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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경계를 넘나드는 수녀, 20년의 시간차를 짜릿하게 만든 송혜교

2025.01.22

‘검은 수녀들’ 경계를 넘나드는 수녀, 20년의 시간차를 짜릿하게 만든 송혜교

‘검은 수녀들’ 스틸 컷

송혜교에게 수녀복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드라마 <올인>에서도 송혜교는 수녀복을 입었다. 극 중 이름은 민수연, 세례명은 안젤라. 수녀복을 입은 송혜교의 모습은 당연히 아름다웠다. 드라마에서도 교도소의 종교 활동을 돕던 안젤라에게 수많은 재소자가 상담을 받고 싶어 줄을 섰을 정도. 송혜교에게 수녀복을 입힌 제작진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쉽다. 수녀 서원 직전에 수녀원을 나온다는 극적인 설정이 가능한 동시에 당시 송혜교의 청순미를 폭발시킬 수 있는 의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나 송혜교는 영화 <검은 수녀들> 첫 장면에서 입에 담배를 문 수녀로 등장한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베일을 쓰고 성수가 들어 있는 말통을 들고 나서는 동작의 흐름은 이 수녀의 루틴처럼 보였다. <검은 수녀들>의 시작점인 <검은 사제들>(2015)을 본 관객이라면 비슷한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김윤석이 연기한 베드로 신부는 구마를 앞두고 말했다. “한 대 피우고 올라가자. 지금부터 우리는 용역 깡패들이다. 집주인이 알 박기 하고 안 나가니까 괴롭혀서 쫓아버리는 거지.” 20년 전, 가장 아름다운 수녀를 연기했던 배우가 이제 깡패나 다름없는 수녀를 보여주는 상황. 영화로서는 <검은 수녀들>이 아쉬웠지만, 송혜교에게서 느낀 20년의 시차는 반가웠다.

시작은 <더 글로리>였을 것이다. <가을동화>(2000)부터 <남자친구>(2019)까지, 귀엽거나 발랄하거나 청승맞거나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송혜교는 <더 글로리>를 통해 한 인간을 짓이긴 흉터를 보여줬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배후에서 복수를 집행하는 은둔자가 아니다. 자신이 상처를 입은 체육관에 찾아가 직접 가해자들과 대면하고 그들뿐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공포를 전이시킨다. 문동은이 있었기 때문에 <검은 수녀들>의 유니아 수녀도 가능했을 것이다. 악령과 대결하는 유니아의 전쟁은 복수보다 더 치열하다. 기도하고 주문만 외우는 게 아니다. 찔리고 피 흘리고 얻어터진다.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도 액션 영화처럼 보이는 이유다.

‘검은 수녀들’ 스틸 컷
‘검은 수녀들’ 스틸 컷

<검은 수녀들>의 주인공은 수녀지만, 이 영화에서 악령과 대결하는 건 수녀만이 아니다. 부마자를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니아는 자신이 믿는 신뿐 아니라, 토속신앙의 신에게도 힘을 빌린다. 무려 수녀 출신 무당이 등장하고 수녀들은 수녀복을 입은 채 무당의 굿판을 돕는다. 본격적인 구마 의식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렇듯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신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교회법과 부딪히며 “구마는 시대의 요구가 만든 문화 행위”라고 인식하는 신부와도 대립한다. 무엇보다 악령의 소리를 듣는 영적 능력자인 유니아는 스스로를 괴물과 인간의 경계에 선 인물로 자각한다. “너나 나나 무당이나 다 미친X이야.” <검은 수녀들>은 그렇듯 선을 넘는 풍경이 가장 흥미로운 영화다. 동시에 이 선을 넘는 주체가 송혜교란 배우이기 때문에 짜릿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유니아 수녀의 과거까지 궁금해질 것이다. 경계에 선 종교인으로서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물론 그와 함께 <더 글로리>와 <검은 수녀들>을 거친 이후의 송혜교가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검은 수녀들’ 스틸 컷
‘검은 수녀들’ 스틸 컷

현재 예정된 송혜교의 차기작은 노희경 작가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천천히 강렬하게>다. 1960~1970년대 방송가를 배경으로 스타와 스타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고, 송혜교가 맡은 캐릭터는 스타를 만드는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이미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2008)에서 방송국 PD 주준영을 연기한 송혜교지만, 이 작품에서 그때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줄 것 같진 않다. 1960~1970년대 방송국은 2000년대 방송국보다 더 거칠고 험한 공간일 것이고, 그곳에서 스타를 만들어 키우는 여성 또한 거칠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위치에 있을 듯 보인다. 다음 작품에서도 ‘선’을 넘는 짜릿함을 느끼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의 송혜교는 그런 위기와 맞닥뜨릴 때 가장 재미있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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