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뷰티 메가트렌드, 유리알 피부에 숨겨진 욕망

2025.01.06

뷰티 메가트렌드, 유리알 피부에 숨겨진 욕망

‘유리알 피부’란 대체 뭘까? K-뷰티 전파로 온 세상 스킨케어 루틴이 재정립되고 있다.

Jocelyn Hobbie, Shine Star Flower/Orange Plaid, 2024. Oil on canvas, 16×16inches. Courtesy of Fredericks & Freiser, New York, and Jessica Silverman Gallery, California

로션, 프라이머, 페이스 오일로 뒤덮인 내 얼굴이 물에서 갓 올라온 수달처럼 번드르르하다. 추수감사절 칠면조처럼 기름기도 잘잘 흐른다. 깅엄 체크 패턴의 리넨 베갯잇에 얼굴 모양 얼룩이 그대로 찍혀 있을 정도다. 심지어 남편은 자기 셔츠에 자국을 남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자기를 껴안지 말라고 부탁하곤 했다. 나는 <보그> 기사를 쓰며, 최신 뷰티는 물론 기존 뷰티 트렌드에 도전해왔다. 이번 과제는 한편으론 학구적인 주안점을 둔 임무, 즉 ‘촉촉하고 빛나는 피부에 집착하는 메가트렌드 이해하기’다.

지난 몇 년에 걸쳐 Z세대가 보여준 윤기, 빛, 광채를 머금은 피부에 대한 갈망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글레이즈드 도넛 스킨(헤일리 비버를 뷰티 여신으로 승격시킨!)은 돌핀 스킨(인어처럼 푸른빛이 도는 미세 광채)과 살짝 다르며, 그것을 꿀 피부, 젤로 스킨(Jello Skin), 뱀파이어 스킨 또는 앞선 이름에 비해 다소 무성의하게 지어진 ‘셀럽 스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례로 클라우드 스킨은 클라우드리스 스킨과는 다르다. 전자는 반사광 없이 촉촉한 피부를, 후자는 티 없이 맑고 균일한 완벽한 피부를 위한 완곡한 표현이니까. 이 트렌드 중 일부는 윤기에, 그 외에는 생기를 머금은 ‘광’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화장품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그 자체로 빛나는 젊음의 광채를 추구하는 트렌드도 있다. 그렇지만 K-뷰티의 시초인 도자기 피부 또는 현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피부를 일컫는 스테이터스 스킨(Status Skin)을 추구하든, 공통분모는 선명하다. 테라스 바닥에 패로우 앤 볼(Farrow & Ball) 페인트를 칠한 듯한 무광 피부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바탕에 깔려 있다. 본연의 특징을 잃고 방황하던 스킨케어 트렌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학창 시절 뷰티 원칙을 도무지 외면할 수가 없다. 다른 방식을 추구한다 해도, 그것들은 영혼처럼 우리 곁에 머문다.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10대였을 때, 당시 대세는 잡티를 감추면서 깔끔하게 파우더를 덧바르는 것이었다. 컨실러, 파운데이션, 멀티 파우더를 어찌나 두껍게 올렸는지 자연스러운 피붓결을 위해 사포질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었다. 2002년 세포라 매장 직원이 그토록 강조하던 ‘기름진 T존’과 고등학생 시절 여드름으로 고통받던 나는 문제성 피부 개선을 위한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프로액티브(Proactiv) 제품으로 유분기를 몽땅 정리하고, 그다음 벽돌에 회반죽을 칠하듯 어울리지 않는 베이지색 커버걸(CoverGirl)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살짝만 번들거려도 굴욕이라 여겼다. 그래서 수시로 화장실을 드나들며 유분기와 전쟁을 선포했다. 유분은 곧 추악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MZ세대는 다르다. 이들에게 메이크업은 눈속임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여전히 파우더를 애용해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뷰티 인플루언서도 간혹 있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피붓결을 살린다. 심지어 주근깨나 잡티가 드러나도 말이다. 앞서 언급한 도자기 피부 트렌드는 2017년 뷰티 월드에 유입된 이래 명맥을 이어갔지만, 2024년 초 또 한 번 진화했다. 전설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가 정말 끝내주는 도자기 피부를 뽐내는 모델들을 2024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컬렉션 런웨이에 출격시킨 것이다. 번드르르하지만 차분하고, 풀 커버지만 가벼운 이 획기적인 메이크업 룩이 인터넷을 달궜다.

맥그라스는 오랫동안 자연스럽지만 더 좋은 ‘에일리언젤릭(Aliengelic)’ 피부를 추구해왔으며, 런웨이 작업에서든 자신의 이름을 딴 뷰티 제품에서든 지난 10년간 과도하게 윤곽을 잡아주는 연출은 거부해왔다. “아주 어릴 때부터 피부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머니가 피부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셨거든요.” 맥그라스가 설명했다. “어머니는 풀 메이크업을 즐기셨어요. 당시 기술적 한계로 아주 매트해 보이는 데다, 심지어 분칠한 것 같은 모습이었죠. 그래서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앉아 계셨어요. 수증기로 화장을 근사하고 촉촉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요.”

