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아니까” –퍼렐 윌리엄스

2025.01.27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아니까” –퍼렐 윌리엄스

루이 비통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파리와 할리우드, 뉴욕을 오가며 패션과 영화, 음악 분야에서 쉴 새 없이 작업물을 쏟아낸다. 이런 선구적 기여는 그를 대중문화 벤 다이어그램의 교집합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루이 비통에서 일한 지 20여 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면 이것만 기억하자. 베르나르 아르노의 3,000억 달러 규모 LVMH 제국에서 단연 최고의 주요 자산인 이 럭셔리 하우스는 파리 퐁네프 거리 2번지에 위치한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사무실을 3배 가까이 확장했다는 사실.

퍼렐은 전임자 버질 아블로가 쓰던 소박한 크기의 공간에서도 일부 작업을 하지만, 회사는 주위 벽을 허물어 디자이너 가구로 채운 쾌적한 크기의 임원급 스위트룸을 만들었다. 우리는 새로 만든 코너 룸의 소파에서 첫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센강 좌안과 그 너머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탁 트인 방이었다. “우리는 일을 많이 하지 않아요.” 퍼렐이 말했다. “많이 하는 건 꿈꾸고 그걸 현실로 만드는 거죠.” 근처에는 반짝이는 그의 새 녹음실도 있다. 녹음실에 대해 말하자면, 파리에서 첫 인터뷰를 한 지 이틀 뒤 9,000km 떨어진 할리우드의 음악 작업실에서 퍼렐의 미국 커버 촬영이 진행됐다. 촬영은 작업실 건물에 자연광이 비치는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어졌다. 촬영을 마치고 짐을 정리할 때쯤 퍼렐은 작업실 세 군데를 오가며 엔지니어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다음 주, 뉴욕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자신의 레고 애니메이션 전기 영화 <피스 바이 피스>를 홍보하면서 루이스 해밀턴, 안나 윈투어와 함께 2025년 멧 갈라의 공동 호스트를 맡게 되었음을 발표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할 때 그가 동시에 진행하던 작업에 대해 질문했다. “세 명의 아티스트와 작업하기 위해 세 개의 방을 마련했어요.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걸 선호하죠. 장소를 옮겨 다니는 걸 좋아해요. 다른 방으로 이동하고 나면, 전에 있던 방에서 진행 중인 작업이 그 방을 떠나기 전에 생각한 것만큼 좋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여러 개의 방에서 작업하면 넓게 볼 수 있습니다. 작업할 때는 집중해야 하지만, 작업물을 판단하려면 넓은 관점으로 봐야 하니까요.”

그가 녹음 작업을 하기 위해 파리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갔을 때, 나는 커버 촬영과 루이 비통 업무, 레고 영화 홍보,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여러 프로젝트로 녹음 시간이 방해받을까 봐 걱정을 표했다. 51세의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렇게 일하는 걸 좋아해요.”

다음은 세상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멀티태스커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훗날 루이 비통의 ‘퍼렐 시대’이자 퍼렐의 ‘LV 시대’로 알려질 그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시작하자.

‘기쁨(Joy)’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기쁨은 경험이나 감정인 동시에 예술의 한 형태다. 내가 칠하고 있는 색이기도 하고.

왜 기쁨부터 시작해야 할까?

인터뷰 시작 전 당신이 2019년 인터뷰에 대해 말했다. 내 인터뷰 기사를 읽지 않지만, 내 삶에서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감사에 대해 얘기한 건 분명히 기억한다. 그다음 단계가 지금 내가 느끼는 기쁨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겸손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했다.

겸손은 평생 연습해야 할 과제다.

다양한 감정에 집중하며 인생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든다. 지금은 기쁨을 탐험하고 발견하는 시기인가?

기쁨은 하나의 결과다. 탐구 과정은 겸손, 공감, 감사, 기사도 정신 같은 것이다. 난 인생의 대부분을 오랫동안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왔다.

어떤 방식인가?

야심 차지만 거만했다. 잘난 척도 했고.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나쁘진 않지만, 건방졌다는 말인가?

