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아침 그리고 저녁

2025.01.25

아침 그리고 저녁

“내 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스트라네바름의 소리들이다. 가을의 어둠, 좁은 마을 길을 걸어내려가는 열두 살 소년, 바람과 피오르 위로 쏟아지는 장대비,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둠 속 외딴집, 어쩌면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 이러한 것들이다. 나는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나는 그 모습들을 사랑하며, 그것은 내 무의식의 감수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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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욘 포세의 작품의 근간에는 자신이 나고 자란 노르웨이 서부 해안의 대자연의 숨결이 깊이 서려 있다. 바람, 비, 어둠, 바다… 사람은 떠나도 이러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생(生)에서 사(死)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서 있는 유한한 인간보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듯이. 2023년 욘 포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선정의 이유가 붙은 건 그래서이다.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2019, 문학동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밤, 가만히 <아침 그리고 저녁>(2019, 문학동네)을 읽어 내려간다. 할아버지의 이름 ‘요한네스’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될 아이 요한네스가 이제 막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와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한 사람의 탄생, 한 세계의 출현이다. 그 후 소설은 어느덧 초로의 노인이 된 요한네스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평생 어부로 살아왔고 에르나와 결혼해 일곱 아이를 뒀고 장성한 자녀들을 독립시킨 뒤 그토록 사랑했던 에르나와 사별한 뒤 홀로 남겨졌다. 욘 포세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법이 없다. 군더더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단정하고 담백한 전개와 형식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띄어쓰기를 하고 쉼표는 쓰되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구두점이 사라지자, 문장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구멍이 생긴 듯 리듬이 만들어지고, 속도가 붙는다. 단어와 단어, 행간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생긴 것만 같다. 미지가 웅숭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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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의 요한네스의 일상에 시끌벅적한 사건이랄 게 없다. 고요하고 나른하고 무료해 보이기까지 한 나날은 그저 소소한 일과와 몇몇 주변인의 이야기와 자연의 풍광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는 얼마간의 반복이 자리한다. 일상이란 원래 그러하다는 듯 단순한 작업과 일이 반복되고, 말이나 행동이 습관처럼 반복되며, 과거의 이름이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고, 죽은 자의 것이 산 자의 것으로 혹은 그 반대의 방식으로 재등장한다. 바로 이 반복과 되돌아옴의 방식으로, 그 끝에, 생과 사, 산 자와 망자의 시간이 접촉하고 만나고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이 소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다른 차원의 시간과 존재의 공존을 꿈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삶과 죽음, 탄생과 사멸은 멀리 있지 않다. 마침표 없는 그의 문장에, 그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미 이 둘은 구분 없이 함께하며 서로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삶의 신비를 이토록 고요한 힘으로 전해올 수 있다니. 그 놀라운 속에서 나는 북해의 피오르 앞에 서 있는 듯,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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