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과 전은환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로 30년 우정을 지켜왔다. 일에 관한 통쾌한 철학과 가족애를 모두 관통하는 이들의 풍성한 담화가 대한민국 중년 여성의 환대 속에서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김지윤과 전은환의 대담은 3월 15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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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질문 중 10개도 채 건네지 못했는데 인터뷰 녹음 기록이 1시간 10분을 넘어가고 있다. 1972년생 동갑내기, 김지윤과 전은환의 유튜브 채널 ‘지윤 & 은환의 롱테이크’에서 느낀 대화의 밀도와 속도감 그대로다. 두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대개 말이 좀 더 빠른 김지윤이 먼저 운을 떼곤 했다. “각자의 전공 분야 외에 저는 음악이나 스포츠, 은환이는 미술과 예술 쪽에 조예가 깊으니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요. 둘 다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강해서 마음만 먹으면 한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전은환이 포용력 있는 목소리로 거든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믿고 좋아하기 때문에 얘기를 계속하는 것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서로 아주 좋아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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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김지윤과 경제 전문 기자로 활약한 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를 이끌며 최연소 임원을 역임한 전은환. 연세대학교의 자랑스러운 동문인 두 사람은 정치외교학과 수업에서 처음 서로를 마주했다(김지윤은 정치외교학과, 전은환은 영어영문학 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부전공했다). 이후 미국 유학 시기가 겹치며 둘의 우정은 바다를 넘어서도 무탈하게 지속됐고, 각자의 커리어 로드를 따라 자연스럽게 풍성해졌다. 커리어의 전환기를 맞이한 시점도 비슷하다. 이번에는 ‘김지윤의 지식Play’를 이끄는 100만 유튜버 김지윤의 적극적인 회유 때문이었지만. “<알쓸별잡>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어요. ‘왜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자들끼리만 할까’ 싶더라고요. 심채경 박사님을 유일한 여자 패널로 모셔놓은 것도 다소 전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은환이와 평소처럼 밥을 먹고 헤어진 어느 날, 제가 팟캐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한 게 발단이 됐어요.”
공부, 유학, 취직, 결혼, 육아 등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면서 직면한 수많은 화두는 두 사람의 지성 그리고 위트와 맞물리며 금세 시너지를 냈다. “가장 반가운 댓글은 ‘복잡해서 여러 번 들었어요’ ‘영상 보고 나서 더 찾아봤어요’ 같은 거예요. 점과 점이 연결되는 희열, 나만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을 보는 분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전은환) “손수 대본을 쓰는 건 물론이고, 우리 둘 다 이 나이에 프리미어 프로로 편집하는 걸 독학했어요. 고군분투의 과정을 지켜본 아들이 그러더군요. ‘살면서 엄마 눈이 그렇게 초롱초롱한 거 처음 봤어.’ 나의 무식함을 깨닫는 건 뼈아프지만 끝내 내 것이 되는 순간의 기쁨은 엄청나요. 인간이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죠.”(김지윤) 성실하게 임한 시간은 분명한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 그 믿음으로 김지윤과 전은환은 주체적인 삶을 살았고, 50대 여성에 대한 얄팍한 편견을 유쾌하게 허물었으며, 서로의 우정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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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YOON KIM
완벽한 행복이란? 그런 건 없다.
가장 두려운 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들이 내 삶의 궤적을 보고 실망하는 것. 나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은? 좀 더 낙천적이었으면 좋겠다. 매사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다.
타인의 가장 싫은 부분은? 무책임함. 이런 분은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싶다.
어떤 사람을 가장 존경하나? 꾸준하고, 루틴대로 사는 사람. 자존감 높고 단단한 인격체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사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구는 것.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현재 마음 상태는? 늘 긴장 상태에서 산다. 지금도 뭘 잘못하진 않을까, 빼먹은 건 없을까 두렵다.
가장 과대평가된 인간의 ‘덕목’은? 공감 능력. 누군가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잠깐 위안은 되겠지만 당면한 문제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다.
어떨 때 거짓말을 하나? 거짓말 안 한다. 해봤자 얼굴에 그대로 티가 난다.
특별히 많이 쓰는 단어나 표현은? ‘사랑해’란 말과 ‘허그’. 아이들한테 하루에 한 번 이상 말하고 허그도 하루 네 번 이상 한다.