그렇다. 반면 지금 알게 된 것은 겸손, 공감, 감사, 기사도 정신에 치우치더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받은 선물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 전부를 결합할 때 기쁨이 생긴다. 내가 이 자리에 임명됐다는 사실은 옷이나 신발, 가발, 액세서리, 트렁크, 광고, 런웨이 쇼, 매장 쇼윈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새로 출시할 신발과 가방을 떠올릴 때면, 당신은 이 대화를 기억하게 될 거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브랜드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네가 이 자리를 맡게 될 거고 이런 일을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임명은 하우스의 차원을 넘어 내 삶에 대한 임명이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내 역할은 기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킷과 터틀넥, 팬츠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부츠와 꽃 브로치는 이알엘 빈티지 아카이브(ERL Vintage Archive), 선글라스는 알렘(Ahlem).
재킷과 팬츠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셔츠와 모자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베스트와 벨트의 버클, 장갑은 이알엘 빈티지 아카이브(ERL Vintage Archive).

당신처럼 성공한 사람이 끊임없이 겸손과 감사에 대해 말하고 늘 고개 숙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헛소리 말고 꺼지라고 말한다.

돈이 저렇게 많은데 그게 뭐 어렵겠냐고 여긴다.

하지만 난 정반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한때 그런 적도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맞나? 정반대로 행동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최악이었다. 정말 최악이었고 부끄럽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돌아보면, 100만 곡을 판매한 게 아니라 그저 한 곡을 만들었는데 100만 명이 좋아해준 거다. 100명이 그 곡을 홍보했고 여러 조건에서 타이밍이 좋았을 뿐이다. 성공에는 정말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나는 그중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당신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일지 몰라도, 많은 사람이 당신의 화려하던 시절을 좋아한다. 재능도 있고 혁신적이었으니까. 그리고 LV 시대에 들어 그 화려함을 되살리는 동시에 겸손과 감사의 자세도 지키고 있다. 어떻게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을까?

침묵하는 거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게 차이점이다.

‘침묵’이라고 답한 건 알고 있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해주기 바란다.

침묵은 훈련이다. 작업한 결과물로 자신을 말하는 것은 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놓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걸 놓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인 양 행동하며 여기저기 떠들어대고,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진짜 사실을 밝혀낼 누군가가 나타나 “그렇지 않아, 여기 증거가 있어”라고 밝힐 때까지 그럴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면서 침묵해야 한다. 이걸 내게 가르쳐준 건 니고(Nigo)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푸샤 티의 노래처럼 “아는 사람은 아니까(If You Know You Know)”.

2년 전 온라인 경매 플랫폼 ‘주피터(Joopiter)’를 론칭했다. 그리고 론칭 당시 아이코닉한 커스텀 주얼리를 전부 경매에 내놨다. 당신이 ‘거만한 시대’에 사 모은 물건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나?

나도 몰랐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 얼마나 자신을 짓누르는지 깨닫지 못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없애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이제 내 등 근육도 힘들이지 않고 잘 움직인다.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진다. 그런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물건에 일어나는 일은 그냥 그 물건에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맞다. 그리고 드레이크가 꽤 많이 낙찰받았다.

그렇다.

그가 낙찰자라는 걸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알고 나서 아쉽거나 걱정되진 않았나?

전혀. 그의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가 진심으로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는 음악사의 팬이고 나 또한 그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 물건들은 음악사에 속하는 유물이다.

그러면 그가 샀다는 걸 알고도 괜찮았다는 건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가 사들인 주얼리를 녹여 “내 집에서 그의 유산을 치워”라는 내용의 랩을 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건가?

전혀.

당신은 짐스럽게 느껴져서 다 처분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걸 가져간 다음에 그것이 갖는 의미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의 큰 부분은 실제로 보내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나 추억과도 분리된다. 말 그대로 놓아주는 것. 그게 목적이었다. 사람들이 뭔가를 팔면서 “내게 소중한 거니까 잘 돌봐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에요, 더 이상 내게 소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쪽이다. 그게 바로 내가 내려놓는 이유니까.

이제 루이 비통에 대해 얘기해보자. 지금까지 제일 좋았던 날은 언제인가?

매일.

에잇,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잘 안다. 하지만···

하지만 특별한 날이 있지 않나. 다음에는 ‘가장 힘들었던 날’에 대해 질문하려고 했다. 오디언스에게 LV 시대 당신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힘들어봤자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나? 난 바닥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정말 끔찍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인 날에 대해 물어보는 건 아니다.

저기 보이나?(사무실 창 쪽으로 가서 센강을 바라봤다) 저 아래 말이다.

