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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젊음을 욕망하는 여성이 맞닥뜨린 자기혐오의 공포

2024.12.17

‘서브스턴스’, 젊음을 욕망하는 여성이 맞닥뜨린 자기혐오의 공포

2025년을 보름 정도 앞둔 현재,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서브스턴스>다. 신체를 찢고 다시 조형하는 보디 호러 장르 영화로서, 젊음에 집착하는 욕망을 탐구한 결과로서, 그렇게 집착할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에 대한 폭로로서 충격적이다. 분명 <서브스턴스>를 본 관객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악몽에 가까운 장면이 나오고, 젊음만 좇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느껴지는 데다, 매우 슬프기 때문이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서브스턴스>의 주인공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겼던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이다. 영화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그 거리에서 보여준다. 엘리자베스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후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보도블록이 설치된다. 수많은 관광객이 그녀의 이름을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을 만지고, 그녀의 이름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과거의 영광은 어렴풋한 기억이 되고, 그녀의 보도블록에는 균열이 일어난다. 그렇게 잊힌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현재 TV 에어로빅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다. 여전히 탄탄한 몸과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지만, 방송 프로듀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해고한다. 프로듀서가 말한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더 어리고, 더 섹시한 여성’이다. 자존감이 무너진 채로 집에 가던 엘리자베스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때 한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소개받는다. 현재의 자신을 원본으로 하는 더 젊고 아름다운 사본을 탄생시키는 약물이다. 스스로 약물을 주입한 스파클에게서 젊은 사본이 탄생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수(마가렛 퀄리)라고 소개한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이 원본과 사본의 생활에는 규칙이 있다. 사본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원본의 ‘골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골수는 항상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다. 엘리자베스가 먹고 숨 쉬는 시간이 있어야 골수도 생성된다. 그래서 원본과 사본이 각각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생활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문제는 더 젊고 아름다운 상태의 시간을 더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수는 규칙을 어기고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더 많은 골수를 뽑아낸다. 규칙을 어길 때 상상 이상의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엘리자베스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이 상황을 종료해야 하지만 수의 몸을 포기할 수 없어 차마 그러지 못한다. <서브스턴스>는 이 원본과 사본의 관계를 통해 ‘자기혐오’의 악순환을 묘사한다. 더 젊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곧 젊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몸을 혐오하는 것이다. 가장 슬픈 장면 또한 이 자기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이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통해 다시 세상의 사랑을 만끽하지만,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후 처절한 소외감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녀는 얼마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동창이 자신에게 여전히 예쁘다고 해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엘리자베스는 그와의 데이트를 결심한다. 그녀에게 이 데이트는 자존감을 회복해 더 이상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하지만 수차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던 그녀는 결국 다시 수의 몸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더 젊고 아름다운 자신을 경험하면서 실제의 자신을 더 혐오하게 된 것이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서브스턴스>가 묘사하는 이 끔찍한 원본과 사본의 관계에서 설득력을 더하는 건,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가여운 것들>을 통해 관객을 매혹한 마가렛 퀄리는 <서브스턴스>에서 젊음의 아름다움을 폭발시키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데미 무어는 그동안 자신이 대중에게 보여온 이미지의 역사와 함께 <서브스턴스>의 상상력을 지탱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1990)의 몰리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후 늘 몸으로 화제에 올랐다. 아이를 임신한 채로 누드 화보를 찍었고, 여러 차례 성형수술 루머로 소개되었으며, 그런 루머에 화답하듯 아예 <스트립티즈>(1996) 같은 영화에서 스트리퍼를 연기하기도 했다(이 영화는 제17회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각본상, 최악의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데미 무어의 역사를 아는 관객에게는 ‘서브스턴스’가 가상의 약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최소한 타블로이드 잡지 속에서는 그녀가 바로 늙어가는 자신을 혐오한 스타였기 때문이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컷

<서브스턴스>는 여성이 겪는 자기혐오를 장르 영화의 소재로 차용하지만, 동시에 그런 악몽이 남성의 시선을 바탕으로 생겨난다는 것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모든 것이 제 위치에 있다”며 여성들의 몸과 얼굴을 평가하는 남자들의 표정을 보여주고 실제보다 더 과도하게 수의 몸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을 체험케 한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을 향해 끈적한 피를 쏟아낸다. 이 피는 영화 속 남성뿐 아니라 영화 밖의 관객에게까지 향해 있다. 더 젊고 아름다운 몸을 욕망하는 것, 그렇지 않은 몸을 혐오하는 것이 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속성일 뿐일까? ‘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 뒤에 숨어 ‘엔터테인먼트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치부하는 시선 또한 여성의 자기혐오를 부추기는 건 아닐까? 영화 속 엘리자베스와 수가 각각의 자아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여성의 몸을 탐닉하는 세상의 시선 또한 ‘업계’와 ‘비업계’로 분리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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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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