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라는 언어로 생명을 부여하는 일, ‘사물들의 힘’展
이수그룹의 문화 예술 공간인 ‘스페이스 이수’에서 작가 10인이 참가하는 그룹전 <사물들의 힘>이 열리고 있습니다. 일상적 사물을 통해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사이를 오가면서 미술에 대해 탐구하는 미술가들의 ‘사물들’을 소개하는 전시인데요. 여기서 미술가의 사물이라면 바로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저는 현대에 들어 남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을 ‘사물’이라 명명한 것부터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범, 박이소, 박진아, 베르트랑 라비에, 서도호, 양유연, 이주요, 임민욱, 정광호, 정서영 등의 작가들은 우리 주변의 익숙한 사물에 미술이라는 언어를 입혀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이란, 본래 사물의 금전적, 실질적, 추상적 가치를 수백 배 뛰어넘어 다시 태어날 정도의 삶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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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평범한 사물이 전시장 도처에서 작품으로 거듭납니다. 정서영의 매끄러운 비닐 민속 장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박이소의 A4 용지 더미, 이주요의 대야와 스펀지, 수건 같은 잡동사니, 인생을 기억하게 하는 서도호의 유니폼, 전시장 벽에 화면을 투사하는 박진아의 프로젝터, 정광호의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그물망 항아리, 평범하다 못해 흔한 베르트랑 라비에의 전자레인지, 지점토로 빚은 김범의 통닭 두 마리, 양유연의 가설 작업등, 임민욱의 길고 부드러운 카펫 등등. 사물이 된 작품, 작품이 된 사물은 천연덕스럽게 우리의 삶과 일상,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아무렇지 않게 널린 사물과 전시장에 살포시 놓인 이 사물이 왜, 어떻게 다른가 헤아리는 과정에서 주변의 평범한 대상이 달리 보입니다. 이 평범한 사물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물들의 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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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작가들을 “사물을 빤히 바라보며, 사물에게 말을 걸고, 사물의 얼굴을 지각하고, 사물의 생동하는 관상을 알아보고, 사물의 영혼을 돌보며, 사물의 고유한 삶을 사유하고, 사물에 위협당하기도 혹은 매혹당하기도 하고, 사물로 인해 행복하고, 사물의 낯섦에 경탄하는” 이들로,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의 부분을 인용하여 묘사합니다. 일상의 오브제를 작업에 활용하는 현대미술가들을 이토록 낭만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작가들은 사물을 활용해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합니다. 개인의 인생사와 시대의 역사, 현실을 뛰어넘는 추상의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하지만 다름 아닌 사물을 통한 작업은 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로 치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놓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에게 사물은 매우 훌륭한 조력자이자 동료인 셈이죠.
흥미롭게도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사물’이라는 단어를 자꾸만 ‘마술’이라고 타이핑하면서 오자를 냈습니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제멋대로 ‘마술’을 가리키더군요. 몇 번을 반복해서 고치던 와중에, ‘사물’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바로 현대미술의 ‘마술’과도 같은 영향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미술가’라는 이들은 평범한 사물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마술사’가 아닐까요. ‘미술’이라는 마술봉을 손에 쥐고, ‘과연 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주문처럼 외는 마술사 말이죠.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에 홀린 듯, 혹은 흥미로운 기분을 가득 안고 전시장을 나오게 된다면 미술과 마술의 기묘한 관계, 작가와 사물 간의 동료 의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김에, 당신 방에 놓인 평범한 사물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당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전시는 4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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