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결과 층, 아놀드 뉴먼의 초상 사진
아놀드 뉴먼(Arnold Newman)이라는 사진작가를 아시나요? 20세기 초반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사진 예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몇몇 불세출의 사진작가가 탄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놀드 뉴먼은 유명인들의 초상 사진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파블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을 비롯해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존 F. 케네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예술가, 작곡가, 배우, 그리고 정치인의 상징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죠. 물론 실제 그가 뷰파인더에 담은 세기의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면면은 훨씬 더 다양합니다. 오는 3월 23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열리는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에서는 시대를 풍미한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포착된 후 지금껏 우리의 뇌리 속에, 그리고 역사에 각인된 인물들의 결정적 순간을 대거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3년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관(Art Gallery of Ontario, AGO)에서 열린 <Building Icons: Arnold Newman’s Magazine World, 1938-2000>의 해외 순회전입니다. 이를 뮤지엄한미에서 재구성했다고 하는데요. 생각해보니 아놀드 뉴먼의 작업이 한국에는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군요. 1938년부터 2000년까지 촬영한 200여 점의 AGO 소장품과 아카이브는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생생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게다가 이번 전시는 뉴먼의 작업 세계를 초기 실험작, 예술가들의 초상 사진, 잡지에서 의뢰받은 작품 등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매체의 변화를 관통해 시대를 담아낸 그만의 미감을 보여줍니다. 뉴먼은 특히 <라이프>, <하퍼스 바자>, <포천> 등 당시 주요 잡지들과 지속적으로 일했는데, 클래식한 사진과 그래픽디자인의 화학작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진과 디자인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면서도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솜씨는 저 같은 잡지 애호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죠.
아놀드 뉴먼의 사진은 특히 ‘환경적 초상 사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인물의 정체성과 업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구성과 구도가 특징이며, 이를 통해 예술가들의 삶을 한 장의 사진으로 읽어낼 수 있죠. 사진 전문지 <아메리칸 포토(American Photo)>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변 환경의 구성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했습니다. 피사체가 누구든 흥미로운 사진이어야 했습니다. 그저 유명인의 초상화를 찍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래서 뉴먼의 사진에는 인물에 대한 다채로운 단서가 켜켜이, 함축적으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선명한 대비, 기하학적 형태, 여백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잡지 지면과도 조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추상성과 구상성을 동시에 획득한 강렬한 작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디지털 사진에 익숙해진 요즘 관객들에게 현대 사진의 보편적 가치를 구축한 뉴먼의 작업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그중 대표적인 작업은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소장작이자 이번 전시의 포스터 이미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사진입니다. 음표를 연상시키는 그랜드피아노의 뚜껑과 그 앞에 앉은 스트라빈스키의 얼굴이 구조적, 건축적, 디자인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의 삶과 성격 등이 묘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이는 세상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가의 문제만큼이나 인화된 사진의 프레이밍도 작가의 시선을 반영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게다가 전시는 이 사진이 어떤 작업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꽤 많은 공간을 할애하는데요. 공연을 준비 중인 스트라빈스키의 일거수일투족을 생동감 넘치는 앵글로 포착한 사진은 한 권의 책으로도 출간된, 그 자체로 훌륭한 기록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 사진집을 중고로라도 구입하려고 아마존을 뒤지면서 오랜만에 설렜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아날로그 사진 미학의 힘을 다시 기억해냈기 때문입니다.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