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목포, 항구, 박지현의 진심
지드래곤의 반대편 세상에서는 트로트 천하가 계속된다. 갖가지 감정으로 화려하게 채색된 쇼가 끝난 뒤 표류하는 짙은 여운. 〈미스터트롯2〉 준우승을 거쳐 목포 바다와 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꽉 찬 첫 앨범 <OCEAN>으로 돌아온 트로트 가수 박지현이 내놓은 것은 또 한 번의 진심이다.
시간이 벌써 저녁 7시군요. 방금 첫 번째 미니 앨범 <OCEAN>이 공개됐어요. 인터뷰에 집중하기 어렵진 않을까요?
아뇨, 사실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앨범을 처음 내는 거라 반응을 어디에서 확인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이젠 제 손을 떠났으니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죠. 하하하.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미스터트롯2 – 새로운 전설의 시작> 예선 무대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부터 한결같이 담대한 모습입니다.
저도 긴장합니다! 훈련이 많이 된 거예요. <미스터트롯2> 끝나고 나서 톱 7 가수끼리 80회 정도 공연하고, 그 후에 톱 3 가수끼리 20회 정도 더 공연하면서 트레이닝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경험 한 거죠. 덕분에 여유가 많이 생겼어요.
음반을 만드는 건 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결의 작업이었을 겁니다.
계속 내 목소리만 들으면서 녹음하는 건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타이틀곡 ‘바다 사나이’처럼 신나는 노래는 아무래도 관객 앞에서 부르는 게 훨씬 좋죠. 어쨌든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하는 것에 만족하기 어렵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더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또 목이 쉬니, 적당한 선을 찾는 게 힘들더라고요. 어떤 게 최선인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비로소 ‘내 노래’가 생겼군요.
그렇죠. 앞으로 제 노래 잘 불러야죠. 아무래도 라이브가 음원보다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으하하.
바다, 목포, 항구 등의 키워드를 앞세운 5개 수록곡에서 목포 출신의 정체성이 느껴져요.
제가 특별하게 내세울 거라고는 목포 출신이라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어느새 캐릭터도 그렇게 각인된 것 같고요.
바다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나요?
집도 바로 바다 옆이고, 어머니랑 같이 수산물 장사할 때 다니던 길도 늘 바닷가였어요. 목포에서 보는 바다도 예쁘지만 섬으로 깊이 들어가면 더 예쁜 바다도 볼 수 있죠. 몇 년 전에 신안 쪽으로 천사대교가 생겨서 예전에는 배 타고 들어가야 했던 섬들을 이젠 차 타고도 쉽게 드나들 수 있어요. 거기서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정말 순수하고 예쁜 바다를 만날 수 있죠. 주말에 엄마랑 밥 먹고 드라이브하면서 자주 갔던 추억이 있어요.
‘목포 부르스’는 작사에도 참여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도전했나요?
작사가분이 작업해놓은 버전 자체로도 예술이었기 때문에 꼭 손댈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도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노래인 만큼 노래 부를 때 감정이입이 잘되면 좋으니까 제 경험과 이야기를 가미했죠. 작사는 앞으로도 조금씩 계속 도전해보려고요. 요즘도 밤마다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고 있어요.
어떤 반응을 들으면 제일 뿌듯할까요?
노래 좋다, 노래 잘한다, 이런 말 들으면 제일 기분 좋겠죠. 트로트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여야 하기 때문에 제 앨범에도 기계음 같은 너무 세련된 요소를 많이 넣지 않으려고 했어요. 멜로디도 많이 안 꼬았고요. 많이 따라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스터트롯2>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데뷔한 후 2년이란 시간이 벼락같이 지나갔습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체감하나요?
노래를 못하진 않으니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자신감은 있었지만 ‘어떻게 되고 싶다’ ‘무엇을 이루고 싶다’ 그런 건 없었어요.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무대에 서면 설수록 나는 트로트를 해야 할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신기해요. 1995년생인데 트로트를 꼭 맞는 내 옷으로 여긴다는 게.
다들 살면서 이 정도 트로트는 듣고 자랐겠지 싶었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를 많이 들은 편이더라고요. 우리 집이 계속 목포에서 수산물 장사를 했고, 제 일상에는 늘 트로트가 있었어요.
트로트의 매력으로 ‘직설적인 표현’을 꼽더군요.
현실적이고 서민적인 이야기, 진짜 삶의 애환을 노래할 수 있는 게 트로트예요. 국악에서 느껴지는 ‘한’의 정서처럼 트로트도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담고 있는데 그런 걸 표현하는 게 재미있어요.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당신의 트로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감정이죠. 진짜 노래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야 노래가 쉬워져요. 그런데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이 파트를 부를 땐 인상을 더 써야지’ ‘여기에서는 좀 더 울먹이는 소리를 내야지’ 이런 계산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순간 안 좋아지더라고요. 이별 노래에서는 이별을 떠올리고, 사랑을 하는 노래면 사랑을 생각하고, 그래야 표현이 더 자연스럽죠.