살면서 가장 사랑한 대상은? 나의 두 아들. 현재진행형 그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가장 행복했나? 두 아들과 함께 여행할 때 늘 행복하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면서 ‘이래서 내가 돈을 버는 거지’ 확신한다.
가장 갖고 싶은 재능은? ‘빵빵’ 터지는 드립력. 시키는 건 열심히 준비해서 잘하는데, 순간순간 재치는 엄청 떨어진다. 한국 교육의 폐해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자신에 관해 한 가지 바꿀 수 있다면? 사람은 잘 안 바뀌지만, 1시간 더 일찍 일어나고 싶다.
당신의 가장 큰 업적은? 두 아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모자람 없이 길러내고 있는 것. 딸 가진 분들, 잘 부탁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무생물 포함) 혹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나?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이번 생 충실히 살고 끝. 제발.
어디에서 가장 살고 싶나? 뉴질랜드의 조용한 교외에 자리한 마당이 있는 작은 집.
가장 아끼는 소유물은? 아이들의 어릴 적 물건. 배냇저고리, 내복, 배냇머리, 이빨도 몇 개 가지고 있다.
가장 낮은 깊이의 불행은? 나에게 닥친 모든 불행. 가장 커 보이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
친구라면 갖춰야 할 면은? 서로 적당한 공간을 두고 무관심할 수 있는 마음. 이것저것 다 알려고 하는 것이 정말로 상대를 위해서일까? 호기심 충족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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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WAN JEUN
완벽한 행복이란? 엄마와 함께 늦은 아침으로 엄마가 만든 김치국밥을 먹는 것.
가장 두려운 건? 새벽에 모기를 잡고 다시 잠들려는 찰나 또 한 마리가 귓가에 앵앵거리는 것.
나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은? 다치거나 물리거나 아픈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격렬한 운동을 피하게 된다.
타인의 가장 싫은 부분은?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남의 상황을 쉽게 판단하고 조언하는 것.
가장 큰 사치는? 엄마와 내년 휴가 일정을 이야기하는 것.
가장 과대평가된 인간의 ‘덕목’은? 포용력. 결국은 포용하지 않는 타인에 대한 불평불만을 갖게 된다.
어떨 때 거짓말을 하나? 누군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할 때 처음 듣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말한다.
특별히 많이 쓰는 단어나 표현은? ‘그러게요.’
살면서 가장 사랑한 대상은? 엄마와 아빠.
언제 어디서 가장 행복했나? 즐거웠던 순간을 곱씹을 때 행복하다. 엄마와 여행에서 겪은 일-맛있는 식사, 잘못 탄 기차, 대단한 그림을 감상한 것-등을 이야기할 때. 4년 전 홀인원 순간을 함께한 멤버들과 와글와글 떠들며 와인 마실 때.
가장 갖고 싶은 재능은? 여러 언어를 빠르게 배우는 능력. 특히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
자신에 관해 한 가지 바꿀 수 있다면? 머리숱이 많으면 좋겠다. 머리에 큰 핀을 꽂거나 굵은 머리띠를 해보고 싶다.
당신의 가장 큰 업적은? 삼성에서 휴대폰 가격 전략을 책임지며 좋은 팀을 이끈 것. 수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만들어내느라 밤도 많이 새웠는데, 그때 같이 일한 팀원들이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가장 아끼는 소유물은?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그린 소품.
가장 낮은 깊이의 불행은? 이 불행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데이터를 보면서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분석하는 것.
좋아하는 예술가(작가)는? 얀 반에이크.
가장 공감하는 소설의 주인공 혹은 역사적 인물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의 피기(Piggy). 시력도 나쁘고, 신체적으로 강건하지 못하고, 남을 압도할 카리스마도 없는 점에서 나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싫어하는 것? 무엇인가를 깜빡 잊거나 빠뜨리는 것.
가장 후회하는 것? 외국에서 장기간 일하지 않은 것.
어떻게 삶을 떠나고 싶은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불편을 끼치지 않고 삶을 떠나고 싶지만, 내 의지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베풀며 사는 분들을 눈여겨보고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죽음을 맞게 될 거라 믿는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