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웹사이트 통계로 알아본 2024년 트렌드 총정리
“트렌드의 시대는 끝났다.” 보그 런웨이(Vogue Runway)의 패션 전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패션계 종사자의 50.2%가 “2024년엔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였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보그>는 이 결과에 대해 반쪽짜리 진실이라고 언급했죠. 마이크로 트렌드라는 분열된 흐름,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촉발한 결과라고요. 이들은 트렌드는 건강하게 살아 있고, 패션 산업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보그 코리아> 3인의 웹 에디터 역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2024년 트렌드를 정리하는 것부터 최고의 컬렉션과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올해의 트렌드는 브랫이다”, “아니다, 그건 찰리 XCX를 좋아하는 Z세대의 것이다”, “그렇다면 보헤미안 시크다”, “아니다, 보헤미안 트렌드는 내년에 더 크게 올 것이다” 등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며 이야기를 끝맺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그 부정을 거듭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20년 가까이 패션 칼럼만 써온 쟁쟁한 보그 런웨이 에디터의 의견에 팔랑귀가 됐다가도, 미간을 찌푸리며 ‘그건 좀 많이 나간 게 아닌가?’, ‘저 디자이너를 좋아하나?’ 하며 도무지 마음을 빼앗기지 못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한국 시장의 흐름이 같지 않다는 것도 영향이 있습니다. 가장 유사하다고 여기는 이탈리아, 멕시코 시장과도 청바지 선호도에서는 아찔한 괴리감을 느낍니다.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트루릴리젼 진이나 다리가 길쭉한 이들에게 꼭 맞는 커프스 진을 소개할 때 특히 그렇죠.
혼란스러울 때는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던가요? 통계에 기대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1년간 <보그> 웹사이트에 업로드된 약 4,200개 기사를 대상으로 통계를 냈습니다. 브랜드, 인물, 트렌드까지, 그 언급량으로 자웅을 겨뤄보기로요. 스크롤을 내려 2024년 <보그>를 요약본으로 만나보시죠.
2024 <보그> 웹에 가장 많이 소개한 브랜드!
1위는 ‘샤넬’입니다. 2024년 총 979회 샤넬의 이름을 불렀죠. 782회를 기록한 ‘디올’이 그 뒤를 바짝 뒤쫓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구찌’가 600회로 선전했고, ‘프라다’가 526회로 근접했습니다. ‘루이 비통’은 454회로, 2023년 455회와 비슷했습니다. 등락 없이 늘 이슈를 만들어내는 루이 비통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죠.
케이트(391), 생 로랑(355), 더 로우(342), 끌로에(319), 미우미우(296), 보테가 베네타(280), 로에베(263), 발렌시아가(214), 맥퀸(206), 발렌티노(203), 알라이아(200) 순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은 통계를 받고 놀랐습니다. 예상과 많이 달라서였죠. 리스트 인덱스(Lyst Index)가 발표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순위에서 올해 내내 1, 2위를 다툰 것이 미우미우인 것을 고려하면, 자주 소개했다고 그것이 트렌드라 확언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급량이 급격히 늘어난 브랜드는 주목할 만합니다. 토템은 2023년 39회 언급했지만, 2024년 171회 소개했습니다. 올해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것과 무관하지 않죠. 끌로에 역시 2023년 129회에서 올해 319회로 2배 이상 언급량이 늘었습니다. 셰미나 카말리가 몰고 온 ‘보헤미안 시크’의 부활이 영향을 끼쳤고요.
케이트를 391회 언급한 것도 놀라웠습니다. 언급량이 많은 것은 ‘아이템 기사’에서 케이트 제품 소개가 많았기 때문이었죠.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한 기본 스타일에 질이 좋으면서도 접근 가능한 가격대라는 것이 케이트의 장점이니까요. 또한 코스나 자라처럼 아이템 소개 기사에 자주 언급되는 스트리트 브랜드가 들어가면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2024 <보그> 우먼!
Pretty Girl! 그녀를 이토록 사랑하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661회를 기록한 제니가 압도적입니다. 패션 뉴스에서만 약 300회 언급했죠. 쉴 새 없이 활동하는 그녀는 내년에도 자신의 삶을 담은 뷔페 같은 앨범을 준비해놓았다고 밝혔어요. 블랙핑크 멤버로는 리사 408회, 로제 206회, 지수 149회까지, ‘역시 블핑’입니다.
놀랍게도 젠데이아가 214회 등장해 그 뒤를 이었죠. 기사로만 보면 25건 정도에 불과하지만, 영화 <듄>과 <챌린저스>의 개봉, 멧 갈라 호스트, 루이 비통 앰배서더 활동, 커플 패션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디세이> 출연 소식까지 그녀 또한 제니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한 결과로 보입니다.
뒤이어 켄달 제너 213회, 헤일리 비버 154회, 벨라 하디드 137회, 지지 하디드 122회, 카이아 거버 78회, 엘사 호스크 73회로 전 세계 패션계를 장악한 모델 셀럽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배우도 꽤 많이 언급했죠. 제니퍼 로페즈(107), 케이티 홈즈(98), 안젤리나 졸리(86), 다코타 존슨(84), 앤 해서웨이(60)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델 셀럽보다는 편안한 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그> 웹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시기?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는 걸까요? 배두나가 유튜브 채널 ‘살롱드립2’에 나와 “요즘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피식피식 웃어요. 어머, 어떡해, 저게 다시 왔어”라며 1990년대 패션의 회귀가 반갑다고 했습니다. 웹 통계상으로 봤을 때도 1990년대가 517회를 기록하며, 현재 패션의 기반이 1990년대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Y2K 패션의 흐름을 이어간 2000년대가 349회를 기록했고요.
