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올라퍼 엘리아슨이 신안군 도초도에서 선보인 ‘숨결의 지구’

2025.01.03

올라퍼 엘리아슨이 신안군 도초도에서 선보인 ‘숨결의 지구’

세계적인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 착륙했다. 그곳에서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속성을 담은 설치 작품 ‘숨결의 지구’를 최초 공개한 그가 유일한 동행으로 〈보그〉를 낙점했다.

지름 8m 규모의 야외 설치 작품 ‘숨결의 지구’를 대중에게 처음 공개한 날,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일정에 동행했다. 뜨거운 관심 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그의 고뇌와 천성적 낭만이 동시에 묻어났다.

2024년 11월 13일 오전 10시 반, 목포역의 차고도 짠 공기가 들이쉬는 숨마다 가득 들어찼다. 차디찬 공기가 일과 글 무더기에 파묻혀 있던 지난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쯤 한반도 남단으로 내달렸지만 아직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을 만나려면 자동차와 배를 타고 한참 더 들어가야 했다. 나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며 엘리아슨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역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하고 알리기 위해 진행하는 신안군의 문화 예술 사업 ‘1섬 1뮤지엄’ 프로젝트 출범을 엘리아슨이 최신 작품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를 통해 쏘아 올린다는 소식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올라퍼 엘리아슨을 시작으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등이 신안의 섬 곳곳에 작품을 공개한다는 사실 역시 아직은 꿈처럼 느껴진다. 신안군은 자연과 예술의 합치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애쓰고 있다.

‘숨결의 지구’ 안으로 들어선 올라퍼 엘리아슨. 작품은 검은 터널을 지나 감각적인 패턴과 색감의 용암석 타일을 채운 구(球) 형태로 역동적이고도 예측 불가능한 공간감을 일으킨다.

2시간을 더 달려 당도한 신안군 도초도에서 마침내 엘리아슨을 마주했다. 국도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차량과 자꾸만 우회하는 배편으로 개막식 시작 전 엘리아슨과의 독점적인 동행에 허락된 시간은 20분, 안부만 주고받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올라퍼 엘리아슨과 팀원들은 ‘That’s life(그런 게 인생이지)’라는 낙관의 태도로 미소를 띠었고, 우리는 섬 정상의 작품을 향해 큰 보폭으로 걸었다. 헐떡이는 숨을 참고 한참을 오른 끝에 비로소 형형색색의 패턴이 수놓인, 그래서 제3의 시공간 같은 ‘숨결의 지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전남 신안군에 불시착한 덴마크인이 창조한 작은 우주처럼 보였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한차례 휘몰아치고, 예상했던 정제된 포즈와 작품에 대한 명료한 해석보다 지금 이 순간의 생경한 감각을 그에게서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가 들이닥쳤다. “작업하며 느낀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해줄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2003년 테이트 모던의 거대한 터빈 홀에서 선보인 작품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를 시작으로 모마, 댈러스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미술계 거장에게 건네기에는 조심스러운 부탁이었지만, 10대 시절 그가 브레이크 댄서였다는 사실을 알고 슬쩍 던져본 제안이었다. 놀라운 것은 엘리아슨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호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곧바로 달리고 춤추고 웃고 찡그리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도초도의 다채로운 자연을 감각하듯 무엇 하나 같은 동작, 표정이 없었다. 문득 지난봄 페기 구(Peggy Gou)의 ‘1+1=11’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당시 뮤직비디오에서 입고 등장했던 인디언 핑크색 수트 차림으로 <보그>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촬영이 끝나고 개막식에 참석한 그를 한참 동안 뒤쫓다가 이윽고 우린 배 안에서 재회했다. 그에게서 오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거센 바닷바람이 얼굴을 할퀴듯 스치는 와중에도 엘리아슨은 끄떡없이 낭만의 얼굴을 드러내며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긴 폭풍우, 폭설 끝에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갑자기 햇볕이 내리쬐는 천연덕스러운 자연의 모습 같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순환과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올라퍼 엘리아슨은 다도해를 바라보며 “자연에 대해 우리가 많이 둔감해졌음을 깨달았다”고 터놓았다.

