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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서 워킹 맘이 겪는 일

2025.02.20

패션계에서 워킹 맘이 겪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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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있다는 것은 여성의 경력에 여전히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이를 바꾸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야근, 출장, 패션계 일정 맞추기 등 업계에서 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워킹 맘의 건강한 일과 삶의 균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런던에 본사를 둔 홍보 회사 ‘DH-PR’의 설립자 데이지 호펜(Daisy Hoppen)은 “아침마다 입덧이 너무 심했죠. 그런데 마침 패션 위크 기간과 장기 출장이 딱 겹쳤어요”라고 말했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다른 워킹 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그 비즈니스>는 패션계에 종사하는 워킹 맘 15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출산휴가를 쓰면서 뒤처지는 느낌과 함께 직장에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특히 프리랜서와 경영주로 일하는 사람들은 출산휴가를 제대로 전혀 쓰지 못했다. 육아 비용 역시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런던에 거주하는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제네비브 마데이라(Genevieve Madeira)는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패션계에서 특히 더 힘들어요”라고 털어놨다. “출산한 여성이 능력을 증명하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죠.”

‘토털잡스(Totaljobs)’와 여성 권리 자선단체 ‘포셋 소사이어티(Fawcett Society)’가 영국 성인 1,2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워킹 맘 84%가 출산휴가 후 복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79%는 경력 개발 중 난관에 직면했다고 답했다. 맥킨지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에 퇴사한 5세 미만 자녀를 둔 워킹 맘 중 45%가 퇴직 이유 중 하나로 육아를 꼽은 반면, 남성은 14%에 불과했다.

자녀를 갖는 것이 여성의 경력 개발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직장에서 여성은 출산휴가 후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 힘들죠. 조직이 바뀌거나 조직 내 역할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수면 역시 충분하지 못합니다. 육아와 관련된 일을 안간힘을 쓰며 해내고, 재정적 부담도 커지죠. 경력 사다리에 오르는 데 유용한 인맥 쌓기에 투자하기 위해 야근을 하거나 컨퍼런스 또는 행사에 참석하는 게 녹록지 않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직원 및 조직 실무 책임자이자 파트너 크리스틴 오윙스(Christin Owings)가 말했다. “조직은 대부분 당신의 복직에 대비해 계획을 세우는 데 능숙하지 못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출산휴가를 둘러싼 논의가 더 활발해지면서 많은 기업은 직원이 자녀를 갖는 방식(출산이든 입양이든)에 상관없이 성 중립적 육아휴직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10개 기업 중 7개 기업은 성 중립적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평균 유급휴가 기간은 16주다. 휴고 보스와 태피스트리는 이 정책이 시장에 특정적이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출산휴가를 구별하지만 보강된 급여나 휴가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워킹 맘 상당수가 성 중립적 출산휴가 정책에 찬성했다. 워킹 맘에게 패션과 삶의 균형은 가능할까? 그 정책으로 여성이 기본 양육자라는 기대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케어링의 최고 인사 책임자 베아트리스 라자(Béatrice Lazat)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 혜택을 조화롭게 활용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권리(부모가 집에서 동일한 육아 시간을 가질 권리)를 보장합니다. 그뿐 아니라 남성, 여성, 성이 구별되지 않는 논바이너리도 확대된 육아휴직을 사용할 가능성이 똑같이 높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의 경력 개발을 지원합니다.”

두 자녀를 둔 런던 소재 홍보 회사 ‘에이전시 일레븐(Agency Eleven)’의 설립자 로라 둘리(Laura Dooley)는 “패션계는 기회를 얻기 전에 자녀를 둔 직원을 포기하기보다 직장으로 끌어들일 더 많은 정책을 채택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혜택과 특전은 자녀를 둔 직원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일을 그만두게 되고, 결국 이것은 업계의 실질적인 손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락을 취한 10개 기업 중 5개 기업(샤넬, 버버리, 에르메스, 몽클레르 그룹, 케어링)은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포괄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2개 기업(태피스트리와 휴고 보스)은 특정 시장에 맞춘 정책을 운영하고, 나머지 기업(갤러리 라파예트, 삭스, 니만 마커스 그룹)은 시장 한 곳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오윙스는 성별 중립성과 같은 공통 원칙이 이 정책을 주도하는 한, 기업이 시장마다 다른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법적 요건은 나라마다 다르다. 스웨덴에서는 부모가 480일의 유급 육아휴직을 나눠 쓸 수 있다. 영국에서는 엄마가 최대 1년(처음 39주 동안 급여의 100% 수령)까지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아빠의 육아휴직 기간은 2주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미국에는 법정 유급휴가가 없지만, 미국 근로자는 고용 안정을 위해 12주간 무급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정확한 기간은 주에 따라 다르다).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국가에서는 조직이 강력한 정책으로 도울 수 있다. 2020년 미국에 본사를 둔 니만 마커스 그룹은 기업, 공급망, 소매업 등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16주 유급 육아휴직 정책을 시행했다. 2019년에 합류한 최고 인사 및 ESG 책임자 에릭 세버슨(Eric Severson)에 따르면 그 정책은 동등한 급여와 유연한 근무 방식 외에도 인력 자원 유지(Retention)와 업무 참여(Engagement)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글로벌 인력 자원 유지가 감소한 2021년 대퇴사 기간(The Great Resignation) 동안, 우리의 인력 자원 유지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20%나 증가했습니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마음이 떠나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직장인의 태도)이 이뤄지는 동안, 직원의 업무 참여는 34%포인트 증가했습니다.”

