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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글로벌 히트작이 탄생했다 ‘중증외상센터’

2025.01.31

올해 첫 글로벌 히트작이 탄생했다 ‘중증외상센터’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첫 장면. 우리의 주인공 백강혁(주지훈)이 오토바이를 타고 전장을 가로지른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포화를 피한다. 아니, 정확히는 포화가 그를 피한다.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톰 크루즈)처럼 곡예 운전을 하던 그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쓰러진다. 그의 가방에서 혈액 팩이 쏟아진다. 잠깐, 그러니까 이 남자는 의사인데, 그것도 제목으로 미루어 중증 외상을 치료하는 의사인데, 헬멧도 없이 오토바이를 몬다고? 이건 시청자에게 보내는 완벽한 선전포고, 아니 예고다. <중증외상센터>는 정교한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코믹 판타지 영웅물이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이 작품의 원작은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 골든 아워>다. 유튜브 ‘닥터프렌즈’ 채널로 유명한 이비인후과 전문의 이낙준, 필명 ‘한산이가’ 작가가 쓴 것이다. 덕분에 수술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작품이 성실하게 느껴진다. 한국에 하나뿐인 중증 외상 전문의가 과로로 쓰러지자 주인공이 후임으로 투입되고, 병원은 중증외상센터에 할당된 국가 지원금을 빼돌리면서 주인공을 적자 제조기 취급하고, 닥터헬기와 에어 앰뷸런스 운용 때문에 마찰이 생기고, 주인공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적 이슈를 활용하는 모습도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다. 스타 의사인 이국종 교수 덕에 널리 알려진 현실이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이런 리얼리티에 영웅 판타지를 과감하게 뒤섞는다.

원작에서 백강혁은 ‘초감각’을 가진 능력자다. 드라마는 그의 초능력보다 ‘국제 평화 의사회’와 세계 최대 용병 집단 ‘블랙윙즈’에서의 야전 경험을 강조한다. 의료 환경이 낙후하고 긴급수술이 많고 소송은 어려운 지역을 전전하는 동안 백강혁은 한국 보건 체계 안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치를 쌓았다. 그렇게 초인이 된 백강혁은 어떤 문제건 척척 해결해낸다. 심장이건 간이건 뇌건 그것만 들여다보고 산 의사들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수술한다. 심지어 그는 중앙119구조단 조종사보다 헬기 운전도 잘한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백강혁은 성격도 특출하다. 위험 지역으로 출장 가면서 “주여, 저만 믿으소서”라고 기도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단 환자부터 살려놓고 비용이다 뭐다 시비 거는 사람들은 시원하게 들이받는다. 그의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인간미 덕분에 기피 부서인 중증외상센터에 하나둘 인력이 모인다.

백강혁 캐릭터를 두고 원작자는 유튜브 ‘닥터프렌즈’에서 “말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시스템에서는 그런 사람이라도 있어야 (중증 외상 분야가)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에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드라마가 히트하면서 그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시청자가 많아진 건 반갑다.

지금은 의료 파업의 여파로 의사 집단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2024년 방영 예정이던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tvN)은 국민 정서를 이유로 방송을 늦췄다. 의사들의 대응 방식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의대 정원 확대로 이슈가 매몰되면서 필수 의료 지원이나 수가 개편 등 더 근본적인 의제가 뒤로 밀려난 건 안타깝다. <중증외상센터>는 이 상황을 영리하게 돌파한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백강혁은 학벌이 달린다고 병원 내에서 괄시받는 존재고, 집안도 변변찮다. 그의 ‘1호’ 제자 양재원(추영우)은 간호사 천장미(하영)를 하대하는 마취과 의사를 정색하고 나무란다. 이들은 계급주의에서 벗어난 존재고, 명문대 부속 종합병원 내의 아웃사이더 투사들이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자기 목숨을 위험에 내던지는 그들의 모습은 시청자를 감동시키고, 저런 의료인이 실존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겨준다. 이 감동을 바탕으로, 드라마는 열악한 응급 의료계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드라마가 시의적절한 또 다른 이유는 감동을 강요해 위선처럼 보이는 대신 짐짓 유희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웹툰의 DNA가 느껴지는 간결하고 빠른 장면 연출, 엉뚱한 유머, 과장된 표정 연기가 메시지보다 먼저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자주 소동극이 우당탕 펼쳐지고 고성과 호들갑이 난무하지만 긴장과 유머의 완급이 절묘해서 피곤하지 않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다. 주지훈은 지난해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디즈니+ 오리지널 <지배종>과 <조명가게>, 케이블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tvN)를 연달아 내놓았다. 냉정한 말이지만, 캐스팅 담당자들이 그에게 쏟는 애정은 대중의 애정과 비례하지 않았다. 다행히 <중증외상센터>가 그의 커리어에 좋은 전환점이 될 듯하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주지훈은 심각한 누아르나 멜로에서는 지나치게 미지근해 보일 때가 있다. 그에게 백강혁은 맞춤옷 같다. 백강혁은 너스레를 떨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핵심을 찌르는 말을 내뱉고, 신중해 보이다가 금세 껄렁대기도 한다. 대인 관계 이해도와 공감 능력이 모두 뛰어나지만 주변 상황과 감정 사이에 늘 이성이 작동할 공간만큼 거리를 둔다. 그것이 주지훈 특유의 건조함과 잘 맞는다.

그와 각을 세우다가 지지자로 돌아서는 항문외과 과장 역 윤경호는 이 드라마의 주요 웃음 포인트다. ‘성장캐’ 양재원 역 추영우, 노련한 간호사 천장미 역의 하영도 재치 있는 연기로 드라마에 활력을 더한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중증외상센터>는 1월 24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그러곤 3일 만에 글로벌 TV 쇼(비영어) 부문 주간 시청 수 3위를 달성했다. 주요 캐릭터와 서사 구조가 탄탄하게 구축되었고, 소재가 무궁무진하고, 첫 시즌 반응이 좋은 만큼 추가 시즌이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메스를 든 히어로와 미리 친해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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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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