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다, ‘모나 하툼 개인전’
전 세계 미술계를 선도하는 해외 유명 갤러리의 전시를 서울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건 컬렉터뿐만 아니라 미술 애호가에게도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물론 벌써 몇 년 전부터 가능했던 일이긴 하지만,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선보이는 여성 아티스트 모나 하툼(Mona Hatoum) 개인전을 보면서 이렇게 변화한 것이 더욱 실감 나더군요. 모나 하툼은 레바논 베이루트 출신의 예술가로,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1975년 이후 런던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왔고요. 이번 전시가 1995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화이트큐브에서 열리는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라는데, 덕분에 그동안 해외 미술관이나 비엔날레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었던 서울 관람객들이 모나 하툼의 작업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군요.

모나 하툼의 작업은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감각적이며, 동시에 시적인 걸로 유명합니다. 장소 특정적 설치미술, 조각, 비디오, 사진, 드로잉 등 매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데, 초창기인 1980년대에는 강렬한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으로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9년부터 최근까지 탄생한 다채로운 작업을 20점 정도 선보이는데요. 특히 초기작 중 하나인 ‘무제(휠체어 II)(Untitled (wheelchair II))'(1999)는 매우 반가운 작품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휠체어를 변형한 작업으로, 손잡이 대신 날카로운 톱날이 장착되어 있죠. 우리가 생각하는 돌봄과 보살핌의 사물을 위협적인 사물로 변신시킨 건데요. 이런 방식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정형화된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모나 하툼의 작업 세계는 은유와 대조, 그리고 역설로 가득합니다. 이를테면 신작 ‘분리(Divide)'(2025)는 평범한 칸막이 형태에 부드러운 패브릭 대신 금속 철조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물(의약품 캐비닛 VI)(Still Life (medical cabinet) VI)'(2025)은 흔한 모양의 선반 안에 어여쁜 색의 유리로 제작된 수제 수류탄을 진열해두었죠. 이 역시 앞에서 얘기한 휠체어 작업과 같은 어법으로, 보호와 위협이라는 모순된 요소를 한데 엮어서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아 만든 ‘헤어 네크리스(Hair Necklace)'(2025)는 또 어떤가요. 1995년 프랑스 보르도의 까르띠에 매장 쇼윈도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이번에 소개되는 작업은 2025년 신작이라고 하네요. 하이패션 주얼리가 된 작가의 머리카락 사이, 상반된 촉감과 의미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공간에 특화된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모나 하툼은 이번에 서울 강남 한복판에 인상적인 공간을 소개합니다. 아랍어로 ‘불을 밝히는 등’을 의미하는 ‘미스바(Misbah)'(2006~2007)가 관객들을 매혹하는데요. 황동으로 제작한 이 조명에는 사람, 즉 군인의 실루엣이 새겨져 있어요. 등이 회전하면서 벽에 새겨진 그림자가 움직이고, 마치 수많은 군인들이 행군하는 것 같은 풍경이 그려집니다. 저는 이 작업을 보면서, 모나 하툼이 꽤 단순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아는 베테랑 작가라는 걸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레디메이드적 접근 방식과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날카롭게 살아 있는 정치 의식 등이 만나 직관적이면서 아름다운 작업을 완성해냈습니다. 모나 하툼만의 언어가 내내 제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 4월 12일 전시가 끝나기 전 몇 번이라도 더 가보고 싶어집니다. 역시 더 보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미덕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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