부모는 ‘평가받는다’는 두려움 없이 휴직할 수 있는 직장 문화를 원한다. 런던에 본사를 둔 패션 기업에서 근무했고, 5개월간의 출산휴가 후 복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한 상무(그녀는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출신의 한 여성은 이렇게 고백했다. “예정일보다 이틀 일찍 산통이 와서 패닉에 빠졌습니다. 업무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들고 가야 했죠. 복직 정책이나 상황 변화에 대한 이해 같은 유연한 조치는 없었어요. 저도 이에 맞설 에너지나 자신감이 없었죠.” 현재 그녀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업계 최고의 인재(최근에는 캘빈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베로니카 레오니)를 채용했던 ‘카렌 하비 컨설팅(Karen Harvey Consulting)’ 창립자 겸 CEO 카렌 하비(Karen Harvey)는 인력 교체 비용이 최대 1인 급여의 200%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은 출산휴가 후에도, 기업과 가족 모두에게 윈윈이 될 만한 시스템이 없거나 여유가 안 돼서 복직하지 않는 여성의 교체 비용이 얼마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심지어 지지하는 기업에서도 이 압박감은 마찬가지다. 런던에 본사를 둔 PR 회사 ‘아일 에잇(Aisle 8)’의 설립자 로렌 스티븐슨(Lauren Stevenson)은 “출산휴가 내내 죄책감을 느꼈고, 포모(FOMO), 고립 공포감에 시달렸습니다”라고 얘기했다. “너무 외로웠고 소셜 미디어에서 동료들을 팔로우하다 보니 계속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일 불안감에 시달렸고 자신감이 하락했죠.”

일부 기업은 워킹 맘 사이의 연결을 장려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했다. 태피스트리는 워킹 부모와 양육 직원을 전담하는 비즈니스 리소스 그룹을 설치했으며, 휴고 보스는 방글라데시 시설에 풀키(Phulki, 아동 발달을 위한 지역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여성이 일상적인 문제를 토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인 여성 전용 카페를 만들었다.

기업은 가족 관련 정책을 육아휴직을 넘어 확대하려고 고려하고 있다. 니만 마커스 그룹의 가족 휴가 정책은 사별에도 적용되며, 낙태 등의 시술 경비도 회사가 부담한다. 갤러리 라파예트는 유산, 성전환, 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한 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했으며, 에르메스는 암과 같은 장기 질환, 번아웃, 사별, 가정 폭력과 중독에 대한 유사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태피스트리는 어린이, 성인 또는 노인 친척을 위해 할인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돌봄 서비스와 노인 돌봄, 반려동물 돌봄과 가사 도우미를 구할 자원을 제공한다.

BCG의 오윙스는 유연성과 커리어 코칭 제공이 휴직 후 재합류하는 워킹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휴고 보스 독일 본사에서는 출산 후 복직하는 직원에게 개인 인사 관리자가 배정되며, 미국에서는 복직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복직 첫 달 동안 사무실에서 이틀만 근무해도 되는 유연성을 발휘한다. 몽클레르 그룹은 자녀 출생 후 첫 3년 동안 추가 유급 휴직 옵션을 비롯한 근무 유연성과 원격 근무 옵션을 제공한다.

맥킨지의 2023년 직장 내 여성 보고서(고위 인사 책임자 270명을 포함해 캐나다와 미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2만7,000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팬데믹 이전보다 경력 면에서 더 의욕적이며, 직장 내 유연성 향상이 경력 증진을 위한 열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엄마 중 절반 이상(57%)이 유연한 근무 제도가 없으면 퇴사하거나 근무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는 워킹 맘이 유연하게 일할 수 있고,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하이브리드 근무, 즉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의 혼합 근무가 더 이상 워킹 맘에게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죠.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세 자녀를 둔 ‘퍼플 피알(Purple PR)’ 런던 사무소의 패션 담당 수석 부사장 리디아 스틸(Lydia Steele)이 피력했다.