예술을 사랑하는 신안군의 ‘1섬 1뮤지엄’ 프로젝트에 착수한 지 6년이 흘렀다. 꽤 긴 시간 준비한 ‘숨결의 지구’를 대중에게 공개한 소감은?

지난 몇 년간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다. 예술, 특히 공공 예술의 중요성, 그런 믿음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야심 찬 공공 예술 프로젝트에 일조해 예술가로서 매우 설레기도 한다. 이번 작품은 예술이 지닌 긍정적 가능성을 신안군이 확신하고 있다는 증거다.

작업에 앞서 방문했을 당시 신안군 도초도의 첫인상은?

농업과 원예가 섬의 중요한 산업인 만큼 매우 단단한 공동체 의식을 느꼈다. 거주민이 땅과 긴밀하게 연결돼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건물이나 사회 기반 시설보다 바다와 논밭 풍경이 월등히 많은 곳이다. 섬의 농부들이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공동체 의식을 더했는데, 도초도에 살며 땅을 일구는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완성한 기분이었다.

신안군 도초도에서 신작 공개 행사를 마치고 목포행 배에 오르는 올라퍼 엘리아슨. 문득문득 그는 섬 곳곳을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숨결의 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감이 된 신안의 자연은?

섬의 화산지형이 작품에 강력한 영감을 주었다. 도초도는 신안의 다른 섬처럼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신안의 화산활동은 먼 과거에 멈추었지만 여전히 그 흔적이 지역의 풍경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이슬란드계 덴마크인인 내게 익숙한 풍경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는 화산활동으로 계속 경관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숨결의 지구’의 패턴과 형태, 색감을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감각과 직관적으로 연결했다. 붉은색은 흙을, 초록과 청록은 지구의 자연 세계를 상징한다. 작품을 어떤 모양으로 완성할지 고심했는데,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자연 어디에나 있는, 이를테면 흙 속의 영양소와 광물, 나무 생장과 조개껍데기 생성에서 보이는 결정형 구조와 패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번 작업보다 20여 년 앞선 2002년 작품 ‘용암 바닥(Lava floor)’을 통해 화산을 탐구했다. 작가로서 화산이라는 자연의 어떤 의미에 매료되는가?

화산은 지구 내부와 외부의 문지방에 서 있다. 액체가 된 암석을 보는 놀라운 경험은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방식을 일러준다. 우리가 그 변화를 즉각적으로 알아챌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의 유명한 말처럼 “만물은 흐른다”. 특히 화산은 암석의 순환에서 중요한 순간을 차지한다. 많은 사람이 과학 시간에 물의 순환에 대해 배우지만, 암석 역시 순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암석은 액체 용암에서 화산암이 되고 침식과 퇴적을 통해 섞이고 변한다. 곧 충분한 압력을 받으면 지구 표면 아래에서 다시 액체가 된다. 결국 만물은 일시적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만날 때를 위해 저마다의 여정을 거치는 중이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기하학의 복잡성, 모서리나 수평선의 부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 속에서 당신을 자리하게 한다. 당신의 눈이 계속 움직이는 이유다.

화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처럼 그간 자연과 디자인, 과학 요소를 결합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방금 설명했듯 ‘숨결의 지구’ 또한 자연 요소에서 착안한 패턴을 적용했는데, 2차원의 무늬를 3차원 공간으로 옮기면서 고민한 지점은? 관람객에게 어떤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나?

섬을 찾은 관람객에게 작품의 첫인상은 아마 ‘복잡함’일 듯하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종류의 패턴일 테니까. 작품의 이런 역동성 때문에 쉴 틈 없이 시선과 걸음을 여기저기로 옮기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애쓸 거다. 기하학적 패턴과 더불어 작품의 다채로운 색깔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3차원의 다면체적 환영을 만든다. 결국 길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공간에서의 경험은 활기를 북돋우는 무언가를 선사할 텐데, 이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고 공간 속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혹은 작품을 보기 위해 지나친 수많은 주변 환경과 자신의 관계를 음미하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까지 확장하기에 이른다.

너울지는 신안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는 듯한 올라퍼 엘리아슨. 배에 오른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달라고 <보그>에 요청했다.