센강이 보인다. 오, 이 건물과 강 사이에 텐트촌도 보인다.

그렇다. 우리와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이 왜 저기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난 개천에서 난 용이다. 어릴 땐 공영주택에서 살았다. 공영주택에 사는 것을 길거리에서 사는 노숙자와 비교할 순 없지만, 어떻게 살고 무엇을 가졌는지는 상대적이다. 난 저기 머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트렁크에 대한 내 아이디어도 그저 공상에 그칠 수 있었지만, 그게 내 일이 된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음 루이 비통 컬렉션을 상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고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맞다. 대부분 갖지 못할 거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매일이 멋지지 않을 수 있겠나? 당연히 매일 좋을 순 없겠지만, 늘 재정비하고 감사하는 마음에 집중하면 가능하다. 자신이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그러면 매일이 즐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20개월 동안 감사의 마음을 잃고 집중력이 흐트러진 때는 언제인가? 좌절하거나 방해받은 것처럼 느낀 순간은?

이건 거대한 시스템이고 때로는 원하는 만큼 빨리 진행시키고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저항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귀 기울여주고, 왜 저항이라고 여기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일 수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시스템에 속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 시스템은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우리는 그렇게 한다.

독립적으로 작업하다가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은 어떤 경험인가?

이곳은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하우스다. 기업에서 일하는 개념이 아니다.

왜 그렇지 않나?

내게는 상사가 없다. 루이 비통은 하우스고 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도 피에트로 베카리(Pietro Beccari, 루이 비통 CEO)를 좋아하고 그가 나를 임명했지만, 그는 내 상사가 아니다.

그러면 베르나르 아르노도 당신의 상사가 아닌가?

아니다. 난 하우스에 있고 이곳은 말 그대로 하우스로서 운영된다. 물론 아르노의 하우스다. 그리고 나에 대한 대우도 매우 좋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 “이걸 해야 해”라고 내게 명령하지 않는다. 일종의 입주 작가 같은 방식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자신의 부하 직원이라고 여겼다면 이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다. 축복받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피에트로 베카리와는 어떤 대화를 하나? 만나면 뭘 하는지 궁금하다.

그가 이 분야 최고의 경영진인 이유가 있다. 그는 훌륭한 전략가이자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지지자다. 그리고 강단 있다. 강단 있는 사람은 나란히 설 수도 있고 뒤에서 지지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척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꽤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그중 하나는 효율성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하려면 이러이러한 게 필요해요”라고 말하면 그걸 실현해준다.

베르나르 아르노와의 업무 관계는 어떤가?

함께 있거나 만날 때, 혹은 같이 식사할 때 사업 현황에 대한 철학을 공유한다. 문화에 대해서도 대화한다. 그는 문화에 매우 박식하다. 그런 위치에 오르려면 문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정말 잘 알고 있다.

맞다. 스프레드시트만 들여다봐서는 LVMH 같은 기업을 세울 수 없다.

그는 스프레드시트도 본다. 그의 시선은 3D다. 하나는 스프레드시트를 보고 다른 하나는 문화를 관찰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융합해 세상에 일어나고 일어날 일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예지적인 대화도 나눈다.

무슨 뜻인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가 사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 측면에 대해 내게 깊이 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니 LVMH 그룹 내에서 흥미로운 일들을 곧 보게 될 거다. (착용한 골드 네크리스를 보여주며) 이 네크리스는 티파니와 협업한 거다.

루이 비통에 전속돼 있지만 길 건너 다른 하우스에도 갈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 “뭘 하고 싶어? 여기에 관여하고 싶어? 혹은 저기에?” 그러면 우리는 진행한다.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자선사업도 있다. 그들에게는 자선 활동이지만 내게는 십일조다. 사회에 환원하는 거다.

재킷과 팬츠, 선글라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티셔츠와 벨트는 이알엘(ERL), 목걸이는 티파니(Tiffany&Co.).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파리에서 보내지만 거의 2년 가까이 이사하지 않은 채 지낸다. 당신은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했다. 뭘 배우나?

프랑스어를 조금씩 배운다. 그리고 여기서 다리 너머를 바라보며,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자극하는지 본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적으로 행동하는지 말이다. 잉크 농도 때문에 빛에 따라 지문의 무지개색이 다르게 보이지 않나. 우리를 서로 겨루게 만드는 외국 세력과 다른 나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떨어져서 보기 때문인가?

