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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든 가방에 벨트가 달려 있는 이유

2025.01.15

지금 모든 가방에 벨트가 달려 있는 이유

1983년, 에르메스의 회장 장 루이 뒤마는 런던행 비행기에서 제인 버킨을 만납니다. 그녀는 보기에 예쁘면서도 수납력이 좋고 튼튼한 가죽 가방을 도통 찾을 수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죠. 장 루이 뒤마는 곧바로 비행기 위생 봉투에 스케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패션 피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버킨 백은 그렇게 탄생했죠.

제인 버킨의 버킨 백. Getty Images

버킨은 모든 럭셔리 백의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벨트 모양 플랩이 달린 백을 보는 즉시 버킨을 떠올리죠. 에르메스와 경쟁 관계인 럭셔리 하우스들은 버킨만큼 파급력 있는 백을 만들기 위해 40년이 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간 수많은 ‘잇 백’이 탄생했지만, 왕좌에는 여전히 버킨이 꼿꼿이 앉아 있습니다.

Prada 2024 S/S RTW
Moschino 2025 S/S RTW

최근 브랜드들이 전략을 완전히 바꾼 이유입니다. 새로운 디자인의 백을 제안하기보다 버킨의 영향을 받았음을 공표하고 있죠. 버킨의 상징과도 같은 플랩 디테일을 차용한 벨트 백을 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작은 프라다였습니다. 2024 S/S 쇼 중 벨트를 길게 늘어뜨린 듯한 디자인의 ‘버클 백’이 등장했거든요. 이 백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있었던 두 번의 여성복 컬렉션과 두 번의 남성복 컬렉션에도 버클 백이 등장했죠. 아드리안 아피올라자의 모스키노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최근 얇은 벨트를 칭칭 감아놓은 모습의 ‘타이 미(Tie Me)’ 백을 선보였죠. 토템, 톰 포드 역시 비슷한 디자인의 백을 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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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평생 버킨만 멜 것 같았던 ‘열혈 버킨주의자’들도 서서히 마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제인 버킨의 ‘가방 꾸미기’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화제를 모았던 두아 리파는 최근 프라다 버클 백을 들고 거리로 나섰죠. 생 로랑은 2019년 선보인 ‘맨해튼 백’을 부활시켰습니다. 캠페인의 얼굴로 나선 인물은 ‘버킨 사랑’으로 유명한 케이트 모스였고요. 헤일리 비버 역시 한동안 맨해튼 백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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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합리적인 가격대에 질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브랜드들 역시 이 흐름에 탑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십 개의 버킨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엘사 호스크는 최근 마누 아틀리에(Manu Atelier)의 르 캄봉 40 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케이티 홈즈는 셰이프부터 디자인까지 버킨을 쏙 빼닮은 르 캄봉 35를 애용하며 ‘매진 행렬’을 주도했고요. 마누 아틀리에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베스트 마나스티르 바그다틀리(Beste Manastir Bağdatli)와 메르브 마나스티르(Merve Manastir) 자매는 르 캄봉 백의 인기를 두고 “헤리티지가 느껴지는 가방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습니다.

버킨과 흡사한 디자인의 벨트 백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구나 버킨을 갖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버킨을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버킨은 희소가치가 높은 백입니다. 구매 이력이 쌓인 고객에게만 버킨을 구매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도시 전설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최근에는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버킨을 구매하고 싶다면, 매장에 들어간 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며 아무나 버킨을 구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했고요. 가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르 캄봉 35가 745달러라는 ‘착한’ 가격을 자랑하는 데 비해, 버킨은 날이 갈수록 비싸지고 있죠.

일종의 유행이 되어버린 ‘버킨 따라잡기’ 전략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입니다. 럭셔리 하우스는 물론, 마누 아틀리에 같은 소규모 브랜드 역시 성공을 맛보고 있죠.

@demellierlondon

럭셔리 백화점 또한 버킨을 연상시키는 벨트 백 열풍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뉴욕 블루밍데일즈(Bloomingdale’s) 백화점의 액세서리 & 뷰티 디렉터, 마리사 갈란테 프랭크(Marissa Galante Frank)는 “벨트가 달린 가방, 특히 토트백과 사첼 백 디자인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합니다. 트렌드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데 피로를 느낀 소비자가 클래식한 디자인을 찾으면서, 벨트 백 수요가 치솟았다고 설명하죠.

프랭크는 다양한 가격대의 벨트 백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최근 드멜리어(Demellier)의 ‘뉴욕’ 토트백을 찾는 고객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는데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뉴욕 백 역시 리테일 가격이 약 100만원입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구매할 수 있는 억만장자부터 패셔너블한 삶을 즐기는 중산층까지 열망하는 버킨. 하지만 피에르 알렉시 뒤마가 말했듯, 버킨을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애타는 마음을 비슷한 디자인의 (그리고 훨씬 저렴한) 벨트 백이 잠시 달래줄 수는 있겠지만, 버킨의 위상은 영원할 겁니다. 잇 백계의 잇 백이 되었으니까요.

사진
Getty Images, GoRunway, Instagram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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