자연과 관람객을 끊임없이 연결하는 요소 중 하나는 열린 구조의 돔이었다. 섬 정상에 실내외 경계를 흐린 작품을 만든 목적은?

관람객이 작품을 보러 오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변 환경을 마주할지 엄청나게 고민했다. 선착장에 내려 비탈길을 오르며 ‘숨결의 지구’까지 찾아오는 여정은 기대감과 함께 작품을 경험하는 것에 멋을 더한다. 스스로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 평소에 지나쳤을 것들을 주목하도록 등을 떠미는 것과 다름없다. 섬까지 오는 여정 자체가 분명한 계획과 목적을 지닌 일이니 말이다. 결국 모든 여정은 예술의 일부다.

작품을 완성한 뒤 제목을 붙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명을 ‘숨결의 지구’로 지은 결정적 이유는?

호흡이 외부 세계와 내부 사이의 교감이라는 사실에 오랫동안 매료되어 있었다. 호흡을 통해 외부의 일부가 몸으로 들어오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아주 미세한 방식으로 온 세상을 어루만지고 변화시킨다. 이 작품에는 구멍이 많다. 개방된 돔은 외부 날씨와 바람을 지하로 끌어들인다. 지구에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듯, 관람객은 작품 속에 서서 외부와 접촉하게 된다. 작품 이름은 이와 같은 상황을 비롯해 다양한 요소를 직관적으로 담아낸 결과다. 관람객 역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이기에 그들과의 유대감을 제목에 반영하고 싶었다.

Olafur Eliasson,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 2024. Installation view: Docho Island, Shinan County, South Jeolla, South Korea, 2024. Photo: Kyungsub Shin, Commissioned by Shinan County Ⓒ2024 Olafur Eliasson

그간의 작품 전반에서 관람객의 경험을 통한 상호작용을 중시해왔다. 당신의 작품이 활기를 얻고 완성되는 지점에 늘 관람객이 있다.

내 작품은 인간의 지각 과정에서 간과되는 것들을 명료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수용적인 자세로 작품을 관람하기보다 작품을 경험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작품 의도가 관람객이 세계를 구성하는 능동적 참여자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데 큰 힘이 될 거다. 작품은 결국 관람객과 함께 만들어진다. 관람객과 마주하기 전의 작품은 작품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힘 아닐까. 관람객과 작품이 마주하는 순간 스파크가 일듯 서로 뒤섞이며 교감하게 하는 것 말이다.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는 도시 밀집으로 인한 인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계획된 면도 있다. 당신이 주목하는 예술의 힘은?

예술은 성찰과 토론,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느림’의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성과가 뒤따르는 생산적인 시간을 굳이 갖지 않아도 괜찮다고 일러주면서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엄청난 변혁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예술은 확실하게 대답할 필요 없는 열린 질문을 던진다. 특정 방식과 물음이 당신을 자극할 수도 있으며, 영상이나 SNS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주한 것들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브레이크 댄서 이력을 지닌 올라퍼 엘리아슨의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포즈와 표정.

그만큼 미술이라는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디자인, 건축, 과학, 음악 등을 아우르며 동시대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왔다. 창작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를 뒤섞는 일의 묘미는?

나는 끊임없이 영감을 찾아 헤맨다.(웃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긴다. 물론 예술가의 관점을 분명히 견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분야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도 긴요하다. 저마다의 차이가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준다. 나 역시 미술가나 무용가, 시인과 같이 다른 영역의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길 소망한다.

이런 세계와 장르의 확장, 융합은 개인의 창작 욕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동시대 예술가로서 마음 한구석에 품은 책임이나 고민은?

‘숨결의 지구’를 만들면서 나는 인류보다 더 큰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거주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근래 가까이 느껴지는 문제다. ‘숨결의 지구’는 만물의 상호 연결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동식물의 삶, 생명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물과 흙에 우리가 연결되는 문제를 성찰하는 노력이다. 직접 탐구한 결과 도초도는 삶을 지탱하는 활동이 땅과 결부되는 곳이란 인상을 받았다. 그간 나의 고민을 작품에 반영할 완벽한 기회를 얻어 한없이 기쁘다. (VK)

올라퍼 엘리아슨은 언제나 새롭고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피처 에디터
류가영
사진
박나희
유승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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