그렇다. 보기 힘들지만 그 일부가 되고 싶진 않다. 속하게 되면 어느 한쪽을 편드는 그들처럼 될 테니까. 그리고 그 중간에는 그들의 편견을 키우려는 음침한 욕망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래서 당신이 한쪽을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 뭐든 한다. 선택하지 않으면 적이 된다. 그리고 한쪽을 선택하면 그쪽에 속한 모두가 당신 편이고 다른 편에 속한 이들은 전부 당신을 증오하게 된다. “성조기에 있는 별이 뭐라고 생각해요? 설마 미국의 주가 전부 동일하다고 보는 건 아니겠죠?”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 그저 파란 사각형이 아니다.

하와이가 아이오와와 다르고, 아이오와가 일리노이와 다르고, 뉴멕시코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와 달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차이가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나? 미국의 첫 상품이 흑인이라는 원죄 개념은 잠시 제쳐두자. 자유와 용기의 고향이며 전 세계, 주로 유럽 국가에서 건너와 가게를 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는 개념이 어떻게 생겼나?

그게 미국이니까.

우리는 지금 그 개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요즘엔 그런 걸 보기가 정말 어렵다. 당신이 전부 동의할 거라고 여기진 않지만,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당신도 다른 사람과 다르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점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나는 고향에 가면 반이민주의에 대한 대화를 듣고 사람들의 관점이 얼마나 흐려졌는지 깨닫곤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병을 옮기고, 성범죄를 저지르고, 살인하고, 마약을 전파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있어.” 그게 바로 우리가 미 원주민에게 저지른 일이다. 그들이 여기에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그렇기에 어떤 것에 대해 한쪽 편을 택하라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나는 “미안하지만 난 어떤 편에도 서지 않아요. 내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주님이 모두를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누구를 증오할 수 있겠나?

난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 검(Sword)이라는 단어가 있다. 첫 알파벳 S를 뒤로 보내면 말(Words)이 된다. 난 말을 선택한다. 희생자가 발생하길 원치 않고 사람들이 차이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난 셀러브리티니까 내 생각에 대해 묻지 마세요. 난 아무 권력이 없어요, 그러니 묻지 마세요”라고 답하는 거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한 직후 <할리우드 리포터>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 기사 제목은 당신이 테일러를 디스했다는 거였다.

그게 그들이 하는 일이다.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 난 테일러를 좋아한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 인터뷰에서 당신은 테일러의 이름을 언급한 적도 없다.

전혀. 사실 2023년에 ‘1989’ 테일러 티셔츠를 온라인으로 사서 청바지와 함께 입고 다녔다. 난 테일러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건 우파들이 하는 짓이다. 며칠 전에 가장 공감되는 말을 들었는데, 우파(Right Wing)든 좌파(Left Wing)든 다 똑같은 새라는 말이었다.

이분법을 거부한다면, 당신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렇게 물어봐줘서 고맙다. 당신이 선택항을 제공했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속할 필요는 없다.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렇다, 답하지 않겠다. 옳은 쪽에 자리를 예약하겠다. 당연히 나도 정치적 성향은 있지만, 당신에게 꼭 밝힐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왜 내 생각을 당신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 내 선택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 내가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내가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투사가 아니라면?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클리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그게 우리가 루이 비통에서 한 일 아닐까?

클리셰에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

맞다. 하지만 내 클리셰는 내 담론을 당신과 공유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침묵할 권리를 주장하겠다. 나는 행동이 중요한 사람이다. 기부하고 봉사하지만, 당신에게 보여줄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어떻게 간주하든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굳이 밝히지 않는 거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동일하게 섬기는 유일신을 믿는다. 또한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구제설 신봉자라서, 불교 신자인 형제자매도 다 좋다. 나는 하늘 아래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고 여긴다. 나의 힌두교 형제자매를 위한 자리도 있을 거다. 현재에 존재하고, 과거에 존재했으며, 미래에 존재할 모든 것에 대한 다른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그렇게 본다. 당신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난 댓글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하고 싶으면 당신은 그렇게 하고, 계속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일어나보면 소파 솜이나 파먹는 데 중독돼 있을 거다. 나는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방식을 존중하며 살라’고 설교할 수 없다. 내 말은, 둘 다 할 수는 없다는 거다. 정말로 타인의 방식을 존중하기 싫거나 그러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그리고 타인의 방식을 존중하기 싫은 사람이야말로 진짜 타인의 방식을 존중해야 하는 사람이다.

