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남자가 디자인한 여자 옷을 입는다는 것의 의미

2025.02.21

남자가 디자인한 여자 옷을 입는다는 것의 의미

패션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더 많은 여성 리더가 있다면 자신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의견을 나눴다.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영화배우 제인 버킨이 당시 에르메스 최고 경영자였던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 옆에 우연히 앉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소지품이 핸드백 밖으로 그만 쏟아지고 말았다. 그때 뒤마는 그녀에게 포켓 달린 핸드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버킨은 “에르메스가 포켓 달린 핸드백을 만드는 날, 저한테도 그런 가방이 하나 생기겠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은 가방과 의류에 더 많은 포켓이 필요하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옷뿐 아니라 그 옷을 생산하는 기업의 최상위 직책에도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한 브랜드의 제품 적합성이나 드레이핑이 형편없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은 “딱 봐도 남자가 디자인했군”이라는 댓글을 단다. 대체로 그 말이 맞다.

베로니카 레오니. Getty Images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주목할 만한 예외적인 경우를 보며 희망을 얻었다. 하지만 공석이던 최고 디자이너 자리를 남성이 많이 차지했다. 지난해 5월 30일 캘빈클라인 컬렉션이 베로니카 레오니를 최고직에 임명하면서, 브랜드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라프 시몬스가 2018년 퇴사 전까지 이 브랜드의 기성복을 총괄했다.

더 많은 여성이 이 직책에 오르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아직도 그런 여성이 그렇게 적은 이유에 집중하다 보니, 주목을 덜 받은 질문이 있다. “더 많은 여성이 컬렉션을 더 많이 디자인한다면, 패션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될까?” <텔레그래프>의 패션 책임자 리사 암스트롱(Lisa Armstrong)은 “여성이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2018년 에디 슬리먼이 피비 파일로를 대신해 셀린느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많은 사람이 이 브랜드의 스타일이 시크하고 아티스틱하며 착용감 좋은 미니멀리즘에서 많은 여성이 배제된 채 탄생한 “화려하고 몸이 많이 드러나는, 심지어 방탕해 보이는 스타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툴툴댔다.

셰미나 카말리. Chloé 2025 S/S RTW
Chloé 2024 F/W RTW

런웨이에 오른 여성들의 디자인은 상당히 다른 결과물을 낳는다. 지난해 2월 셰미나 카말리의 끌로에 데뷔작은 착용감 좋은 멋진 옷과 편안한 신발, 널찍하고 실용적인 가방을 통해 참신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굿 에그스(Good Eggs)’의 공동 창립자이자 멀티숍 브라운스의 구매 디렉터였던 아이다 피터슨(Ida Petersson)에 따르면 이 컬렉션은 지난해 데뷔작 가운데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암스트롱에게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최신 디올 크루즈 컬렉션으로, 이것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가미했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착용감 좋은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립 디자이너도 빼놓으면 안 된다. 마틴 로즈, 디오티마(Diotima)의 레이첼 스콧(Rachel Scott), 애터시(Attersee)의 이사벨 윌킨슨 쇼어(Isabel Wilkinson Schor) 등 대형 패션 하우스에 소속되지 않은 디자이너들이 여성용 드레스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선보이고 있다. 2018년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가 “신중한 여성적인 반전과 부드러운 실루엣을 통해” 여성에게 적합하게 조정된 남성복이나 다름없는 여성복을 출시했을 때 매치스패션의 발표에 따르면 여성들은 기뻐했다(어쨌든 그 여성들은 남성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시몬 로샤는 2022 S/S 컬렉션에 자신의 모성 경험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임산부용 브래지어를 포함시켰다. 디자이너 다니엘라 칼마이어(Daniella Kallmeyer)는 1년 전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혔듯 브랜드 칼마이어(Kallmeyer)는 페플럼이나 모조 다이아몬드 버튼과 러플을 원하지 않는 여성이 구매할 만한 정장과 셔츠가 없다는 전제하에 설립되었다.

