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보그’ 디지털 팀이 선택한 2024 런웨이 룩

2024.12.31

‘보그’ 디지털 팀이 선택한 2024 런웨이 룩

이미지 디자인 허단비

10여 곳의 쇼장을 돌아다니며 작고 비좁은 의자에서 모델들을 지켜본 에디터를 비롯해 런웨이 룩을 확대하고 잘라가며 눈과 손으로 만졌을 디자이너까지, <보그> 디지털 팀이 2024년 런웨이 룩을 꼽아봤습니다. 브랜드 라벨이 주는 기쁨이나 시류를 따르지 않고 취향과 감상, 본인만의 기준으로 고른 10가지 룩을 만나보세요.

메종 마르지엘라 – 디지털 디렉터 권민지

Maison Margiela 2024 S/S Couture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비 내리던 1월 파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 2024 S/S 꾸뛰르 시즌의 메종 마르지엘라 쇼. 극도로 과장된 코르셋과 절묘한 재단의 바지를 입은 첫 번째 모델이 안개 속을 뚫고 요염하게 걸어 들어와서 안나 윈투어가 앉은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대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세상 진부한 표현이지만) ‘패션 판타지’라는 걸 경험한 것 같다. 44개 룩이 다 그랬다. 한순간도 눈을 떼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보통은 피날레가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 나가는지 경쟁을 펼칠 정도인데, 마지막 모델 그웬돌린 크리스티와 가수 럭키 러브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 후 모두가 기립 박수로 환호했고, 한동안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술의 역할이 시공간과 개념을 초월하는 것이라면, 그날 밤 메종 마르지엘라는 완벽하게 그것을 해냈다. 존 갈리아노가 1920~1930년대 파리 클럽과 밤거리로 우리를 가뿐히 데려다놓았다. 실험적이며 총체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이었다.

프라다 – 디지털 에디터 가남희

Prada 2024 F/W RTW

내게 어울리는 옷보다 그저 입고 싶은 옷이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편이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만든 프라다의 모든 룩이 그 예다. 특히 2024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인 빈티지한 질감의 가죽 재킷과 레이어드해서 연출한 클래식한 패턴 스커트는 실루엣마저 완벽했다. 올해 입고 싶고 갖고 싶은 단 하나의 런웨이 룩이었다.

보테가 베네타 – 비디오 에디터 이인정

Bottega Veneta 2025 S/S RTW

마티유 블라지의 간결함과 편안함을 좋아한다. 그의 보테가 베네타 첫 시즌 첫 번째 룩이었던 면이나 데님처럼 보이는 가죽 소재 티셔츠와 팬츠로 럭셔리를 재정의한 과감함이나 공예에 가까운 디테일을 발견할 때면 감탄이 더해진다. 하지만 그가 결정적 디자이너인 가장 큰 이유는 컨셉추얼하면서도 입고 싶은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옷장을 탐험하던 어린 시절, 패션의 첫 번째 기억에서 출발한 2025 S/S 보테가 베네타의 회색 수트처럼 말이다. 몸에 맞지 않는 엄마 옷을 내 맘대로 연출한 듯한 오버사이즈 재킷, 비대칭 팬츠에서는 진정성과 유머가 보였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멋졌다. 그는 본능적인 동시에 치밀하며 우아한 위트를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점이 마티유 블라지의 미래, 그가 만드는 샤넬에 대한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생 로랑 – 디지털 디자이너 한다혜

Saint Laurent 2025 S/S RTW

1980년대 파워 수트가 떠오르는 클래식하고 시원시원한 실루엣이 좋다. 생 로랑이 제일 잘하는 걸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유행의 한구석을 주름잡던, 페미닌한 ‘오피스 사이렌’ 트렌드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오피스 룩이지만, 일상에서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보니 이쪽이 더 로망에 가깝다! 정말 멋지지 않나?