불편하더라도?

당연하다. 다른 누구의 의견이 아닌 내 판단으로, 나는 자격이 주어진 공무원 같다. 백악관에 누가 있든 우리는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더라도, 그게 바로 미국인이 된다는 의미 아닐까? ‘자기편’을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편’이 있어야 한다. 내가 버지니아 주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권력자와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

루이 비통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카우보이 컬렉션에 처음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아버지가 서부극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해가 안 가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그런 말 하면 안 돼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력적이거나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아버지는 우리와는 다른 시대를 살았다. 등에 총을 맞은 적도 있고 ‘검둥이’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그런 경험이 아직 몸에 배어 있는 거다. 하지만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발언을 가끔 하는 게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베이비 붐 세대라서 말이다.

베이비 부머력 폭발하는군.

그렇다, 베이비 부머들은 폭발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난 서부극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알아요? 그들은 많은 기여를 한 흑인과 아시아인 등의 수고를 무시했고 원주민을 끔찍하게 대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걸 좋아할 수 있죠?”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실제로도 흑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배우를 좋아하는데, 그들이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연기가 마음에 든다고 둘러댄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칼 라거펠트가 선보인 샤넬의 ‘파리-댈러스’ 컬렉션(2013년 댈러스에서 선보인 2014 공방 컬렉션)이다. 내가 존경하는 두 인물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였고 컬렉션의 이름도 ‘파리-버지니아’로 지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이 열리기 몇 주 전, 또 하나의 대규모 루이 비통 쇼인 유네스코 쇼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카우보이, 그다음엔 ‘위 아 더 월드’의 패션 버전이었다.

와, 멋진 표현이다.

솔직히 그 쇼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모델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의상도, 모델 피부색도 상당히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의상과 모델 피부색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저건 아닌 것 같은데. 피부색에 따라 모델 순서를 정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쇼를 보는 내내 ‘저렇게 해도 되는 걸까? 안 된다면 그 이유는 뭐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러면 왜 안 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미국 남부 출신 백인 남자로서, 인종차별에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게 핵심이었다. 인간적인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인종으로 유대감을 갖게 하면서 인종에 대해 다루지는 않는 방식이었다. 자신이 속한 피부색을 인지하고 이어지는 경험이다. 처음에 의상과 피부색의 톤온톤을 보게 되면···

인종을 떠올리고 온몸이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보면 전혀 인종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 각기 다른 피부색에 속한 것처럼, 당신도 특정 피부색에 속해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었다. 모두에게 환영받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게 올림픽의 서막에 걸맞다고 여겼다. 올림픽이 전하는 정신은 무엇인가?

‘위 아 더 월드’다.

인류애일 뿐이다.

루이 비통에서 맡은 역할이 당신의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에 영향을 미쳤나?

그렇긴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다.

음악에 쏟을 시간이 줄었을 거라는 추측은 타당한가?

더 많아졌다.

어떻게 가능한가?

루이 비통의 역할은 나를 더 많은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 있는 음악 작업실에도 가보지 않았나.

그렇다.

그 외에 두 공간이 더 있다. 예전에는 어딜 가든 음악을 갖고 다녔다. 이제 음악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이다.

마이애미에서 힙합 뮤지션 퓨처(Future), 메트로 부민(Metro Boomin)과 촬영했다.

퓨처에게 내가 <Mixtape Pluto>에 완전히 꽂혔다고 전해줄 수 있나? 와우, ‘Ski’ ‘Plutoski’ ‘Aye Say Gang’은 정말 대단하다.

데님 셔츠는 랭글러(Wrangler), 데님 팬츠는 리바이스 아카이브(Levi’s Archives), 부츠는 이알엘 빈티지 아카이브(ERL Vintage Archive), 모자와 벨트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목걸이와 팔찌는 티파니(Tiffany&Co.).
재킷과 셔츠, 가방 장식은 이알엘(ERL), 탱크 톱과 벨트, 선글라스, 가방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팬츠는 파운드(Found), 목걸이와 팔찌는 티파니(Tiffany&Co.).

