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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샌더가 자라에 펼친 나누시카의 세계

2024.12.13

산드라 샌더가 자라에 펼친 나누시카의 세계

‘동서양의 만남’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붙는 표현이다. 나누시카는 부다페스트 출신 디자이너 산드라 샌더가 2005년 창립한 브랜드다. 산드라의 옷은 부다페스트처럼 뜻밖의 만남으로 가득하다. 전통 공예와 현대적 디자인, 장인 정신과 지속 가능성, 보헤미안 감성과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실루엣이 적재적소에 부드럽게 배어 있다. 헝가리 전통 문양이자 상징적 토템인 코프자파(Kopjafa)는 나누시카를 알고 있다면 한 번쯤 마주했을 심벌. 한마디로 참 야무진 브랜드다.

사진: 이우정

협업은 균형에 관한 것이다. 두 브랜드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융합하는 일. 지난 10월, 나누시카와 자라의 협업 소식을 듣고 컬렉션 피스를 마주하기도 전에 신뢰가 갔던 이유다. 어떤 스타일이든 친절하게 디자인하는 자라의 감각도 믿을 만하지만, 경계를 허물고 균형을 맞추는 일은 나누시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무엇보다 여성복이 아닌 남성복, 주얼리, 홈 컬렉션으로 꾸려졌다는 사실이 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성수동 키르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자라×나누시카 팝업 현장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라는 수식어와 달리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입구에 들어서자 코프자파를 연상시키는 나무 조각상이 새하얀 공간을 호젓하게 채우고 있었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니, 천장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머금은 컬렉션 피스들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옷은 인타르시아 패턴을 가미한 니트, 스카프가 내장된 셔츠 등 남성복이라는 카테고리가 무색하게 탐나는 아이템으로 가득했다. 자연스러운 색감, 부드러운 형태로 빚은 주얼리와 홈 컬렉션도 마찬가지였다. 나누시카의 감성을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컬렉션이었다. 이국적이지만 아늑하고, 새롭지만 친근했다. 자라만의 노련한 감각을 거친 결과였다. 이번 협업에서 강조하고 싶은 키워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산드라 샌더는 아름다움 속 기능성, 접근성, 그리고 실험이라고 답했다.

Courtesy of Zara

자라와의 협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성복이 아니라 남성복을 전개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번 협업이 더 많은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남성복은 나누시카에서도 중요한 카테고리다. 남성복을 디자인할 땐 항상 ‘유니섹스’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협업을 통해 다양한 소재와 질감을 실험하면서 젊지만 고급스러운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다.

자라는 그동안 많은 디자이너와 협업해왔다. 나누시카 컬렉션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나누시카 매장은 큐레이션이 잘된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옷뿐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등 모든 요소가 조화롭다. 협업에서는 나누시카만의 큐레이션 감각을 반영했다. 일상에서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향연이다.

사진: 이우정

남성복 디자인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입기 쉬우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심미성과 기능성이 뛰어난 아이템에 집중했다. 여성들도 자유롭게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셔츠뿐 아니라 니트와 아우터 등 모든 아이템이 잘 어울릴 것이다.

나누시카의 옷에는 늘 부다페스트 특유의 감성이 있다.

부다페스트는 동서양의 문화가 혼합된 도시다. 튀르키예식 모스크와 목욕탕, 브루탈리즘과 고전주의 건축물 등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다. 이런 독특한 요소는 내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줬다. 헝가리의 상징적 토템(헝가리의 전통 목공예품) 코프자파의 문양 역시 나누시카를 대표하는 디테일 중 하나다. 특히 이번 컬렉션에서는 더욱 섬세하게 표현했다. 데님 웨스턴 셔츠에 헝가리 크로셰를 가미하거나 예상치 못한 소재에 전통 프린트를 더하는 식이다.

홈 컬렉션은 처음이다.

오래전부터 인테리어와 홈웨어에 관심이 컸다. 골동품 가게를 돌아다니며 빈티지 가구와 도자기, 접시 등을 꾸준히 수집했다. 자라와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었다.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에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사진: 이우정
사진: 이우정

옷을 디자인할 때와는 접근법이 달랐을 듯하다.

자연의 색감에서 영감을 받았다. 내 디자인의 핵심도 색감의 조화다. 매일 자연에서 마주하는 색상에 부드러운 포인트 컬러로 균형을 맞추는 식이다. 수년간 빈티지 접시를 수집해왔는데 늘 제이드 그린 색상에 끌렸다. 이 색은 홈 컬렉션을 집약하는 색이기도 하다.

주얼리 형태도 독특하다.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실루엣을 좋아한다. 특유의 불완전한 형태가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대 동양 보석과 바우하우스 스타일 등 흔치 않은 질감과 소재를 결합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보그>에만 힌트를 준다면?

오래 준비해온 ‘나누시카 아파트먼트’를 곧 론칭한다. 홈 컬렉션의 기초가 된 프로젝트다. 나누시카 런던 매장 바로 위층에 마련했다. 레지던시로 사용하지만 누구나 예약할 수 있는 호텔이기도 하다. 나누시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공간이다.

    포토
    이우정,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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