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이라면!
<아수라처럼>은 지난 1월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괴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일본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작품이라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들에게는 쏠쏠한 즐거움이 되어준 작품이다. 그의 영화에서 본 적 있는 듯한 인물과 관계, 그리고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 미야자와 리에 등의 유명 배우가 보여주는 앙상블 덕분이었다. 그런데 <아수라처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처음부터 구상해서 만든 작품이 아니다. 원작이 따로 있다. 무려 1979년 드라마다.
<아수라처럼>은 가족 이야기다. 네 자매가 있다. 그들의 부모도 있다. 어느 날 자매가 모여 가족 문제를 의논한다. 주제는 ‘아버지의 불륜’이다. 셋째 딸이 흥신소에까지 의뢰해서 알아낸 사실은 이렇다. 그들의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젊은 여자와 따로 살림을 차렸고 그들 사이에는 아들도 있었다. 그런데 셋째의 고발에도 나머지 딸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저마다 아버지의 불륜이 놀랍지 않거나,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어서다. 맏언니 츠나코(미야자와 리에)는 남편을 저세상에 떠나보낸 후 다른 유부남과 만나는 중이다. 둘째 언니 마키코(오노 마치코)는 남편과 두 아이를 건사하는 평범한 주부인데, 남편의 불륜을 의심 중이다. 막내 사키코(히로세 스즈)는 부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무명의 복서인데, 이 남자를 하루빨리 챔피언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연애 경험이 전무하며 결벽증까지 갖고 있는 셋째 딸 타키코(아오이 유우)에게 아버지의 불륜은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녀는 자기만큼 분노하지 않는 자매들이 야속하다.
현재 건강검진을 걱정하는 나이의 시청자라면 <아수라처럼>의 구성이 반갑다 못해 진부하게 느껴질 것이다. 여러 형제와 그들의 부모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꽤 자주 많이 보았을 테니 말이다. 형제자매 각각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한편, 부모가 사는 집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구성의 드라마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KBS 2TV 주말 드라마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그처럼 안 봐도 알 것 같은 이 작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팬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의 ‘덕질’을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979년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면서 원작 형태를 거의 그대로 따랐다. 그가 1979년 작 <아수라처럼>의 극본을 쓴 무코다 구니코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를 보면 그의 팬심을 엿볼 수 있다. “외국의 관객들은 저에게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 등 거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질문합니다. 이는 물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정작 저는 맨 먼저 무코다 구니코의 이름을 들게 됩니다.” 또 그는 특히 “일상의 디테일을 주의 깊게 살피는 눈”을 무코다 구니코를 비롯한 여러 TV 드라마 작가에게 배웠다고 고백했다. 현재 일본 영화를 세계에 가장 크게 알리고 있는 감독이 역사적인 영화 거장이 아니라 TV 드라마 작가를 예술의 원형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아수라처럼>을 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들은 그의 영화에서 보았던 것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원래 동명의 만화 원작이 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이복 자매를 가족으로 품은 자매들. 언제나 자애로워 보였지만 마음 한구석에 칼을 품고 있던 <걸어도 걸어도>의 어머니. 그 외에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 가족> 등의 작품에서 경험한 생활 감각까지. 그의 영화에서 보았던 각종 요리 장면과 식사 장면도 함께 연상될 것이다. 실제 무코다 구니코 또한 식사 장면을 인상적으로 만든 작가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수라처럼>을 보면서 과거 한국의 걸작 드라마를 그 시대 그대로 리메이크하는 기획을 바라게 됐다. 기억에 남아 있는 여러 작품 가운데 상상해본 작품은 1990년에 방영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다. <궁>의 황인뢰 감독이 연출했고 주찬옥 작가가 집필한 작품인데, 엄마와 두 딸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엄마를 연기한 배우는 김혜자, 딸을 연기한 배우는 김희애와 하희라다. 지금 리메이크를 한다면 김희애 배우가 엄마를 연기해도 좋을 듯싶다. <아수라처럼>은 그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이고 TV 드라마의 팬인 사람들에게 여러 즐거움을 준 작품이다. 여기에 더해 배우 아오이 유우의 팬이라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아수라처럼>에서 아오이 유우는 그녀만의 표정을 많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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