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 경시됐다는 자격지심을 지울 수 없던 밤
〈보그〉에서 주최하는 연례행사 ‘보그 리더(Vogue Leaders)’의 올해 주제는 여성과 일(Woman and Work)이다. ‘일하기 싫다’로 끝내긴 아쉬워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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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두 번째 일
갑작스러운 폭우로 도산대로에 택시가 멈춰 섰다. 옥수동 스튜디오에서 화보 촬영 중인 연예인 A는 아직 세 벌은 더 입어야 하니 인터뷰까지 2시간여 남았다. 하지만 조급한 이유는 그의 매니저가 인터뷰를 서면으로 대체해도 되냐고 전화했기 때문이다. 잡지 마감까지 나흘 남았다. 약속된 인터뷰 일정도 취소하는데 답을 기한 내로 받을 수 없을 거 같다. 가서 설득해야 한다. 택시는 왜 안 가는 거야. 왜 내 하루는 오늘도 망가지는가.
그는 피곤해한다. “칠순의 이자벨 위페르도 소임을 다하고 갔다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자벨 위페르는 입국 당일 파주로 이동해 튜브 톱 발렌시아가 드레스를 입고 버스 정류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어깨에 좁쌀만 한 소름이 올라왔지만, 그녀에겐 멋진 사진이 더 중요했다.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를 시작하니 밤 9시다. 눈이 반쯤 감긴 그녀가 “괜찮아요, 마담. 질문해줘요”라며 웃었다. 야외 화장실의 추위에 다급히 바지를 올리면서 나는 평생 이자벨의 팬이 되기로 했다. 이자벨과 같은 변기를 썼다고 자랑할 만큼.
스튜디오 안은 음 소거 한 듯 조용하다. 다들 말없이 분주하다. 무사 진행을 위해 A의 여전한 매력에 감탄하는 스태프의 외마디 탄성이 간간이 들렸다. 그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서울극장 앞에서 쥐포 파는 자매가 서민 갑부던 시절, 캠퍼스 커플인 우리는 그의 멜로 영화 포스터를 두고 고민했다. 졸릴 거 같다는 남자 친구 때문에 다른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A의 영화는 명작으로 남아 있다. 우린 서울극장을 나와 피맛골에 들러 막걸리를 마셨다. 취한 그가 A를 좀 닮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을까. 그가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내적 친밀감을 느꼈던 것이.
나는 그를 만나면 건넬 첫인사를 중얼거린다. “제 청춘 같은 배우예요. 오랜만에 진짜 궁금한 질문으로 준비했어요.” 매니저가 다가온다. “이미 약속한 시간을 넘겼는데 촬영이 안 끝났어요. 죄송하지만 오늘 인터뷰는 힘들겠어요.”
행여나 그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소파에 앉아 풍경을 지켜본다. 다들 제 할 일을 한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고, 그는 찍히고, 스타일리스트는 바짓단을 접고, 헤어 디자이너는 꼬리빗으로 앞머리를 정리하고, 매니저는 외부인의 화장실 출입을 막고, 패션 에디터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이해(나의 인터뷰)는 의도치 않게 미뤄질 수 있다. 나도, 우리도 일하면서 분명 누군가의 이해를 침범하거나 양해를 구한 적 있다. 어떤 태도인가가 관건이지. A는 약속된 시간을 넘겨서까지 ‘일’하는 중이고, 시간 조율을 못한 매체의 탓도 크다. 그는 전화든 서면이든 후에 연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내 일이 경시됐다는 자격지심을 지울 수 없던 밤 ‘일이란 뭘까’ 생각해봤다. 그날만이 아니라 요즘 내 과제긴 하다.
내게 일은 지지고 볶는 연애였다. 사랑했지만 상처받고, 흉터를 굳은살이라 믿고 몇 번이고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한, 진즉 끝냈어야 할 연인. 처음엔 그냥 좋았지. 에디터가 꿈이어서 <월간중앙>에서 무급 인턴을 자원했다. 점심은 선배들이 돌아가며 사주었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비정규직 선배도 기꺼이 밥값과 술값을 내주었으니 대단하고 고맙다. 회사가 내야 할 비용을 그들이 지불한 셈이니까. 어느 저녁, 중소기업 사장들의 좌담회 녹취를 푸는데, 얼큰하게 취한 선배가 들어왔다. 당시 편집부는 반주가 일상이어서 놀랍진 않았다. 선배는 시큼한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용당하지 마세요.” 그런 조언보단 속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다. 사랑하는 ‘일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곳에서 가장 큰 업무는 국회의원 설문 조사였다. 당시 정권에 민감한 질문이어서 보좌관들에게 문전박대당하기 십상이었는데, 학생인 나를 가엾게 여길 거란 선배들의 추측이 맞았는지 그래도 160여 명에게 답을 받아냈다. 해당 조사는 표지에 특필됐지만, 나는 국회 화장실에서 몇 차례 울면서 시사지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뒤였다. 그 후 에디터 아카데미에 등록했고 학원장 추천으로 문화 잡지에 입사했다.
