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는 시대, 진짜 멋은 어디에 있나
몇 년 전 겨울, 버스에서 지루할 때마다 남몰래 했던 게임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스타일 빙고’. 아디다스 삼바나 어그 부츠, 노스페이스 패딩, 아크네 스튜디오의 체크 머플러 등 유행하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마음속으로 ‘빙고’를 외치는 게임이었죠. 그해 겨울, 얼마나 많은 ‘빙고’를 달성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다 이렇게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룬 글은 많습니다(참고로 2024년 브리티시 <보그> 6월호에 실린 줄리아 홉스의 글은 정말 훌륭합니다. 틱톡 알고리즘이 우리 옷차림을 얼마나 지루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기술 산업 종사자부터 문화 비평가까지, 다양한 이들의 의견과 함께 깊이 분석했죠). 반대로 캡슐 옷장을 만들거나 ‘개인적인 스타일’을 좀 더 함양하자는 의식적인 움직임도 일어나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조차 획일화는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스타일’이라는 개념도 결국 그토록 저항했던, 무미건조한 소셜 미디어 속 스타일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됐습니다. 상품화된 미학 중 하나가 되어버린 거죠. 대부분의 패션이 그렇듯이요”라고 지난해 브리티시 <보그> 에디터 다니엘 로저스가 쓴 것처럼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브레인 로트(Brain Rot, 온라인 콘텐츠 과소비로 인한 사고력 및 집중력 저하) 시대인 지금, 심지어 ‘개인적인 스타일’이나 ‘나를 위한 옷 입기’까지 하나의 유행어처럼 느껴지는 이 시점에서, 어쩌면 진짜 멋진 스타일은 스크린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요? 비결은 그냥 ‘로그 오프(Log Off)’일지도 모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온라인 세상에 아예 발 들이지 말자는 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티셔츠와 청바지조차 ‘캐주얼코어’라고 거창하게 포장할 틱톡 인플루언서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자는 소리죠.
오프라인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우리보다 더 쿨하고 멋지다는 생각은 그리 새롭진 않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고요. 하지만 스타일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소셜 미디어를 그만두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안하거나 막막할 수 있죠. 지금 유행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길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마이크로 트렌드를 성실하게 따르는 이는 패셔너블하거나 스타일리시하지 않습니다. 문밖을 나서면 핀터레스트로 도배되다시피 한 스타일을 거리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칩니다. 이제 정말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더군요. 최소한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서브컬처를 찾아나서거나요.

알고리즘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마이크로 트렌드를 비판한 것도 제가 처음이 아니고요. 이런 종류의 반발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벌써 올해의 흐름도 과소비에서 ‘반’트렌드로 흘러가고 있죠.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의 바잉 책임자 닉 트랜(Nick Tran)은 “사람들은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보고 듣죠. 그래서 오히려 자신만의 ‘느낌’을 갖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이게 바로 우리를 ‘개인적인 스타일’로 돌아가게 한 이유고요”라고 말합니다. 그럼 대체 ‘개인적인 스타일’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닉은 “제 생각엔 사람들은 스스로 그걸 만들어나가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주도적으로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거요. 이거야말로 신선한 생각이죠.
물론 온라인 트렌드로부터 ‘로그 오프’한다고 해서 영감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저는 길거리나 파티에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인스타그램에서 멋져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옷이 몸을 어떻게 감싸고 있는지, 그게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지가 더 중요하죠. 결국 진짜 멋진 사람들은 블록코어가 뭔지도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마이크로 트렌드에 반응할 만큼 온라인 세상에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거든요.
추천기사
-
패션 아이템
'혼돈' 그 자체인 청바지 트렌드를 평정할 단 하나의 데님!
2025.04.11by 안건호, Paulina Berges
-
웰니스
영양사들이 '이 요거트'를 주의하라고 합니다
2025.03.30by 김현유, Lorena Meouchi
-
패션 아이템
2025년 봄여름을 물들일 상쾌하고 생기 넘치는 운동화 컬러!
2025.04.08by 황혜원, Lucrezia Malavolta
-
셀러브리티 스타일
브라 톱 활용의 귀재, 크리스틴 스튜어트
2025.04.09by 오기쁨
-
패션 뉴스
‘보그 살롱: 워드로브 with COS’에 초대합니다!
2025.04.08by VOGUE
-
라이프
집에서 나쁜 냄새 없애는 가장 기본적인 비법 7
2025.03.10by 주현욱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