맥그라스가 “1930년대 도자기 인형의 매력에 근간을 두었다”고 말하는 마르지엘라 런웨이 모델들에 대한 존 갈리아노의 비전이 그녀에게 스스로 헤치고 나아갈 기회를 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정말 신선하고 매력적인 결과가 탄생했고, 소셜 미디어는 모방으로 넘쳐났다.

베이스 메이크업의 대가 맥그라스는 나처럼 나이 들어도, 여전히 고등학생 시절처럼 얼굴의 여드름과 잡티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조언할까? “물광 피부는 피부 톤, 성별, 피부 타입에 상관없이 가능합니다.” 그녀가 강조했다. “피부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룩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분들에게 뷰티란 단 하나의 이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임을 상기시키죠.”

그의 혜안에 주목하면서 진짜 숨은 비법을 알아내고자 했다. 완벽한 연출 없이는 집 밖으로 나서지 않는 요즘 젊은 여성과 인플루언서들이 자신 있게 맨얼굴을 드러내게 하는 비법 말이다. 그래서 뉴욕의 스킨케어 스페셜리스트, 닥터 데이비드 킴(David Kim)을 찾았다. 나는 강력한 각질 제거제, 따끔한 세럼, 여드름에 치약을 발라서 유분 피하기 같은 방법에 오랫동안 의존해온 ‘팔랑귀’들을 위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정말로 빛나 보이려면 일단 피부가 매끄럽고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드러그스토어’라는 좋은 선택지가 있죠.” 그가 말했다. 즉 캐비아 살 돈이 없어도 글레이즈드 도넛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순한 세안제, 수분 세럼, 가벼운 모이스처라이저를 사용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각질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이 단계는 로레알 파리 제품으로도 충분하다. 녹차 라테 두세 잔 마시는 대신 ‘10% 퓨어 글리콜산 세럼’을 구매하면 된다. 데이비드 킴은 둔탁한 피부를 돌고래 표면과 맞바꿔줄 지름길로 보톡스 시술을 추천한다. 3개월에 한 번씩 이마, 볼, 윗입술을 비롯해 얼굴 전반에 맞는 것이다. 이 방법은 물광 피부의 발원지인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중이다.

살짝 숫기 없고 화장에는 형편없는 내가 직접 해보기로 결심했다. 지나치게 기름기가 흘러서 손에 쥔 브러시를 떨어뜨리고 아이폰 화면을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었다. 광을 내주는 제품을 간신히 다 파악한 후, 하나씩 특정 테스트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 제품을 발랐을 때 기분이 좋나? 얼룩을 남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나? 최종적으로 내 나이에 걸맞아 보이나? 또는 ‘나는 평범한 엄마가 아닙니다, 멋진 엄마입니다’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나 등을 살폈다.

처음으로 라 메르 ‘크렘 드 라 메르’를 얼굴에 도포하면서, 400달러짜리 크림이 피부를 덮었을 때 내게 쏟아진 칭찬의 향연을 보고 몹시 흥분했다. 크리스챤 디올 뷰티 ‘디올 포에버 스킨 글로우 24H 웨어 래디언트 파운데이션’을 아무리 아름답게 바른다 해도 눈썹 위에는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눈에는 그저 핑크 베이지 컬러로 엉망이 된 얼굴만 보였으니까. 그다음 3D 입체로 무지갯빛을 띠는 모이스처라이징 프라이머인 투슬래시포 ‘프라이밍 스킨 글리머’를 추천한다. 제품이 흡수되자마자 볼과 눈꺼풀 위에 크리스챤 디올 뷰티 ‘디올 포에버 글로우 맥시마이저’를 터치하고, 코끝에도 살짝 얹었다. 그다음 겔랑 ‘메테오리트’다. 이 제품은 수정같이 맑은 파스텔 파우더 볼이 들어 있는 전설의 베스트셀러다. 그것을 입술 위쪽 인중과 눈 밑에 톡톡 발라주었다. 그리고 베네피트 브로우 왁스, 누드 톤의 샬롯 틸버리 ‘립 컨투어’, 카멕스 립밤으로 메이크업을 마무리했다. 내 미션을 지지해준 여러 사람에게 사진을 보냈다. 누군가는 “열두 살처럼 보인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완전 공주 같다!”며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연말 파티 가니?”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촉촉함을 위해 파운데이션을 포기하고 양 볼의 자연스러운 광채를 강조하면서, 줌 회의에서 코첼라에 등장한 엔젤 스킨의 여왕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처럼 캣워킹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 자리에 있다니 꿈이 실현되었군요. 저는 레나 던햄입니다. 에일리언 돌핀 뱀파이어 클라우드 피부를 갖고 있죠.” 그들이 내 뺨에 피어난 여드름을 봤을 수도 있다. 부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렇게 밝게 빛나는데, 그까짓 여드름이 뭐 대수겠나? (VK)

LENA DUN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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