비정규직이었다. 선배들 업무 보조 말고도 내 몫의 기사를 배당받았기에 첫 정식 직장으로 여겼다. 모니터에 하얀색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띄우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쓸까 설레서. 6개월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연봉은 1,440만원이었다. 당시 청담동 의상실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월급은 30만원이었기에 받아들였다. 부모님께 연봉을 말하지 않았다. 점차 일의 기쁨을 처우의 슬픔이 짓눌렀고 체력도 달렸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의 정관 스님 편을 보다 그 시절이 떠올랐다. 10대에 출가한 그녀는 하루하루 너무 피곤해서 몰래 숲에 들어가 쪽잠을 자다가 뱀을 만난다. 목을 감고 내려오는 뱀을 쫓거나 놀랄 기운도 없어 다시 잠을 청했다고 한다. 나는 잦은 야근으로 사무실 창고에서 자고 옷도 갈아입었는데, 어느 날 남자 직원이 “CCTV가 있으니 조심해”라고 했다. “네” 하고 말았는데, 내 영상을 누가 봤는지 삭제는 됐는지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그만큼 피곤했고 일을 쳐내기 바빴다.
일을 시작하고 3년쯤 얘기이니 언제 나머지를 다 듣나 싶겠지만, 비슷한 반복이다. 여섯 번 이직하고 점차 적당히 나태하고 머리 쓰는 직장인이 돼갔다. 데스 노트에 쓰고 싶던 선배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한 어느 날, 일에 작별을 고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책장의 잡지를 내다 버리고 항공권을 끊었다.
알다시피 옛 연인에게 돌아왔다. 생계 때문이라고? 뭐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귀어보니 그놈이 그놈이었듯이 다른 일도 비슷한 희비를 갖는다. 그러니 수년간 시간과 체력으로 등가 교환해 익숙한 이 직업에 다시 안주하고 싶었다. 여전히 글쓰기가 좋고 인터뷰도 하고 싶으니까.
이제 40대. 다시 이별을 고심하고 있다. 저번 이별이 지쳐 나가떨어진 거라면, 이번엔 이성적이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에게 일이란 뭘까? 이런 고민을 선배에게 말하자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보라고 했다 ‘일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가’로. 그는 일의 입장에서 자신의 쓰임을 생각해봤다고 했다. 덕분에 캡션 쓰면서도 설레던 시절을 지나 일과 서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쌈박한 관계를 추구하는 듯 보였다. 어떻게 그 답이 도출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정은 뭔가 초연해 보였다.
나는 ‘일한테’ 어떤 상대였을까. 일로 자아실현 하려고 안절부절못하고 성과를 얻으려고 애걸복걸했으니, 골치 아픈 여자였을 거다. 여섯 번 도망갔으니(이직했으니) 참을성도 없다. 그런데 왜 내 쓰임까지 증명해야 하지?
40대가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30세 전야에도 그랬는데. 이젠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란 노래도 갖다 쓰기 무엇하다. “팀장보다 내가 나이가 많아. 그러니 날 뽑겠니?”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친구가 푸념했다. 큐레이터 선배는 이제라도 미학 공부를 시작하라고 한다. “마흔이면 전혀 늦지 않았어요.” 근데 저는 미술에 관심 없는데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다른 일을 하기엔 늦었다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라고 한다. 어지럽다.
심리학자 카를 융이 “마흔은 지진 같다”더니 정말 그렇다. 우리는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전력을 다한다. 융에 따르면 세상에 적응하느라 참고 억누른 것들이 그림자가 된다. 지금은 매달 프레젠테이션을 하지만 본래 내성적인 성격, 주말마다 전시장을 찾지만 교과서에 직접 그림 그리던 즐거움 등은 그림자로 묻혀 있다가, 40대가 되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가면을 쓸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림자엔 상처도 있지만 잃어버린 즐거움도 있다. 나도 길어지는 그림자를 들여다봐야 할까. 이것이 다시 일로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취미가 아닌 일을 찾고 있다.
얼마 전 <미키 17> 기자 간담회를 찾았다. 봉준호 감독에게 AI 시대에 창작자로서의 고민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저도 살아남기 위해서 AI가 절대 쓸 수 없는 시나리오를 매년 매일 밤 고민합니다. 알파고를 굴복시킨 이세돌 기사의 수를 3페이지 걸러 한 번씩 등장시키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요.” 나도 그런 두 번째 일을 찾고 있다. 이왕이면 그림자놀이로. 그 일과도 이별하고 다른 일과 재혼하는 능력 있는 할머니를 꿈꿔도 본다. 평생 일한다는 명제가 악몽이던 시절도 있었으나 여건이 되면 삼혼, 사혼도 좋다. 그러려면 우선 이 일부터 마무리해야겠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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