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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제이미 맘 뺨치는 대준동 제이 파파, ‘선의의 경쟁’

2025.03.07

대치동 제이미 맘 뺨치는 대준동 제이 파파, ‘선의의 경쟁’

이혜리 주연 학원 스릴러 <선의의 경쟁>(U+tv, U+모바일tv) 최종화가 공개됐다. <선의의 경쟁>은 한국 중상류층의 무시무시한 학벌 경쟁을 스릴러 요소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스카이캐슬>과 맥이 닿아 있다. 청소년 마약 문제, 학내 서열화, 과소비 풍조 따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최근 한국 범죄물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그런데 10대 여성을 이야기의 주체로 삼아 그들의 다양한 욕망을 그려낸다는 게 참신하다. 이혜리, 강혜원 등 시청자들이 익히 커리어를 아는 성인 배우들을 여고생으로 캐스팅한 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캐릭터들의 조숙함과 잘 맞아떨어지고, 이 작품에 학원물 이상의 스릴을 부여하는 데 일조한다.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드라마의 배경은 ‘대준동’ 명문 학교 채화여고다. 동네 이름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릴 때 미아가 되어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고3 때 가족을 찾아 대준동으로 이사 간 우슬기(정수빈)는 학업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슬기는 과거 왕따를 당하다 성적이 오르고 나서야 대우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부에 집착한다. 지방에서는 불법으로 ADHD 관련 약물을 구해 먹으며 전교 1등을 유지했다. 그런데 대준동은 학교 수업이 아니라 학원 선수 학습 범위에서 시험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을 돈이 없는 슬기는 난처하다. 불법으로 약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때 채화여고 여왕벌 유제이(이혜리)가 그에게 접근한다. 제이는 슬기를 곤경에서 구해주기도 하고, 학원 기출문제집도 그냥 준다고 하고, 약도 내준다.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유제이는 종합병원 원장 유태준(김태훈)의 딸로, 명석한 두뇌와 완벽한 외모로 학생들의 선망을 받는 존재다. 그런데 뒤에서는 아버지의 병원 약을 빼돌려 아이들에게 판다. 목적이 돈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나쁜 짓을 하는 게 즐거워 보인다. 친구들을 이용하고 협박하고 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 그가 슬기에게는 계속 싹싹하게 군다. 제이가 슬기를 집에 불러들여 같이 잠잘 때, 축제에서 같이 놀 때, 둘 사이에는 아슬아슬한 성적 긴장이 흐른다. 제이의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게 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위태롭게 만드는 핵심 요소인데, 이혜리가 사랑스러운 모범생의 가면 뒤에 차갑고 잔인하고 반항적인 면모를 감춘 제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여기까지는 학원물의 영역이다. 그런데 본격 범죄물과 사이코드라마가 가미된다. 우슬기의 아버지는 교사였고, 제이 언니가 수능을 보는 해 수능 출제 위원이 되었다가 미심쩍은 이유로 사망했다. 누군가 수능 킬러 문항을 빼돌리기 위해 살인을 불사한다는 건, 강남의 일개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이 몇 년 동안 주요 언론을 뒤덮은 한국에서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슬기 아버지의 사망 사건을 둘러싼 비밀은 채화여고 학생 여러 명이 한 조각씩 나눠 갖고 있다. 만년 2등 콤플렉스를 지닌 최경(오우리)은 방과 후 학교에서 자위를 하다가 슬기 아버지와 제이 언니의 섹스를 목격했다. 공부 대신 미모로 성공하려는 명품광 주예리(강혜원)는 제이 아버지 유태준에게 고용되어 심부름을 하는 동안 제이 집안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들은 경쟁, 질투, 견제하면서 때로는 정의감, 호기심, 우정에 기대 협력도 하고, 제각각 자극적인 서사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다.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제이 아버지 유태준은 실제로 이런 인물이 있다면 그냥 정신 나간 머저리겠지만 극적으로는 매력 있는 악당이다. 최근 코미디언 이수지의 ‘대치동 제이미 맘’ 캐릭터가 유행하면서 사교육 과열이 모성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유구한 흐름을 상기하고 피로감을 표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대준동 제이 파파 유태준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카인과 아벨을 들먹이며 딸 둘을 경쟁시켰다. 딸이 시험문제를 훔치려고 교사에게 몸을 파는 것도, 경쟁자들에게 약을 파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무슨 수를 쓰든 잘나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중 더 강하고 성과가 좋은 쪽에 기업을 물려주겠다 약속하고, 뒤처지는 딸은 잔인하게 응징한다. 전공을 살려 자녀들의 식단과 약물을 직접 설계하고 통제하기까지 한다. 밖에서는 의연한 척하면서 안에서는 억압의 구조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잔혹한 절대자인 아버지와 소녀들의 대결 구도로 전개된다.

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작품이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은 제이가 아버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사 살해 사건의 해결 동인을 쥔 우슬기를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심증을 품는다. 어쩌면 성애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여간 둘 사이에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선의의 경쟁>은 크고 작은 반전과 미스터리한 주인공을 통해 마지막 화까지 패를 숨기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기존의 밝고 어린 이미지와 어두운 장르극 사이 좁은 교집합을 발견하고 그것을 십분 활용한 배우 이혜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대목이다. 동명의 원작 웹툰이 있지만 살인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 요소가 강화되고 비주얼 완성도도 높아 시청 시간이 아깝지 않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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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X+U '선의의 경쟁'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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