착용감이라는 공통된 맥락이 있지만, 이 디자이너들이 탄생시킨 결과물은 획일적이지 않다. 이 점이 포인트다. 여성에게 적합한 옷을 만들려면 그런 주관성과 실제적 경험이 필요하다. “인종, 계층, 성별 같은 요소를 고려한 여성 경험의 공통적 가치는 다각적인 소비자층을 겨냥하는 디자인에 소중한 통찰을 제공해 궁극적으로 패션에 대한 업계의 접근 방식을 다양하게 만듭니다.” 비영리 디자이너 인큐베이터 ‘레이즈패션(RaiseFashion)’의 브랜드 컨설턴트이자 전무이사 펠리타 해리스(Felita Harris)가 말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Getty Images

이는 생산된 제품뿐 아니라 의류 제작 프로세스까지 이어진다.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디자이너는 주로 여성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전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지난해 <보그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고와 행동에 대해 남성보다 더 총체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 같아요”라고 언급했다. “남성이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여성에게는 뭔가 있다는 말이죠. 이는 정말 장기적인 관점이며, 어떤 면에서는 모성적인 사고죠.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딱 그래요.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두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이런 관점이 부족한 편이다. <퍼펙트 매거진> 컨설턴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니 아난 르윈(Jeanie Annan-Lewin)이 “주변을 둘러보면 왜 모두가 날씬하고 모두가 백인일까요?”라고 물었다. 그녀의 말은 이 가격대에 옷을 구매할 수 있는 인구통계치를 감안하면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 모두 백인이 아니고, 사이즈가 0이 아니며, 25세 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돈과 불황을 많이 걱정하는 지금, 지출 가능한 자금이 있는 사람들에게 시장을 개방해야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이 말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넘어선 차원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여성 CEO가 부족하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와 사진가 중 상당수가 남성이다.

해리스는 변화 촉구를 위해 포용성과 다양성이 모든 차원에서 우선 사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멘토링과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을 접하도록 보장하는 정책의 시행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일단 그 단계에 이르면 업계는 이 여성이 성공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지원적인 환경 조성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이 더 많은 컬렉션을 디자인한다면 시각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무엇이 개선될까? 전문가들은 여성의 참여가 늘어도 트렌드가 대대적으로 바뀌진 않을 거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착용감 개선 등 미묘한 차이는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순수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이 핵심이었죠.” 아난 르윈이 말했다. “그런 스타일이 여전히 많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아, 다른 사람이 걸쳤으면 더 보기 좋았을 텐데’ 또는 ‘곡선이 살짝 보이면 좋을 것 같네’ 아니면 ‘누군가가 엉덩이를 조금 더 부각시켰거나 덜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카말리의 끌로에는 시어 패브릭을 사용했다. 비록 모델들은 시스루 드레스 밑에 G-스트링이 아니라 남성용 트렁크 팬티를 입었지만. 그 모델들은 모두 보통 사이즈였다.

피비 파일로. Getty Images

여성 디자이너의 감성은 일반적으로 바이어 미팅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설명할 때, 재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움직임, 특히 우리 대부분이 쇼룸 모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게 되겠죠.” 피터슨의 말이다. 바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끌로에, 더 로우와 더불어 파일로의 셀린느는 모두 여전히 베스트셀러라고 클레어 리처드슨(Clare Richardson)이 전했다. 그녀는 중고 패션 기업 ‘리럭스(Reluxe)’의 스타일리스트이자 오너다. “그 옷은 날개 돋친 듯 팔리죠”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여성이 더 많은 옷을 만들도록 돕는 게 어떨까? 우리는 단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매일 옷과 관련된 일을 하는 패션계 여성에게 “더 많은 여성이 주요 패션 브랜드의 리더가 된다면 어떤 옷을 입게 될지, 그리고 어떤 옷을 사게 될지” 물었다.