하지만 이중 잣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마르타 마르케스는 파트너 파울로 알메이다와 함께 마르케스’알메이다를 운영하며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제 파트너와는 대조적으로, 저는 비즈니스나 업계 내에서 포지셔닝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물리적으로 모든 것이 멈추거나 바뀌거나 제한되진 않았습니다.” 그녀의 설명이다. “우리는 평등했고, 업계에서도 그렇게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변화했을 수도 있겠죠.”

“사람들이 ‘당신 남편이 출장 가게 해주니 정말 다행이군요’라고 얼마나 자주 말하는지 몰라요. 남편이 출장 가는 거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런던에 본사를 둔 럭셔리 브랜드 컨설턴트 겸 매치스의 여성복 구매 책임자였던 리안 위긴스(Liane Wiggins)가 말했다.

워킹 맘은 육아 비용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는 일 때문에 딸을 며칠 동안 보육원에 맡길지 많이 고민했죠. 돈이 드니까요. 결국 그날 보육원에 맡기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그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런던에 거주하는 개인 스타일리스트이자 옷장 정리 전문가 푸자 아담(Pooja Adam)이 말했다.

‘헨리 비즈니스 스쿨(Henley Business School)’의 연구에 따르면 적지 않은 육아 비용, 열악한 남성 출산휴가 정책, 출세를 방해하는 편견의 결과 등 워킹 맘이 받는 불이익이 성별 임금 격차 요인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가 20대에 접어들면 성별 간 임금 격차가 줄어들지만,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이 자녀를 출산한 후부터 그 격차가 더 벌어진다. “많은 가정에서 부모 중 한 명이 근무시간 단축이나 퇴직을 결정하고, 이는 부모의 수입 감소를 의미할 뿐 아니라 그 후 경력 단절, 연금 감액, 여생 동안 이 어머니(대부분 어머니다)들은 남성과 동등한 수입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3년 영국에서는 엄마의 수입이 아빠보다 24% 적었다.

양육비에 대한 보조금 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 휴고 보스는 독일 메칭엔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위해 부모가 모두 재직하는 경우 자녀가 취학할 때까지 보육 비용을 지원하며, 3세부터 취학 전인 자녀를 위한 사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제공한다. 몽클레르 그룹은 이탈리아 파도바의 트레바셀레게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을 위해 보육과 유치원 비용을 지원하며, 루마니아에 있는 생산 시설에 2~6세 아동을 위한 무료 사내 유치원을 개원했다.

현장 보육이 실질적 해결책이 아니라면 다른 옵션도 있다. 태피스트리는 보육료, 돌봄, 과외 서비스를 할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갤러리 라파예트는 방과 후 활동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부모에게 바우처를 제공한다. 오윙스에 따르면 패션계 외의 일부 기업은 한 부모가 갑자기 야근할 경우 패션계 같은 곳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는 긴급 보육 지원을 제공한다.

이런 이니셔티브는 공급 체인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이블을 설립한 베네수엘라 디자이너 예니 바스티다(Yenny Bastida)는 아틀리에 직원의 3~15세 자녀 10명에게 과외, 보육, 식사 등을 지원하는 소셜 프로그램 ‘미래를 위한 한 걸음(Puntadas para el Futuro)’을 제공한다. 팀원 13명은 거의 엄마다. “이 방법은 자녀 보육 때문에 직원이 돈을 포기하고 퇴사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라고 디자이너는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이것을 통해 얻는 결과, 아이들이 성장하고 미래를 완전히 다르게 꿈꾸는 것을 보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수익 9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2018년 설립된 브랜드로 런던에 있는 ‘나인티 퍼센트(Ninety Percent)’는 자매 기업인 방글라데시 제조 공장 ‘에코텍스(Echotex)’에서 일하는 의류 노동자를 위해 출산휴가와 탁아소 시설을 제공한다. 창립자 샤피크 하산(Shafiq Hassan)과 파라 해밀턴(Para Hamilton)은 이렇게 말했다. “특히 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대부분이 여성인 경우 적절한 근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서비스가 필수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보그 비즈니스>가 취재한 럭셔리 브랜드 10개 중 3개 브랜드(샤넬, 휴고 보스, 몽클레르 그룹)는 공급업체의 행동 강령에 육아휴직과 육아 정책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강령은 필수적으로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모성애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 더 긍정적인 문화로 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36세에 첫아들을 낳은 로스앤젤레스 소재 브랜드 ‘올 이어 라운드(AYR)’의 설립자 겸 CEO 매기 윈터(Maggie Winter)는 “임신, 출산 그리고 출산 후는 공평하지 않으며, 패션 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여러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로 구성된 다양한 인력이 대대로 이어져온 지혜를 전수할 수 있을 겁니다. 배움과 가르침의 아름다운 순환이 우리 중 상당수가 부모가 되는 이유 아닐까요?” (VK)

Maliha Shoaib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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