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예술 작품! ‘슈타이들 북 컬처: 매직 온 페이퍼’展
현대미술가 로니 혼이 저자로 참여한 책 <Herðubreið at Home>을 침대 옆 협탁에 두고 종종 펼쳐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요. 이 책의 중심에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헤르뒤브레이드(Herðubreið) 화산, 그리고 평생 이 산을 그린 화가 스테판 V. 욘손(Stéfan V. Jónsson)이 있습니다. 스토르발(Stórval)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한 이 작가는 아이슬란드의 문화적, 지질학적 상징인 산을 색면 추상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더욱 인상적인 건 그렇게 그린 그의 그림을 수많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슬란드를 자신의 고향보다 더 사랑하는 로니 혼은 아이슬란드 가정에 걸린 헤르뒤브레이드산 그림만 모아 책을 만들었습니다. 평범한 가정 혹은 건물 벽에 걸린 산 그림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인생이기도, 꿈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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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오랜 판타지는 바로 아름다운 아트 북을 만들며 사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간직하는 것만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책 말이죠. 하지만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묻는다면,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슈타이들이 아닌 이상 힘들지 않을까 싶군요. 로니 혼의 이토록 속 깊은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바로 그 출판 장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 말입니다. 저의 ‘최애’ 책을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 <슈타이들 북 컬처: 매직 온 페이퍼>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아트 북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평생 책을 만들어온 슈타이들. 아마 책 애호가들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겁니다. 1968년, 17세부터 독학으로 습득한 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출판업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패션, 사진, 회화, 문학은 물론 상업 브랜드의 경계를 허물며 매해 400권의 아트 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매체와 종이에 대한 열정, 문화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예술 작품’임을 오늘도 스스로 증명하고 있지요. 슈타이들이 만들어내는 책은 특히 놀라운 품질을 자랑하는데요. 50년 넘는 시간 동안 책을 만들어온 그는 여전히 아이디어 회의부터 편집, 디자인, 인쇄,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히 살핀다고 합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주의와 장인 정신으로, 온 진심을 다해 책을 대하는 진정한 예술가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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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들의 존재는 12년 전인 2013년,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그의 존재는 당시 책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종이와 책의 물성은 그 자체만으로 다수의 젊은 관객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펜디, 돔 페리뇽 등 브랜드의 의뢰로 만든 팩토리 북, 그리고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버켄스탁의 멀티플(아트 북 오브제)인 ‘오래된 공장은 죽지 않는다’를 처음 소개하고 있고요. 슈타이들과 데이미언 허스트가 10여 년간 함께 작업한 멀티플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또 짐 다인, 다야니타 싱, 테세우스 찬 등의 흥미로운 작업과 책이 함께 연출하는 스페셜 아티스트 존은 책이 예술에 얼마나 큰 생동감을 불어넣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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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처음 슈타이들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책 만드는 일에 소명 의식을 갖고 평생 일해온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저는 잠시 잊고 있던 그 설렘을 다시금 경험했습니다. 12년은 새로운 관객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만나기에 매우 충분한 시간입니다. 더욱이 그 사이에 우리 일상 및 삶은 맹렬하게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를 존중하는 슈타이들의 철학은 변함없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예술가의 세계를 책에 담고, 이를 통해 책 자체를 예술로 만드는 것도 그렇고요. 그러나 다시 만난 슈타이들의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건 그가 자신의 일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슈타이들의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렇기에 그의 결과물은 여전히 동시대적입니다.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걸 넘어 아름다운 책이 사랑받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혁신가입니다. 전시는 2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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