Celine 2011 S/S RTW
Celine 2011 S/S RTW

더 많은 대안이 필요한 필수 아이템

“흰색 셔츠는 필수품입니다. 완벽한 옷장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기본 품목 중 하나죠. 하지만 버튼다운 셔츠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건 아닙니다. 얼굴 모양, 네크라인, 가슴 등에 따라 다양한 옵션이 있어야 해요. 지난 2~3년간 이 셔츠가 정말 유행했지만, 몇 가지 옵션이 있으면 좋겠어요. 모양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기 바랍니다.” Lisa Armstrong <텔레그래프>

“다양성이 더 확대될 겁니다. 현재 우리는 남성의 시선에서 나온 것들을 보고 있죠. 그런 옷은 아름답지만, 같은 실루엣의 반복이죠. 우리는 ‘여성이 되는 방법은 하나뿐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역시 하나뿐’이라는 동일한 메시지만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건 조금 따분하죠.” Jeanie Annan-Lewin <퍼펙트 매거진>

Tory Burch 2025 F/W RTW

포용적 사이즈

“소비자의 다양한 체형과 크기에 맞춰 더 포용적인 핏의 여러 사이즈가 나올 겁니다.” Felita Harris 레이즈패션

“신체 긍정주의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지 못해요. 사이즈나 비율이 맞는 옷을 구하지 못하는 거죠.” Lisa Armstrong <텔레그래프>

“디자이너가 포괄적 사이즈를 채택할 때조차도, 특히 온라인에서 명확하게 표현되진 않습니다. 여성은 ‘내 사이즈가 20이라면 어떻게 보일까? 14 사이즈면 어떻게 보일까? 6 사이즈면 어떻게 보일까?’ 등을 궁금해하죠. 그게 바로 겉으로 보이는 우리 모두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컨셉을 이끄는 아주 강한 두 여성이 활약하는 ‘굿 아메리칸(Good American)’이 이 일을 잘하고 있어요.” Ida Petersson 굿 에그스

가슴이 편한 의상

“대부분의 여성 옷은 가슴 부분이 여유롭지 않습니다. 여성이라면 가슴이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브래지어를 착용할 수 없거나 부적절한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Lisa Armstrong <텔레그래프>

“가슴 모양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예요. 패션 하우스는 획일적인 공식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있으며, 가슴 부분을 늘 고려하지 않습니다.” Ida Petersson 굿 에그스

“기능성이 핵심 과제입니다. 디자인에는 보호 차원의 옵션 등 실용적 요소가 포함될 겁니다.” Felita Harris 레이즈패션

Chloé 2025 S/S RTW

착용감 좋은 신발

“더 좋은 신발이요. 신발은 실용적이지 않고 정말 불편한 경우가 많아요. 생 로랑의 어느 패션쇼에서 너무 높은 힐을 착용한 모델들이 무대를 걷는 데 오래 걸린 기억이 납니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보기 불편하더라고요!” Jeanie Annan-Lewin <퍼펙트 매거진>

“여성이 여성을 위해 디자인할 때, 힐 높이를 더 많이 배려합니다. 착용감을 고민하죠. 이 분야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바로 아미나 무아디(Amina Muaddi)입니다. 저와 친구들이 15시간 신어도 괜찮은 신발은 그녀의 플레어 힐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힐을 100mm 대신 95mm로 만들죠. 과학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 0.5cm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죠. 우리는 멋지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아파서 울거나 발에 보톡스를 맞지 않고도 멋져 보이고 싶어요.” Ida Petersson 굿 에그스

Tory Burch 2025 F/W RTW

편한 실루엣과 패브릭

“그들에게는 특정한 재단과 제작법이 있겠죠. 그들이 추구하는 유연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촬영에서 소녀들을 남성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스타일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옷이 어찌나 슬림한지, 몸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죠. 원단도 너무 뻣뻣했고요.” Clare Richardson 리럭스

“부드러운 원단과 인체 공학적 핏을 활용해야 스타일도 살고 편안하겠죠.” Felita Harris 레이즈패션

“특정 시점이 되면 몸이 붓는 게 현실이죠. 그것 또한 편안함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입니다.” Ida Petersson 굿 에그스

“사람들은 패셔너블해지길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표현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어울리는 옷, 돋보이는 옷을 원할 뿐이죠.” Lisa Armstrong <텔레그래프> (VK)

Madeleine Schulz
사진
Getty Images, GoRunwa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