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구찌행이 의미하는 것
구찌가 뎀나를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로 맞이합니다. 사바토 데 사르노의 후임자가 될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던 모든 디자이너 중, 가장 당연한 선택지는 뎀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구찌로 향할 것이라는 소문을 믿는 이는 드물었죠.

구찌가 뎀나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부터 살펴봅시다. 구찌, 그리고 뎀나가 2015년 10월부터 이끌어온 발렌시아가는 모두 케어링 그룹 소속이죠. 케어링 내부 인물들과 친숙한 뎀나는 큰 어려움 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10년 동안 발렌시아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고요. 뎀나는 데뷔 컬렉션부터 독특한 실루엣의 파카와 수트는 물론, 크리스마스 캔디를 연상시키는 타이츠를 선보이며 혁명의 시작을 알린 바 있습니다.
구찌가 뎀나를 선임한 것이 당연하면서도 의외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2014년 동생 구람 바잘리아(Guram Gvasalia)와 함께 베트멍을 론칭했을 때부터, 뎀나를 상징하는 단어는 전복과 도발이었기 때문이죠. 지난주 2025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인 뎀나는 백스테이지에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머리 위에 의자를 올리고, 그걸 ‘입는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해 경고하거나(2022 가을/겨울 컬렉션), 혼란스러운 소셜 미디어 속 모습을 시각화(2024 가을/겨울 컬렉션)하는 등 정치·사회적 메시지 던지는 걸 즐기는 디자이너이기도 하죠. 알레산드로 미켈레 시절의 구찌 역시 웅장한 쇼를 선보였지만, 그의 쇼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보그 런웨이의 집계에 따르면 구찌의 쇼는 2025 가을/겨울 컬렉션 중 ‘최다 조회 수’ 3위를 달성했습니다. 정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찌의 매출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떠난 2022년부터 확실하게 감소하고 있죠. 결국 뎀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매출 회복’입니다. 생 로랑과 셀린느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뤄낸 에디 슬리먼이 구찌로 향할 것이라는 소문이 유력하게 돌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구찌의 CEO, 스테파노 칸티노(Stefano Cantino)와 케어링 부CEO 프란체스카 벨레티니(Francesca Bellettini)는 뎀나를 선임하며 그의 창의성에 도박을 걸었습니다. 뎀나는 웅장한 쇼를 선보이고, ‘팔릴 만한’ 백을 만들어내는 데 그 누구보다 능한 디자이너거든요. 그의 데뷔 컬렉션은 사바토 데 사르노가 선보였던 정숙한 무드의 컬렉션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뎀나는 발렌시아가의 2025 가을/겨울 컬렉션이 ‘일반적인 옷에 대한 탐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쇼의 시작을 알린 것은 클래식한 수트 룩이었죠. 평소의 뎀나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선택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던 뎀나가 이를 일종의 ‘예행연습’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죠. 혹은 구찌 데뷔 컬렉션을 선보이기 전, 자신의 디자인 언어를 새로이 정립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고요.
뎀나는 쇼 이후 “코스튬(Costume, 의상)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나를 꿈꾸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꿈꾸게 만드는 단어는 ‘수트’다. 가장 어려운 동시에,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영역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요란스러운 옷이 아니라, “이 코트는 정말 최고예요, 벌써 5년이 넘도록 입었죠!”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옷을 선보이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뎀나의 말은 사바토 데 사르노가 2023년 9월, <보그> 인터뷰에서 남긴 코멘트를 연상시킵니다. 당시 그는 “제 옷장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랑하지만, 요즘 구찌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아이템을 선보이고 싶었죠”라며 자신의 데뷔 컬렉션을 예고했죠.
벨레티니는 뎀나를 선임하며 그를 “지금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라 칭했습니다. 현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구적인 프로젝트를 지휘한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죠. 그는 뎀나가 구찌 특유의 창의적 에너지를 부활시킬 적임자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번 혁명을 일으킨 디자이너가 10년 뒤 또 다른 혁명을 주도하는 게 가능할까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구찌가 뎀나의 비전을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찌의 매출은 발렌시아가의 약 5배 규모로, 뎀나는 자신의 커리어 사상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2025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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