세 번째는 295회를 기록한 1970년대입니다. 앞서 끌로에의 언급량이 늘어난 것과 같은 이유죠. 보헤미안 스타일링의 영향이 1970년대라는 키워드를 함께 끌어올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보헤미안 패션의 기원은 오래됐지만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의 반대급부로 꽃핀 히피 문화와 함께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70년대 초까지 히피 룩은 보헤미안 패션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25 S/S 런웨이에도 보헤미안풍 룩이 올라왔습니다. 좀 더 여성스럽고 컬러풀한 느낌의 드레스가 봄 풍경을 물들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요.
1980년대는 245회 언급했는데요, 패션이 아니라 문화 예술계에서 언급한 것이 독특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평온기에 잠시 접어든 까닭일까요? 잠금 해제 버튼을 누른 예술계가 쏟아낸 작품으로 문화 부흥기를 맞게 됩니다. 그 영향을 받은 1980년대생 작가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요. 그 뒤로 1960년대가 199회, 2010년대가 166회를 기록했습니다. 이 시대는 2025년 패션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세요!
가장 많이 언급한 트렌드?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라 주장하고, 트렌드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보그 웹에서만큼은 ‘클래식’이 1,161회로 1위입니다. 이는 2023년 1,178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니멀’이 두 번째로 757회를 기록했으니 이 같은 결과는 이제 한국 시장의 특수성이라고 봐야 옳겠습니다. 웹 특성상 사람들의 니즈를 파악해 기사를 쓰기에 이토록 많이 언급한 데는 독자들의 꾸준한 클릭 수를 반영할 수밖에 없죠. 언제 어떤 트렌드가 와도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게 가장 좋다’는 변치 않는 굳은 심지랄까요. 물론 지난해부터 이어진 조용한 럭셔리(120), 올드 머니(30) 등 클래식 무드의 영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결괏값이라면 깔끔하고 단정한 룩을 선호하는 건 대한민국의 스테디 트렌드라 봐도 무방합니다.
보헤미안은 332회였고, 보호(286), 보호 시크(31), 히피(48)를 모두 합친 결과가 697회로 나타났습니다. 보헤미안의 2023년 언급량이 82회였던 것으로 봤을 때 떠오른 트렌드인 건 확실합니다. 오피스는 238회를 기록했습니다. 2023년에도 232회를 기록했죠. 이것은 미니멀과 클래식의 영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2023년에는 오버사이즈 블레이저, 올해는 클래식한 펜슬 스커트 등이 유행하고 있죠. 여기에 틱톡발 트렌드였던 섹시한 오피스 사이렌도 한몫했죠.
또 하나의 트렌드 웨스턴 또한 162회 언급했으며, 카우보이도 138회에 달했죠. 이는 올해 유행 중인 스웨이드 재질과도 연결됩니다. 물론 이 스웨이드를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 카우걸처럼 활용하지 않고 괴짜 모범생처럼 단정하게 입는 것이 특징이지만, 그런 면에서 괴짜 모범생들은 ‘안경‘과 ‘폴로 셔츠’ 이 두 가지 아이템으로 긱 시크(50)라는 신조어를 각인시켰죠. 신조어 드뮤어는 67회를 기록했고요. 제가 사랑하는 할머니는 181회, 할아버지는 118회를 기록하며, 조부모의 옷장을 열어보거나 동묘 벼룩시장을 떠도는 친구들이 좋아할 스웨터와 카디건, 조끼, 스카프, 브로치 등이 올해 내내 사랑받았습니다.
올해의 스니커즈 브랜드
지금은 누구도 아디다스를 막을 수 없군요. 총 298회를 기록했습니다. 기사를 쓰면서도 늘 고심하는 것이 스니커즈입니다. 바뀔 듯 바뀔 듯 흐름이 바뀌지 않거든요. 삼바의 뒤를 이을 스니커즈 관련 기사를 몇 번이나 썼는지 모릅니다. 2023년에는 오니츠카 타이거(28)의 멕시코 66이 그랬고, 2024년 나이키(214)의 코르테즈도 물망에 올랐죠. 물론 나이키의 경우 올여름 보디와의 콜라보레이션 슈즈 ‘아스트로 그래버’의 여파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그 사이 푸마(58)의 스피드캣이 있었고요.
하지만 아디다스는 컬러풀한 스웨이드 재질의 가젤과 스페지알로 추격을 막아내고, 태권도를 그 자리에 올렸죠. 얄따란 스니커즈 스타일의 인기로 뉴발란스가 주춤한 모양새지만 지난해 98회, 올해 88회로 짱짱한 코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요. 살로몬 또한 특유의 가볍고 편하다는 장점으로 지난해 51회, 올해 53회로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서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단정하고 깨끗하게 옷을 입는 사람들이 그려졌습니다. 한 벌을 사더라도 질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궁리하는 이들도 보였고요. 좀처럼 변치 않는 것과 쉬이 바뀌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경기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고만고만할 겁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 옷 입는 기쁨을 찾기 위해 런웨이는 더 컬러풀해지고, 자기 안으로 침잠하며, 세상 사람들을 위한 옷을 고민했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트렌드를 입게 될까요? 역시 혼돈 속에서 씨알을 골라내기 위해 침침한 눈을 비비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본인만의 아름다움을 찾길 바라는 마음만은 빛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2025년에도 <보그>와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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