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 크리스마스 보내기
모두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크리스마스에 인스타그램을 훑으며 “쟤가 저 정도로 부자였다고?” 같은 말을 읊조리는 일이요. 저는 누군가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높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자녀에게 아이폰 15를 선물하는 게시물을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스크롤을 내리자, 손을 꼭 붙잡고 환하게 웃는 연인이 등장했죠. ‘10년째 연애 중’이라는 게시 글과 함께요. 다음 게시물에서는 금주 7년을 기념하며 초콜릿 리큐어를 들이켜는 한 남자를 봤습니다. 재밌긴 했지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 않더군요. 마음 한구석이 허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무의미한 비교를 부추기는 시기입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날이니까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면서요. 하지만 실상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가족과 소원해진 이들도 있을 거예요. 결혼한 커플도, 몇 년째 독신인 사람도 있을 거고요. 선물도 벅찰 정도로 예산이 빠듯한 이도, ‘경기 침체’를 그저 뉴스거리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서로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다름’을 절감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생각할수록 12월에는 스마트폰을 침대 밑으로 던져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마음이 기웁니다. 얼마 전, 일일 평균 스크린 타임이 8시간을 넘어선 주간이 있었습니다. 자괴감이 드는 수치였습니다. 하루 중 8시간을 작은 플라스틱 화면 속 낯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 쓴 겁니다. 제 ‘진짜’ 주변을 돌아봤어요. 올해로 92세인 할머니는 영원히 곁에 계실 수 없을 거고, 천진한 조카들은 몇 년 후면 모두 냉소적인 어른이 되어 있겠죠. 저는 올해 이름도 모르는 여자가 애인과 이별하러 가기 전 ‘겟 레디 윗 미’를 찍은 걸 보는 대신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소모적인 시간에서 로그아웃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를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고요. 틱톡을 스크롤하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가벼운 안정감을 선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의 공백기는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동굴에 갇힌 것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죠. 무엇보다 클래식하지만 지루한 크리스마스 영화를 스마트폰 한 번 안 켜고 감상할 재간이 있나요? 제 말은 초콜릿 리큐어를 들이켜든, 파티 룩을 자랑하는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모티콘을 보내든 이 주간만큼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라는 겁니다.
하지만 눈이 시릴 때까지 화면을 쳐다보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은 널려 있다는 말을 분명히 해두고 싶군요.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차가운 물에 뛰어드는 행사인 ‘박싱 데이 스윔(Boxing day Swim)’을 몸소 실천해도 좋겠지요(적어도 숙취는 날려줄 겁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연말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필름으로 현상한 사진은 ‘직접’ 꺼내 보고 보관할 수 있으니까요. 스마트폰이 사라지면 소용없는 사진첩이나 소셜 미디어와 다르죠.
새해가 올 때까지 스마트폰을 피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어차피 나머지 11개월 반은 온라인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매일 업데이트되는 전 세계 뉴스, 쉴 새 없이 울리는 각종 알림,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이의 일상 등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과 뇌를 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겁니다. 지인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죠. 늘 온라인에 있긴 하지만 반드시 온라인에 있고 싶은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하루 평균 8시간 보던 스마트폰을 단박에 끊을 순 없겠죠. 제가 그렇게 의지가 강하진 않거든요. 친구들의 파티 룩과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잊지 말자고요. 내 크리스마스는 지금,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작은 화면 속 다른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구경하며 보내기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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