는 뇌 보호제, 보습 크림은 뇌 영양제”라는 정진호 교수의 비유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의 피부 장벽 트리오 성분을 1:1:1로 함유한 보습제는 곧 또렷하고 총명한 뇌로 늙기 위한 연금보험인 셈이다.
피부에 구속복을 입혀라
다시 긁고 싶은 충동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피부를 긁는 목적은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긁어서 생기는 통증이 잠시 가려움을 잊게 해주는 건 사실이다. 미국 미네소타대 글렌 기슬러 박사 연구진에 따르면 가려운 곳을 긁으면 뇌에 신호를 전달하는 척수 신경 세포가 작동을 멈추면서 가렵다는 느낌이 뇌에 전달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런 쾌감이 혀에 닿은 솜사탕처럼 너무나 쉽게 사그라진다는 점이다. 아니, 이 달콤한 중독은 당신을 오히려 더 가렵게 한다. 긁으면 긁을수록 피부에 존재하는 감각신경의 개수가 늘어나고 더욱 활성화돼 아주 약한 자극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긁는 행위는 우리 몸의 최전방 수비수, 피부 장벽을 망가뜨린다. 무너진 방어막을 뚫고 마구 유입되는 가려움 유발 물질에 자극은 더 심해질 것이고, 수분 보호막이 무너지니 건조함은 가속화된다. 가려워서 긁고, 긁어서 더 가려워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전문가들은 긁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가려움이라는 본능적인 행위는 신경 말단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이라 1~2분이면 사라지니 고비를 넘기라는 거다. 스트레스로 인한 가려움에 시달리던 나에게 의사가 내린 처방 중 하나는 밤 산책과 얼음찜질이었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릴랙스하거나 긁어서 만드는 통증과 유사한 강도의 자극을 주는 방법을 추천한 것이다. 효과는 있었다. 매트리스 위를 방황하며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는 것보다 가을의 실마리를 찾으며 호흡하는 것이 마음의 안녕에는 훨씬 도움이 됐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피부에 열을 올리지 않는 미지근한 물로 1~2분 내에 짧은 샤워를 했다. 너무 뜨거운 물이나 체온을 올리기 위해 몸이 열을 내야 하는 냉수는 절대적으로 피했다. 이건 추운 겨울에도 마찬가지. 건조한 계절에 온열 매트 위에서 잠을 청하는 건 가려움을 증폭시킬 뿐이다. 거칠하게 두꺼워진 각질을 물리적으로 마찰해 제거하는 ‘때밀이’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극악의 케어!
문지르지 않고 수건을 두드리듯 사용해 물기를 제거한 후엔 일리윤 ‘레드이치 케어크림’을 발랐다. 2022년 당시 국내에서는 드물게 식약처 기능성 심사가 완료된 크림이었다. “개발 당시 보디 피부 고민을 조사했을 때 전 연령대에서 가장 문제로 꼽힌 것이 가려움이었습니다. 가려움의 원인은 건조함만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원인에 대처하며 케어할 기능성 제품이 필요했던 거죠.” 일리윤의 분석은 정확했다. 2년 지난 2024년, 올리브영의 겨울 테마는 ‘가려움과 진정’! 세타필, 피지오겔 등의 더마 브랜드에서 가려움 케어를 소구하는 신제품이 속속 출시됐고, 가려움을 유발하는 원인균을 99%까지 제거하는 고보습 워시를 새로 선보인 일리윤은 카테고리 1등을 달성했다. 가려움은 이제 ‘그러다 말겠지’ 무시해도 될 피부 고민이 아님을 소비자가 인지하게 된 결과다.
가려움은 매우 심오한 주제다. 피부가 가려워 뇌가 슬퍼질 수도 있고, 마음이 괴로워 피부로 SOS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12월의 건조한 추위를 견뎌내는 당신의 피부는 평온한가? 근질근질 신경이 꿈틀대기 시작하면 혼자 견디지 말고 비빌 언덕,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더 많은 염증이 당신의 온몸을 잠식하기 전에, 원인을 찾아 대응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VK)
- 컨트리뷰팅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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