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와 로맨스의 잘못된 만남, ‘별들에게 물어봐’
‘500억 SF 대작’으로 기대를 모은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tvN)가 걱정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1~2주 차 시청률이 모두 2%대에 그쳤다. 아무리 시청률보다 스트리밍이 중요한 시대라고 해도, 전작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가 최종회 6.5%로 마감한 것을 고려하면 긍정하기 어려운 수치다. 총 16부작이라 남은 회차가 많기에 더욱 아찔하다.
<별들에게 물어봐>는 공효진, 이민호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다. <파스타>(2010), <미스코리아>(2013), <질투의 화신>(2016)을 쓴 서숙향 작가가 집필했다. 지금도 그가 집필한 주말극 <다리미 패밀리>(KBS2)는 2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안타깝게도 <별들에게 물어봐>는 배경이 미래인 데 비해 이야기, 정서, 캐릭터의 시계가 현재에도 미치지 못한다. 극 중 대한민국은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고 우주정거장에서 의학 실험을 수행하는 나라다. 한국 관객이 실감하기 어려운 미래다. 제작진은 여기에 요즘 가족 드라마에서도 보기 드문 올드한 사건들을 부려놓는다.
남자 주인공 공룡(이민호)은 산부인과 의사다. 어쩌다 재벌 회장(김응수) 아들의 불임 치료를 맡은 그는 체외수정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회장에게 협박받고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곧 회장의 아들이 죽는다. 종족 번식에 혈안이 된 회장은 죽은 아들에게서 채취해둔 찌그러진 정자가 우주에서는 멀쩡하게 기능할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다. 그래서 700억원을 들여 공룡을 우주로 보낸다. 죽은 아들의 정자와 아직 살아 있는 며느리(백은혜)의 난자를 ‘몰래’ 우주정거장으로 가져가 수정시켜라, 성공하면 내 딸 고은(한지은)과 너를 결혼시켜주고 너에게 난임 센터도 지어주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막상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공룡은 자신이 배달부일 뿐이고 실은 고은의 전 애인 강강수(오정세)가 수정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도 많은 의문이 남는다. 회장은 왜 죽은 아들의 DNA를 재생산하는 데 집착할까? 굳이 아들의 찌그러진 정자를 우주로 가져가서 수정하는 데 700억원을 쓰느니 인간 복제 실험에 돈을 대서 자신을 복제하거나, 젊은 여자와 섹스를 해서 새 아들을 낳는 게 낫지 않을까? 회장이 죽은 아들을 엄청나게 사랑해서 반드시 그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냥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전통적 ‘혈통’ 개념에 과몰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너무 고루하다. 그 천상천하 유아독존 회장이 공룡과 강강수 중 누가 체외수정을 시술하느냐에 집착하면서 성공하는 자를 사위 삼겠다고 하는 것도, 그 집안 며느리가 굳이 자기 난자를 번식시킬 수 있는 건 공룡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희한하다.
무엇보다 큰 의문은 이것이다. 왜 회장님이 700억원을 들여 우주선에 관광객을 태우는 건 가능한데 돈을 좀 더 주고 우주 체외수정 실험을 공식 요청할 수는 없단 말인가? 우주선에 도착한 공룡은 심장마비에 빠진 실험용 쥐를 수술해서 뉴스에 나온다. 그게 그렇게 큰 뉴스가 될 정도면 지구에서 불가능한 찌그러진 정자의 우주 수정도 대한민국 우주 산업의 쾌거가 될 법한데 왜 이걸 비밀로 했을까?
