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꾸뛰리에’를 꿈꾸는 디자이너, 미스 소희
한국인 꾸뛰리에. 불가능할 것 같던 두 단어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한국에서 나고,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뒤, 파리에서 꾸뛰르 쇼를 선보이는 박소희, 미스 소희다. 2020년 브랜드 미스 소희를 론칭한 그녀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서양의 미를 보기 좋게 융합하며 주목받는 꾸뛰리에로 거듭났다. 2025 봄 꾸뛰르 컬렉션 직후, 백스테이지에서 미스 소희를 만났다. 모델들은 옷을 갈아입고, 바로 옆방에서는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지만,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궁극의 꾸뛰리에’로 거듭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금 전 2025 봄 꾸뛰르 쇼가 끝났다. 기분이 어떤가?
쇼는 언제나 힘들다. 팀 규모가 크고, 드레스 한 벌을 만드는 데 긴 시간이 소요돼 더 그렇다. 신경 쓸 것도 많다. 쇼가 끝나면 해방감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그래도 ‘쇼를 마쳤다’는 사실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몇 달의 노력을 보상받는다고 할까? 특히 피날레가 가장 벅차다.
늘 걸어 나와 게스트에게 손을 흔들지 않나?
태생적으로 수줍은 사람이라, 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게 쉽지 않다.
<보그 코리아>와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2022년 가을, 런던에서 공부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특집 화보 겸 인터뷰가 첫 번째. 2023년 12월, 단문 단답 형식의 인터뷰가 두 번째. 그간 어떻게 지냈나? 1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팀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1년 만에 인원수가 두 배가 되어, 이제는 37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고객도 2배 가까이 늘었다. 무척 바쁜 1년이었다.
2025 봄 꾸뛰르 쇼는 미스 소희가 공식 게스트 하우스 자격으로 참가하는 첫 오뜨 꾸뛰르 위크다.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나?
물론이다. 공식 게스트 하우스가 된다는 것은 프랑스패션연합(FHCM, Fédération de la Haute Couture et de la Mode)의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FHCM은 꾸뛰르적인 방식으로 옷을 제작하는지부터 아틀리에 구성원과 기술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셀린느의 CEO이자 FHCM 멤버인 세브린 메를(Séverine Merle)이 감사하게도 미스 소희를 좋게 평가해, 그녀의 추천 덕분에 게스트 멤버가 될 수 있었다. 한국 출신으로 런던에서 패션을 전공한 뒤, 파리에서 쇼를 선보인다는 배경도 흥미로운 포인트로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컬렉션에 대해 설명한다면.
어떤 룩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모델 코코 로샤가 입고 나온 1번 룩! 한눈에 봐도 ‘미스 소희’라는 걸 알아볼 수 있으면서, 평소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미학이 느껴졌다. 캣우먼이 연상되어서인지, 조금은 에로틱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재밌는 평이다. 조각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리서치 단계에서 늘 박물관을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유독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조각상에 주목했다. ‘인체를 조각한다’는 생각으로 컬렉션 룩을 디자인했다. 색다른 소재를 활용해 다채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목하게 된 소재가 가죽이다.
쇼 노트에서도 ‘Sculpting with Leather(가죽을 조각하다)’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독특한 공정을 거쳐 더 부드러운 가죽을 만들어냈다. 가죽 소재 코르셋 드레스가 등장한 첫 번째 룩이 좋은 예다. 나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에 끌리는 디자이너다. 그래서 올곧은 직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미스 소희의 모든 디자인은 곡선이다. 패턴을 자를 때도 직선이 아닌 곡선만 활용할 정도다. 이번 쇼를 준비하며 딱딱한 가죽 소재로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할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했는데, 좋은 피드백을 들어 다행이다.(웃음)
첫 번째 룩을 보자마자 왜 ‘가죽을 조각하다’라고 표현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레퍼런스도 눈에 들어왔다. 첩지부터 모델들의 어깨에 그려진 그림, 헤어스타일까지. 오뜨 꾸뛰르라는 지극히 서구적인 아이디어에 한국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런던에서 공부했건, 파리에서 쇼를 선보이건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자라온 한국의 환경과 내가 공부한 서양의 복식을 결합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다른 꾸뛰르 하우스와 비슷한 옷이 아니라, 미스 소희만의 꾸뛰르를 창조하고 싶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원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한산 모시라는 원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런 원단으로 꾸뛰르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 미스 소희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쇼에는 어떤 원단이 사용됐나?
나전칠기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자개 작업을 선보였다. 아, 과거 왕실의 여인들이 하던 대수머리를 닮은 검은 헤드피스를 제작할 때도 모시 원단을 활용했다.
미스 소희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데는 셀럽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블랙핑크 멤버들, 아리아나 그란데, 카디 비 등 여러 셀럽이 미스 소희의 옷을 입었으니까. ‘내가 만든 옷을 꼭 입어줬으면’ 하는 셀럽이 있나?
한국에 아직 왕족이 있었다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웃음) 지금 고객 대부분은 아랍 왕족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은 미스 소희의 옷을 ‘새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한복 디자이너가 아니라, 단지 한국적인 요소를 재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재해석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15번 룩의 흰 로브를 보며 ‘한복에서 영감을 받았겠구나’ 직감했다. 한국적인 옷을 서양인의 시선으로 봐도 이질적이지 않은 ‘드레스’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궁금하다.
은근하게 한국적인 옷을 선보이고 싶다고 여긴다. 한국인만 알아볼 수 있는 레퍼런스를 끼워 넣고 싶다고 할까? 쇼를 보며 첩지를 떠올린 것처럼 말이다. 진주로 만든 헤드피스도 한국인의 눈에는 첩지지만, 외국인의 시선에는 단지 참신한 액세서리일 뿐이다. 뭐든 ‘은근하게’ 하는 것이 미스 소희만의 재해석이다.
꾸뛰르라는 게 애초에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 아닌가. 이번 쇼를 준비하며 어떤 상상을 했나?
준비하는 동안 블랙에 매력을 느껴, 다양한 모습의 블랙을 상상했다. 코르셋이나 한복 속치마 같은 속옷에 대해서도 많은 상상을 했다.
브랜드 론칭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미스 소희의 ‘넥스트 스텝’은?
영국에서 가장 큰 꾸뛰르 하우스가 되고 싶다.
콕 집어 영국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흥미롭다. 왜 하필 영국인가?
영국은 내게 집 같은 곳이다. 꾸뛰르의 본고장 파리와 달리, 영국에는 미스 소희를 제외하고 꾸뛰르 하우스가 몇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언젠가는 미스 소희가 샤넬 같은 꾸뛰르 하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을 꿈꾼다.
조금 전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질문이 또 생겼다. 꾸뛰르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지금은 꾸뛰르가 아주 재밌다. 개인적으로는 꾸뛰르의 미래 역시 밝다고 여긴다. 지금 고객은 더 특별한 경험을 찾고 있다. 그리고 꾸뛰르보다 특별한 경험은 없다. 디자이너와 직접 만나 커스텀 피스를 만들어나간다는 과정 자체가 정말 소중한 경험 아닌가. 그리고 패스트 패션과 완벽하게 대척점에 서 있다. 꾸뛰르 피스는 대대손손 물려줄 수도 있다. 미스 소희의 아틀리에에는 30년 전에도 꾸뛰르 피스를 제작하던 장인들이 있다. 그때도 장인들 사이에 “꾸뛰르는 곧 사양산업이 되지 않을까?”라는 말이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꾸뛰리에가 끊임없이 등장하지 않았나. 꾸뛰르의 수요는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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