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 2, 기훈은 왜 그랬을까?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열렬히 기다린 팬들은 이미 시청을 마쳤을 테니,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솔직한 리뷰를 해보자.
이번 시즌은 천천히 끓어오른다. 기훈이 게임에 다시 참가할 방법을 찾아다니고, 사병을 조직하고, 딱지맨(공유)과 토론을 벌이는 1~2부는 또 다른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 2를 연상시킨다. 내용이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어수선하게 확장되고 전 시즌에서 압축적으로 제시되던 메시지가 대사로 반복 강조됨으로써 지루해졌다는 낭패감 때문이다. 시즌 3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에피소드 3에서 기훈은 마침내 게임장 안으로 들어간다. 시청자들은 게임의 룰을 알기 때문에 한동안은 충격과 재미가 덜하다고 느낀다. 게임을 막으려는 기훈(이정재)과 다른 참가자들이 데시벨을 높여 싸우는 장면이 자주 반복되어 피로가 쌓인다.
가장 불쾌한 캐릭터는 코인 투기로 빚을 지고 들어온 마약 중독자 래퍼 ‘타노스(최승현)‘다. 그는 기숙사에서 즉각 패거리를 만들고 다른 참가자들을 불링하거나 선동한다. 최승현은 타노스의 가벼움과 거들먹거림을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한다. 이런 과잉 연기는 최승현뿐 아니라 이번 시즌 여러 배우에게서 엿보이는 것이라 배우 개인의 문제인지 연출의 의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작품이 자주 공허해 보인다.
흥미로운 반전이 벌어지는 건 7화부터다. 게임 진행을 원하는 참가자와 중단을 원하는 참가자가 딱 반반으로 갈려서 이튿날 재투표를 앞둔 상황. 화장실에서 난투극이 벌어져 5명이 사망한다. 이대로라면 재투표에서 게임 중단을 원하는 측이 이기겠지만 밤사이 습격이 예상된다. 기훈은 상대편의 습격에 응하는 대신 무장한 가면 부대에게서 총을 탈취해 컨트롤 타워를 공격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화끈한 화력전이 펼쳐진다.
미로 같은 건물에서 벌어지는 집단 총격전은 작전 상황과 진행 루트가 잘 보이도록 치밀하게 연출되었다. 왕년에 노조 운동을 함께 했던 두 친구가 앞장서고, 특전사 출신 트랜스 여성이 용감하게 싸우고, 말끝마다 해병대 출신이라고 자랑하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남자는 겁에 질려 작전을 망치는 등 여러 인간성과 반전이 교차한다. 액션, 사회 비판, 잔혹물 팬 모두에게 도파민 폭발을 안겨줄 장면이다. 자본주의 디스토피아에서 개인의 생존 문제를 그린 시즌 1에서 연대와 저항으로 주제를 확장하는 의미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장면 전후 상황은 심란하다.
한밤에 맨몸 난투극이 벌어지면 노약자와 여성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기훈은 그들을 지키는 대신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게임 주최 측과 대전하기를 택한다. 001번을 달고 첩자로 투입된 프론트맨(이병헌)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희생은 감수한다는 것이냐”는 프론트맨의 물음에 기훈은 그렇다고 답한다.
어쩌면 기훈이 옳을 수도 있다. 이번 게임을 투표로 중단시킨다 해도 주최 측은 다른 참가자들을 모아서 게임을 이어갈 것이고, 매번 수백 명이 죽어나갈 것이다. 기훈처럼 이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섬에 들어오는 사람이 또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이번에 뭐라도 해봐야 한다. 그러나 그의 작전은 너무 무모하다.
기훈 무리는 가면 부대와 병력, 화력, 공간 정보 등 무엇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실패하면 다시 투표가 벌어질 텐데, 그땐 이미 게임 중단을 요구하는 기훈 측 투표자가 더 많이 죽은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혁명의 순간에 투표로 게임을 중단할 가능성은 없어진다. 이번 게임에서 살릴 수도 있었을 100여 명의 사람들마저 죽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훈이 실패하자 본색을 드러낸 프론트맨은 말한다. “영웅 놀이 재밌었냐?”
기훈의 선택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맞닿는다. 미래의 수천 명을 구하기 위해 당장 눈앞의 100명을 희생시키는 건 옳은가. 지속적으로 희생을 유발하는 시스템을 방치하고 현상을 봉합하는 건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는가. 타협 없는 영웅주의는 어째서 실패하는가.
이 게임장은 분명 순결한 정의나 휴머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주최 측은 투표로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참가자들의 무분별한 욕망을 자극해서 공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하고, 내란을 부추기고, 첩자를 투입해 여론을 오염시키고,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총기를 휘두른다. 그런데 현실의 민주주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오징어 게임>이 작품 밖에서는 경제 효과나 고액 출연료로 화제를 모으는 아이러니한 상황조차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현실의 기훈’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시의적절하고 여운이 남는 메시지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동어반복의 우려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섬 밖에서 벌어지는 수색 작업은 어수선해 보이지만 시즌 3에서의 또 다른 액션을 기대하게 만든다. 계속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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