하여간 공룡의 우주 체외수정 프로젝트는 비공식이라 여러 소동이 벌어진다. 공룡은 아이스크림 통에 몰래 냉동 정자를 담아 간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소지물로 신고하지 않아서 우주선 커맨더 이브(공효진)가 그걸 검사하네 마네 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700억원이나 줘야 우주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유인 우주선 기술이 초창기인 사회에서 아마추어 탑승객의 소지품 검사를 이렇게 허술하게 한다고?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이 드라마 시청자 중 우주과학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건 한국에서 SF 콘텐츠 붐을 일으킨 할리우드 히트작 <그래비티>(2013)와 <마션>(2015)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관건은 일반 시청자, 관객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이야기를 제공하는가다. <별들에게 물어봐>가 실패한 지점이 여기다.
이쯤 되면 시청자들은 <별들에게 물어봐>의 과학이 로맨스의 액세서리일 뿐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급기야 3~4화에서는 더 믿기 힘든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우주인이 모두 외부 작업에 나선 사이, 엄연히 ‘관광객’인 공룡은 혼자 선내에 남아 있다가 강강수가 가져간 재벌 아들의 정자를 탈취하기 위해 실험실 모터를 정지시킨다. 센서가 위기를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자 이브는 지휘자로서 여러 지시를 내리지만 아무도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급기야 이브가 선외에서 위기에 처하자 지상 관제 센터와 우주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멋모르는 공룡이 해치를 열고 나가서 그를 구해낸다. 이 모든 장면이 우주과학 따위 몰라도 ‘왠지 저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불러오는 동시에, 비장한 연출이 무색할 정도로 ‘이 인물들이라면 그러고 말 것이다’라는 슬픈 예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공효진, 이민호는 로맨스에서는 검증된 배우들이지만 우주선 선장과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설득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건 배우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작품의 모든 캐릭터가 지나치게 귀엽거나 인간적이거나 스타일리시해서 첨단 과학과 기술을 운용하는 인물들이라고 믿기 어렵다.
로맨스 자체의 매력도 미심쩍다. 남주인공 공룡은 응석받이 돈키호테다. 여주인공 이브는 퉁명스럽다. 두 사람은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도 티격대고 앙탈 부리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일상극에서는 모르겠으나 사람 목숨이 걸린 SF 드라마의 우주 장면에서 ‘극한의 효율충’을 자처하는 한국인들이 사랑스럽게 봐줄 수준이 아니다. 심지어 공룡은 지상에 두고 온 여자가 있는데도 이브에게 끌린다. 지상의 여자 고은은 아버지가 강요하는 강강수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공룡에게 돌진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자의 헌신을 짓밟는 남자가 시청자의 호감을 얻기는 대단히 어렵다. 공룡이 술에 취해 이브에게 고백하는 장면도 그의 무책임하고 저돌적인 돈키호테 기질을 강조할 뿐이다. 불륜도 그 민감한 심리를 잘 해부하면 매혹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혹은 이 배우의 연기는 행동의 비윤리성에 비해 너무 밝고 순진무구해서 지지하기 어렵다. 아직은 그렇다.
<별들에게 물어봐>는 이처럼 별들에게 물어봐도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숱한 의문을 안겨주는 드라마다. 부디 남은 회차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별들에게 물어봐>는 총 16부작으로 tvN에서 토, 일 오후 9시 20분 방영된다. 넷플릭스, 티빙에서 스트리밍된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추천기사
-
뷰티 트렌드
세계적으로 유행할 2025 헤어 트렌드 7
2025.01.08by 장성실, Veronica Cristino, Hannah Coates
-
엔터테인먼트
'서브스턴스', 젊음을 욕망하는 여성이 맞닥뜨린 자기혐오의 공포
2024.12.17by 강병진
-
아트
지구의 기억을 돌아보다, '언두 플래닛'
2025.01.08by 황혜원
-
엔터테인먼트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오징어 게임 2' 팝업
2024.12.26by 이정미
-
패션 트렌드
조용한 럭셔리는 잊으세요! 2025년은 '혼돈의 커스터마이징' 시대
2025.01.14by 이소미, Joy Montgomery
-
엔터테인먼트
SF와 로맨스의 잘못된 만남, ‘별들에게 물어봐’
2025.01.15by 이숙명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