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세상을 바라보고 연대하는 장,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2025.01.10

세상을 바라보고 연대하는 장,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지난 12월 초부터 한파를 무릅쓰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면서 몸, 즉 신체야말로 모든 세계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 어떤 예술가의 작품보다 감동적이었는데요. 실제 현대미술가에게 신체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성향이 교차하고, 차이와 다양성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죠.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오는 3월 3일까지 열리는 그룹전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은 그중에서도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의 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사유를 망라합니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는데요. 요컨대 싱가포르 출신 미술가 아만다 헹의 ‘걸어갑시다'(1997~2001)를 보면서 역사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를 모두 돌아보는 데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삶을 안무하라’,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 ‘신체·(여)신·우주론’, ‘거리 퍼포먼스’, ‘반복의 몸짓-신체·사물·언어’,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몸’ 등 무려 6개 장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아시아 11개국에서 온 130여 점의 작품 중 어느 하나 허투루 볼 것이 없습니다. 이들 모두가 각각의 사연,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각자의 몸에서, 그리고 삶에서 시작되는 작품은 모두 나의 삶을 만나면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박영숙, ‘미래를 향하여’, 198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5×71.1cm, 아라리오컬렉션 소장,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 박영숙
박영숙, ‘마녀’, 198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6.5×217.2cm, 아라리오컬렉션 소장,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 박영숙

전시장에서 서로 조우하는 이들의 세계는 130여 개가 아니라 수천, 수만으로 확장됩니다. 그것이 예컨대 그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쿠사마의 자기 소멸’ 같은 귀한 영상이 되었든, 이름을 외우기도 힘든 이멜다 카지페 엔다야의 설치작 ‘돌봄을 이끄는 이들의 자매애를 복원하기’든, 자신의 몸을 둘러싼 사적인 이야기부터 아시아라는 지역성 및 근대성 같은 거시적 주제까지 복합적으로 품어 안습니다.

이멜다 카지페 엔다야, ‘돌봄을 이끄는 이들의 자매애를 복원하기’, 1998/2022, 장소 특정적 설치, 256×611×287cm, 작가 소장, 작가, 필리핀문화원 제공. 사진: 에릭 리옹 오렌 ⓒ 이멜다 카지페 엔다야
인시우전, ‘강을 씻기’, 1995, 퍼포먼스 사진, 작가, 베이징코뮌, 페이스갤러리 제공. ⓒ 인시우전
쿠보타 시게코,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 1976/2019, 영상 설치; 4채널 영상, 컬러, 무음; CRT 모니터 4대, 합판, 영상: 5
분 21초, 오브제: 168.3×78.7×170.2cm, Artist Proof, SD 영상과 슈퍼 8mm 필름을 비디오로 변환, 쿠보타 시게코 비디오아트 재단 제공. ⓒ 쿠보타 시게코 재단
김나희, ‘가십걸 프로토콜’, 2024,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다채널 영상, 컬러, 무음, 300×530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작가 소장.

그렇게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다 보니 서로 연결된 6개의 주제가 지금의 여성 미술뿐 아니라 세상을 정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고와 감각, 예술과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건 여성 문화의 대표적 특성이었지만, 이는 오늘날 진화한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 남성과 여성 등의 이분법을 넘어 돌봄과 자매애적 연대 등 여성주의적 관점이 결국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걸,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여성 미술가들에게 신체는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이해하고 저항하는 도구지만, 이제는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고 연대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실로 이들의 놀라운 선견지명을 통해 저는 현대미술이 대체 세상에, 현실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오랜 고민과 회의를 잠시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접속하는 몸’이라는 제목처럼, 제가 다채로운 삶을 살아낸 모든 여성들과 손잡은 듯 자못 든든하기까지 합니다.

정윤원(미술 애호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