로에베 – 웹 에디터 황혜원

Loewe S/S 2025 RTW

안건호 에디터가 파리에서 가져온 로에베의 컬렉션 초대 반지가 얼마나 탐났는지 모른다. <반지의 제왕> 속 절대 반지처럼 새겨진 글자를 따라 반짝이면 조나단식 위트와 창의력의 공간으로 휩쓸리는 상상을 일으키는 반지였다. 이를 두고 조나단 앤더슨은 “원형(Circular)의 아이디어”라 표현했다. 서른에 로에베에 입성해 10년간 하우스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그의 디자인의 정수가 돌고 돌아 런웨이에 오른 날이었다. 그 첫 번째가 후프, 그러니까 원형 드레스였다. 한없이 가벼운 실크 드레스 안으로 가느다란 크리놀린이 들어간 덕분에 걸을 때도 동그란 치마 라인이 유지됐다. 바닥까지 풍성하게 내려오는 빅토리아 시대의 크리놀린 드레스와 달리 발목까지 오는 길이로 그는 맨다리에 보트 슈즈를 매치했다. 언제든 새장을 나와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다는 듯이! 간소하고 가볍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조나단 앤더슨 그 자체였다.

돌체앤가바나 – 비디오 에디터 장소라

Dolce&Gabbana 2025 S/S RTW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질문이 떠오른 건 과거의 힘이 현재를 돕고, 더 나아가 미래를 움직인다는 걸 지난 9월 목도했기 때문이다. 밀라노에서 열린 돌체앤가바나 쇼에서였다. <프로젝트 런웨이>와 <도전! 슈퍼모델>을 보며 자란 내가 마돈나와 함께 런웨이를 지켜보다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쇼도 그러했다. 백금색 가발을 쓰고 핀업 드레스에 딱딱한 콘 브라를 입은 모델들이 화려한 포즈로 런웨이를 누비는 모습은 확실히 요즘의 것과는 달랐다. 그 옛날 화려하던 분위기를 재현하는 쇼를 보며, 과거의 미학이 현재 패션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를 되새겼다. 단정한 블랙 재킷에 시스루 스커트를 매치한 룩은 한 번쯤 입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세실리에 반센 – 디지털 에디터 조영경

Cecilie Bahnsen 2024 F/W RTW
Cecilie Bahnsen 2024 F/W RTW
Cecilie Bahnsen 2024 F/W RTW

세실리에 반센은 내가 떠올리는 소녀스러운 미학의 정수, 그 자체다. 매 시즌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 ‘네가 원한 게 이거 맞지?’ 싶은 룩을 내놓는다. 깊이 파인 케이블 니트 사이로 은은하게 보이는 시스루 드레스, 실크 모자를 두른 얄브스름한 꽃 장식, 걸음마다 나풀거리는 길게 늘어진 끈까지! 늘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세실리에 반센의 룩 중에서도 2024 F/W 컬렉션의 첫 번째 룩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스란히 입어보고 싶어서다.

언더커버 – 웹 에디터 이소미

Undercover 2024 F/W RTW
Undercover 2024 F/W RTW
Undercover 2024 F/W RTW

케이블 니트를 덮은 시스루, 틴셀 장식이 달린 청바지, 길게 늘어뜨린 트레인! 지극히 친숙한 소재와 아이템에 독특한 파동을 일으킨 컬렉션의 매력을 집약한 룩이었다. 청바지를 입고 나른한 걸음을 내딛는 모델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납작하게만 여겨지던 우리의 매일이 실은 이렇게 신비하고, 반짝이고, 연결되어 있다고.

아크네 스튜디오 – 디지털 디자이너 허단비

Acne Studios 2025 S/S RTW

패션 위크 티저 디자인 작업 중 실시간으로 긴박한 현장 상황을 전해 받고, 마감 후 브랜드 쇼를 라이브로 시청하는 경험은 늘 흥미롭다. 지난 2024 F/W 시즌, 아크네 스튜디오 쇼는 포토월에서부터 자유분방하고 친근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체크 머플러에 깔끔한 핏의 청바지로 대표되던 아크네 스튜디오의 이미지와 달리 섹시한 무드가 돋보인 것도 다소 놀라웠다. 반면 2025 S/S 쇼는 유쾌한 실루엣에 특유의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특히 톱을 비롯해 스커트와 원피스, 볼륨감 있는 팬츠 등 다양한 아이템에 활용된 생동감 넘치는 체크 패턴은 반갑기까지 했다.

듀란 랜팅크 – 웹 에디터 안건호

Duran Lantink 2025 S/S RTW

보기에 예쁜 옷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 듀란 랜팅크의 3번 룩을 2024년의 ‘베스트’로 꼽은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오리지널’에 가까운 실루엣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헤드웨어와 두 벌의 베스트, 팬츠로 구성된 간결한 룩이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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