트로트의 정석 혹은 정답처럼 느껴지는 무대가 있나요?
늘 남진 선배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남자 중에 남자시죠. 지금 80세 가까이 되시고도 사람들 앞에서 그런 카리스마로 노래하신다는 게. 무대를 안 가리고 최선을 다하시더라고요.
박진영 역시 정말 꾸준히 언급하는 롤모델이에요.
작은 연이라도 닿고 싶어서 언급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사실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최근에 드디어 선배님을 뵀는데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팬이었습니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괜히 실수할 것 같고, 저처럼 선배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더 어지럽게 해드릴 것 같아서요. 하지만 잠깐의 만남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드디어 ‘성덕’이 됐죠.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남진, 30주년을 맞이한 박진영 선배처럼 오래 가수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요?
‘T’처럼 이야기하자면, 일단 히트곡이 있어야 하고, 팬이 있어야죠. 그런데 그 두 가지를 얻으려면 진심으로 무대에 임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식당을 차려서 테이블을 100개 정도 깔아놓고, ‘이 정도 하면 사람들이 이만큼 오겠지’ 한다고 잘 안될 게 잘되지는 않잖아요.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게 본질이죠. 그래야 단골도 생기고 계속 사람들이 찾을 테니까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모습을 비쳤어요. 그러면서 낚시, 요리, 복싱 실력도 회자됐죠. 생활력 강한 모습을 보며 어디서든 굶어 죽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아유, 아닙니다. 전문가들에 비하면 다 애매한 정도죠. 그래도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군대(해양경찰청)에서 막내 때 칼질하느라 참 힘들었는데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재주를 갖게 된 거니까요.
애교도 많고, 붙임성도 좋아 보였어요.
제가 하는 행동이 애교인지 몰랐어요. ‘섹시하다’는 표현을 남자한테 쓸 수 있다는 것도 서울 올라와서 처음 알았죠.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반응을 많이 안 보려고 해요. 자꾸 신경 쓰면 부자연스러워지니까요. 아직도 많이 배워가고 알아가는 중이에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할 때마다 입고 있던 화이트 티셔츠는 애정하는 아이템인가요?
팔이 길다 보니 소매가 긴 티셔츠를 선호하는데, 그게 핏이 유난히 좋더라고요. 어누즈라는 브랜드에서 3만원 정도 주고 산 티셔츠인데 지금은 단종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2월 15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을 시작으로 8개 도시에서 첫 단독 콘서트 <쇼맨쉽>이 펼쳐집니다. 어떤 시간이 되길 바라나요?
일단 제 마음대로 표현하고 꾸릴 수 있는 무대라 설레고요. 게스트 없이 혼자 진행할 계획인데 혹시 저를 모르는 분이라도 재미있게 놀다 갈 수 있게 무대를 꾸미고 싶어요. 정말 대접해드린다는 마음으로요.
무대에서 팬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 멘트는 생각 못했는데, 어쨌든 정말 진심으로 준비했다는 걸 잘 말씀드릴 거예요. 형식적인 말은 잘 못하지만 머릿속에서 늘 하는 생각이니 외우지 않아도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첫 앨범과 첫 단독 콘서트. 올해 시작부터 새로운 도전이 연달아 이어지는군요. 아무리 바빠도 잃지 않아야겠다고 느끼는 초심 같은 것도 있을까요?
‘무대를 감사하게 생각하자.’ 사실 게임을 엄청 좋아해요. 2023년에 ‘디아블로 4’가 출시됐을 때 한 판만 해보고 싶었는데 끝내 안 했어요. PC방에 가서 한 판 하는 순간 6개월이 삭제된다는 생각으로요. 그런 마음으로 아직도 집에 컴퓨터를 두지 않고 있고요.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도 팬들이 보내주시는 메시지, 그리고 가족이나 현장에서 받는 응원을 피부로 느끼고 살다 보면 절대 대충 무대에 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매 순간 그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늘 최선을 다해야죠.
새해에도 목포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왔나요?
엊그제 다녀왔어요. 이번에는 아는 형 결혼식 때문이었는데, 부모님이 안 계신 형이 저만은 꼭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저 바쁠까 봐 평소에는 전화랑 카톡도 안 하는 형이 한 부탁인 만큼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다녀왔죠. 제가 트로트 가수가 돼서 제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그럴 때예요. 내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때 행복해요. 정말 보람차고, 가수가 된 게 다시없이 기쁩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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