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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탈 없는 복수를 꿈꾸는 그대에게

2024.12.26

뒤탈 없는 복수를 꿈꾸는 그대에게

누구나 마음속에 혼내주고 싶은 인간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선량한 시민이라면 당장 칼춤을 추는 대신 법과 사회에 정의 구현을 위임하지만 때로는 법이 내 성에 안 차고 때로는 사회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에 무력감이 커지면 ‘힘순찐(힘을 숨긴 찐따)’ 캐릭터가 악당을 쥐어 패는 콘텐츠를 봐도 ‘현실이라면 저 후환을 어찌 감당할까?’ 의문이 든다. 뉴스가 영화, 드라마, 코미디 소비자를 대거 빼앗아 간 12월, 그나마 집단 홧병 치유에 도움이 될 작품으로 <가족계획>을 추천하는 이유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가족계획’ 스틸 컷

비밀 부대에서 살상 무기로 길러진 후 탈출한 캐릭터, 초능력 가족, 소시민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악당을 소탕하는 장면 따위는 새롭지 않다. 그런데 <가족계획>은 ‘브레인 해킹’이라는 소재를 더해 화끈하고 뒤탈 없는 복수의 쾌감을 선사한다.

영수(배두나) 가족은 금수시로 이사 오는 길에 접촉 사고를 내고, 상대 운전자가 시비를 걸자 납치해서 새로 차린 동물병원 지하에 가둬버린다. 운전자는 자신이 금수시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한다. 할아버지 강성(백윤식)은 이것이 가족 관계를 돈독하게 할 기회라 생각하고 모종의 일을 꾸민다. 한편 고교생인 지우(이수현)와 지훈(로몬)은 전학 간 학교에서 일진들을 상대하다가 조직형 성범죄 사건을 파악한다. 악당들이 지우와 지훈을 괴롭히려 하자 고문 전문가 영수와 격투 요원 철희(류승범)의 본색이 드러난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가족계획’ 스틸 컷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가족계획’ 스틸 컷

드라마 <가족계획>은 DNA 대신 필요에 의해 뭉친 가족이 유대감을 확인하고 진짜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다. 극 중 ‘금수시’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사는 도시다. 가족은 동물병원을 차려놓고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을 ‘치료’한다. 고교 일진들의 폭력에 대항하던 가족은 N번방 사건을 상기시키는 범죄에 가닿고, 철희는 그 뒤를 봐주는 조폭들에게 “이쯤 되면 어른들 일 아니요?”라고 선전포고를 한다. 아기자기한 상징과 비유를 찾는 재미가 있고, 현실 분노를 흡수해 작품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도 불쾌하지 않게 처리된다.

영수 가족은 폭력을 사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도 않는다. 영수의 브레인 해킹 능력 덕분이다. 영수는 악당들의 살을 도려내고 성기를 자르고 상해를 입힌다. 상대는 실제라고 믿고 고통을 느끼지만 실제가 아니다. 그래서 처벌받을 일이 없다. 영수 캐릭터는 장르적 쾌감뿐 아니라 드라마 요소에도 핵심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 고문 기술자로 길러지면서 감정을 거세당한 그는 여전히 인간미가 부족하다. 하지만 선악의 개념은 뚜렷해서 여성과 미성년을 괴롭히는 자는 용납 않는다. 영수는 자녀 역할을 하는 지우와 지훈에게 각별한 애착을 느끼고 진짜 어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 때문에 간혹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영수가 인간성을 회복하고 가족을 지켜내는 과정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면서 액션에 여운이 생긴다.

<가족계획>이 지목하는 학교 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 학대, 조폭, 고위 공직자 범죄, 사이비, 국가 폭력 등 사회악은 한국형 누아르의 기본값이다. 여기에 슴슴한 유머, 슬래셔, 원맨 액션, 판타지, 가족 드라마를 혼합해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허쉬>(JTBC, 2020~2021)의 김정민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주로 영화에서 활동해온 김곡, 김선 콤비(<보이스>(2021))가 연출을 맡았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가족계획’ 스틸 컷

출연진 중에서는 특히 배두나가 반갑다. 그는 <괴물>(2006) 및 워쇼스키 감독들과의 작업(<센스8>(2015~2017), <주피터 어센딩>(2015))으로 넷플릭스 시대 이전부터 서구권 장르 팬의 애정을 모은 배우인데, 한국에서는 이런 인지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조역으로 소모되곤 했다. <가족계획>의 영수는 모처럼 그의 체급에 맞는 게임으로 보인다.

<가족계획>은 쿠팡플레이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지만 직후의 시장 상황 악화로 충분한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일상을 전환해줄 통쾌한 작품을 찾고 있다면 관람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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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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