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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이 나올까? ‘트리거’

2025.02.20

다음 시즌이 나올까? ‘트리거’

김혜수 주연의 <트리거>(디즈니+) 최종회가 19일 공개됐다. 이 작품을 빈지 와칭(Binge Watching, 몰아 보기)하는 데는 몇 가지 허들이 있다. 탐사 보도 팀 PD가 낙하산을 타고 사이비 종교 아지트에 잠입하는 초반 에피소드를 보면 이것이 진지한 사회 비판물인지 과장된 코믹 액션물인지 혼란스럽다. 실은 그 사이 어딘가를 노린 것이지만 무게감 있는 배우들의 의도된 가벼움이 단숨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더 글로리>(넷플릭스)에서 중후한 인상을 남긴 정성일이 1990년대생 아웃사이더 PD로 등장해 김혜수가 맡은 고참 PD와 티격대는 장면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일에 별 관심 없어 보이는 한도(정성일)가 몰래 사내 불륜을 고발한다거나, 막내 작가가 위험한 미제 사건을 묻어두기 위해 관련된 내용의 낙서를 하는 등 동기와 효용이 애매한 에피소드는 스릴보다 의문을 야기한다. 하지만 불균질한 톤이 정돈되고 캐릭터가 이야기에 안착된 중반부터 드라마는 힘 있게 뻗어나간다.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극 중 ‘트리거’는 대한민국 대표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다. 주인공 오소룡(김혜수)은 이 프로그램의 팀장이자 진행자이고, 온 국민이 다 아는 스타 PD다. 드라마는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불도저 같은 인물 오소룡을 통해 언론의 역할을 묻는다.

‘트리거’ 팀이 다루는 사건은 주로 권력과 시스템에 막혀 해결이 요원한, 그래서 여론이 최후의 수단인 것들이다. 오소룡의 클로징 멘트는 “약자의 손에 쥐어진 마지막 진실의 방아쇠 ‘트리거’”다. 다른 언론인들조차 “펜보다 강한 카메라의 힘을 빌리러 왔어요”라며 오소룡을 찾을 정도로, ‘트리거’는 이 세계에서 언론 정의를 사수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주인공이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 못지않게 온갖 방해 공작에 맞서 방송을 성사시키는 과정이 스릴과 쾌감을 안겨준다.

극 중 ‘트리거’ 팀의 메인 작가 홍나희(장혜진)는 작가가 더 주목받는 프로젝트를 해보겠다며 드라마로 옮긴다. 하지만 실제 사건을 다루며 보도 윤리를 오래 고민해온 그는 자극만 추구하는 드라마 PD와 마찰을 겪는다. 드라마를 성사시키기 위해 표현 수위를 타협한 후에는 회의감에 빠진다. 이런 고민이 드라마 <트리거>에서도 때때로 느껴진다. <트리거>는 사이비 종교, 동물 학대, 연쇄살인, 친족 성폭행, 스토킹 등 다양한 범죄 이야기로 극적 재미를 주지만 한편으로 생존 피해자의 회복력을 강조한다. “나는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피해자의 다짐이 시청자에게 위로를 안겨준다.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트리거’ 취재 팀은 피해자에게 연민을 표하는 한편으로 가해자에게 통쾌한 일갈을 남기곤 한다. 예컨대 아들이 살인을 했는데도 우등생이라고 싸고 도는 엄마를 향해 오소룡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연쇄살인범) 에드먼드 켐퍼가 마지막으로 살해한 게 자기 엄마였다.” 그들이 들이받는 상대는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 사건을 덮으려는 가해자 가족뿐 아니라 경찰, 검찰, 기업, 언론 등 다양하다. 이런 선명한 응징주의, 강강약약 정서가 대중의 법 감정과 맞아떨어지면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트리거>는 전문직 드라마의 매력도 잘 살렸다. 극 중 방송국 풍경과 취재 과정에는 실제 탐사 보도 프로그램 애청자들이 호기심을 느낄 만한 세부 요소가 많다. 방송국 사내 정치 묘사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오소룡은 워낙 영웅적 인물이지만 그의 팀에는 아직 가치관이 불분명한 동료들이 있다. 정성일이 연기한 한도 PD는 학벌이 좋아서 회사에서 밀어주는 인물이다. 그 자신은 시사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성공욕은 없고 반항심은 넘쳐서 위계에 휘둘리지 않는 그가 탐사 보도에는 제격이라는 사실을 알아본 선배들이 한도를 이끌어준다.

주종혁이 연기한 강기호 PD는 ‘트리거’에 애착이 강하지만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계약직 조연출에 오래 머물렀다. 자신의 컴플렉스 때문에 취재원에게 주눅이 들기도 하고, 정규직을 시켜줄 테니 인터뷰를 삭제해달라는 외압에 넘어가기도 한다. 그는 한도와 대비되어 학벌주의의 함정과 언론인의 자질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동시에 비겁한 타협을 거듭한 결과 사회의 거악이 되어버린 선배 언론인과의 대비를 통해 용서와 반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젊은 PD들의 성장과 그것을 이뤄내는 오소룡의 멘토십이 작품에 감동과 활력을 더한다.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트리거> 5화에서 중대 재해를 연발하고도 번번이 법망을 빠져나간 기업인이 오소룡에게 외친다. “너희들이 백날 이런다고 법이 바뀌겠니 세상이 바뀌겠니.” 이에 오소룡이 답한다. “탐사 보도 PD가 바꾸는 건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언론이 대중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 인물은, 마찬가지로 언론인의 마음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후배들이 실수를 저질러도 계속 기회를 주고 재수 없어 보이는 상사들과도 타협을 시도한다. 현실적이어서 매력 있는 멘토이고, 이런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장기 시리즈가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디즈니+ ‘트리거’ 스틸 컷

<트리거>는 <나의 완벽한 비서>(SBS), <중증외상센터>(넷플릭스), <원경>(tvN, 티빙 오리지널) 등과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어 초반 화제성은 떨어졌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감을 더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캐릭터와 서사 구조가 탄탄하게 구축되었고, 시리즈 중·후반 큰 활약을 한 신비로운 악당 조해원(추자현)의 이야기가 남아 있어서 추가 동력은 충분하다.

디즈니+는 올해 전지현, 강동원 주연 첩보 로맨스 <북극성>, 설경구와 박은빈의 메디컬 스릴러 <하이퍼나이프>, 김수현의 짝퉁 시장 점령기 <넉오프>,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감독과 <추노> 천성일 작가가 손잡고 만든 사극 <탁류>를 내놓는다. 디즈니+ 한국 점유율 반전의 트리거는 일단 성공적으로 발사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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