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무명씨’가 걷는 길

2025.01.24

‘무명씨’가 걷는 길

‘무명씨’의 손란 대표.
‘무명씨’의 손성 대표.

“이게 뭘까요?” 정갈하게 꾸민 앤티크 숍 한쪽에서 손란 대표가 가운데가 뻥 뚫린 네모난 물건을 들어 올리며 묻는다. 정답은 목침. 낯선 물건의 용도와 의미를 묻는 이 같은 질문은 머뭇거리는 방문객을 위한 손란 대표의 관심 유도형 이벤트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것은 없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할 뿐’이라는 깨달음에서 2020년 청담동에 앤티크 갤러리 ‘무명씨’를 연 손란 대표는 고서에 눈이 밝은 오빠 손성 대표와 이곳을 운영하며 빛을 잃어가는 수많은 옛 물건에 새 삶을 선물했다. 그 결과 이름을 찾지 못한 민화, 낙관 주인을 잃은 서화, 상처를 지닌 사발 등이 영빈관, 안가, 백화점 VIP 라운지 등에 귀한 신분으로 불려갔고, 반상과 고려청자 등은 서울 힙스터들의 간택을 받았다. 한국 고미술품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지닌 아버지(손주항 의원)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익숙하게 접했던 유물을 손란 대표는 이제 자신만의 시선과 방식으로 사용하고 소개하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 중이다. “옛 표구와 병풍에 아크릴 액자를 씌우거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백자에 장식을 한가득 꽂는 등 유서 깊은 물건이지만 자유자재로 활용해요. 물건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잘 사용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올해 손란 대표의 보폭은 한층 폭넓다. 지난해 옛 물건을 특히 젊은 세대가 친근하게 느끼도록 재조명하는 ‘I’m a Collector’ 캠페인에 착수한 그는 2월 중 두 번째 시리즈로 나무에 채색한 기러기 모형인 ‘목안’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이후 연적과 목침 수집가의 사연을 공개함과 동시에 광고대행사 기획자의 이력을 살려 더 적극적인 소통을 이끌어내는 전시나 소모임 등도 시작할 계획. 온고지신을 향한 무명씨의 노력이 한국 고미술의 미래를 밝힌다. (VK)

    피처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박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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