나는 ‘Brazzier’를 좋아한다. 하지만 퓨처가 마흔의 나이에 6개월 동안 스트리트 음악으로 세 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랩 음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당신은 “지미 아이오빈(Jimmy Iovine)이 마흔 넘어서 히트곡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 있다. 힙합 음악에서 나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힙합 신에서 우아하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언급한 첫 번째 인물은 푸샤(Pusha)다. 그는 그 주제에 대해 몇 년 동안 이야기해왔다. 제이 지도 그렇다.

반면 안드레 3000(André 3000)은 힙합 신에서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수년 동안 말했다.

그렇다. 그리고 그는 힙합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꼽힌다. 사람들은 섣불리 판단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를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그는 다시 돌아올 거다. 누구나 거부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음악을 만들 때 젊은 세대가 듣는 음악을 따라가려고 한 적 있나? 유행을 좇으려고 한 적은?

그런 적은 없다. 난 유행을 좇지 않고 과거에 내가 한 것을 반복하지도 않는다. 유행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거였고 난 싫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레고 애니메이션 전기 영화 <피스 바이 피스>와 관련해) 6~7년 전에 고집 센 내 에이전트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계속 물어봤다. 나는 “싫어요, 누가 하든 상관없어요. 난 안 할 거예요.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난 다른 사람이 전부 하는 건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않나. 모든 사람이 차를 끌고 나와 도로가 막힌다면 난 비행기를 탈 거다.

다른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참석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왜 다른 쇼에 참석하고 거기서 뭘 배우나?

꼼데가르송 쇼에는 늘 참석한다. 난 꼼데가르송 세대니까. 레이 가와쿠보는 정말 남다른 존재다. 최근에는 사카이 쇼에도 참석했다. 아베 치토세도 좋아한다. 그리고 조나단 앤더슨의 엄청난 팬이다.

앤더슨의 작업에서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

조나단 앤더슨은, 나는 그가 저평가됐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사람들도 다 아니까.

그렇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조나단은 직접적으로 핵심을 찌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 반대편 끝에 레이 가와쿠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하지만 디자인은 복잡하다. 그리고 킴 존스와도 친하다. 내가 샤넬을 떠났을 때 그가 내게 처음으로 기회를 줬다.

어떻게 기회를 줬나? “나랑 같이 뭐든 해보자”고 제안했나?

뭐든 해보자고 했다. 완전한 자율권을 줬고, 난 그걸 절대 잊지 않을 거다. 결국 성사되진 않았지만 그 덕에 루이 비통에 오게 됐으니까.

당신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에게 루이 비통의 기회를 줬고 올해 협업을 했다. 함께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하려고 전화한 순간이다. 그는 이제 30대가 됐고 다시 어린아이처럼 느낄 기회는 거의 없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정말 많은 걸 이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는 성장통을 겪으며 말이다. 그래서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 “잠깐만, 누구요, 나요? 정말요? 와우!” 그는 정말 좋아했다. 내가 한 일은 곁에서 그가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둔 것뿐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와 ‘패션 대화’를 나눴는데, 상대방이 이렇게 말했다. “난 퍼렐이 곧 루이 비통을 떠날 거라고 봐. 이제 다 해봤다고 여길 거야. 리스트에 체크 표시를 하고, 다음 목표로 넘어가겠지.”

와우,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진 않았고?

그건 잘 모르겠다.

어쩌면 술 한잔 걸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잘 알겠지만, 꽤 고차원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당신 생각은 어떤가? 다음으로 넘어갈 준비가 됐나?

아직 다 해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고 있고, 아직 다 해보지 않은 기분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 시스템을 재구성 중이다. 난 시스템과 전략, 구조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세 가지가 활발히 돌아가면 단순함에 도달할 수 있다. 난 조용히 일하는 걸 좋아한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하지 않다가 그냥 짠 하고 보여주는 거다. (VK)

티셔츠와 점프수트, 부츠는 이알엘 빈티지 아카이브(ERL Vintage Archive), 선글라스는 알렘(Ahlem), 목걸이와 팔찌는 티파니(Tiffany&Co.).
    포토그래퍼
    Eli Russell Linnetz
    Will Welch
    스타일리스트
    Matthew Henson, Eli Russell Linnetz
    헤어
    Johnny Cake Castellanos
    메이크업
    Irene Grosleib
    테일러
    Yelena Travkina
    세트
    James Rene
    프로덕션
    Tightrope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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