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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소문이 많은 여자는 어떻게 소문을 극복하는가

2025.03.17

‘폭싹 속았수다’, 소문이 많은 여자는 어떻게 소문을 극복하는가

“너 요즘 소문이 안 좋아”라고 조언하는 사람을 주의하라는 말이 있다. 그가 바로 당신의 소문을 내는 사람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아이유)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을 게 분명하다. 그녀는 제주의 작은 마을에 거대한 소문을 일으킨 여자다. 미완에 그친 관식이와의 야반도주 사건은 “제주 오양, 현해탄 건넌 열여덟 순정, 예의지국 10대 일탈 이대로 괜찮은가!”란 제목으로 신문에 났고 그녀는 ‘천우 보살네 장손을 주저앉힌 요망한 아이’란 소문에 휩싸인다. ‘무단가출 및 풍기 문란’이란 명목으로 퇴학까지 당한 후에도 소문은 잦아들지 않는다. <폭싹 속았수다> 2·3화는 그녀가 이 소문 때문에 어떻게 고통받는지, 그리고 결국 이 소문을 어떻게 정면 돌파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런 소문에 시달리는 여자가 애순이만 있었던 건 아니다. <폭싹 속았수다>의 임상춘 작가가 그려온 여자들은 대부분 소문이 안 좋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동백꽃 필 무렵>(2019), <쌈, 마이웨이>(2017), <백희가 돌아왔다>(2016) 등 임상춘 작가의 전작을 좋아했던 입장에서 <폭싹 속았수다> 1막은 사실 그리 새로울 게 없는 구성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힘겨웠던 여자가 있고, 그녀에게 오랫동안 순정을 바쳐온 남자가 있으며, 그들의 삶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지랖 넓은 동네 사람들이 있다. 그녀가 소문에 시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는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술과 밥을 판다는 이유로 소문이 많은 여자다. 동네 남자들이 모두 동백이를 좋아해서 더 큰 소문에 시달린다. <쌈, 마이웨이>는 도시 배경의 청춘 드라마지만, 이 작품에도 소문이 있는 여자가 있었다. 한때 유명한 배우였지만, 방송국의 악의적인 보도에 오명을 쓰고 사라져야 했던 황복희(진희경)다. <백희가 돌아왔다>의 백희는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와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여자다. 학창 시절 동네를 장악한 ‘일진’이자 인기 스타였던 그녀는 ‘빨간 양말 비디오의 주인공’이라는 소문을 피해 고향을 떠났고, 18년 만에 돌아와 다시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설정이다. 임상춘 작가의 여자들은 더 이상의 소문에 휩싸이기 싫어 모습을 감추고 살지만, 결국에는 소문을 정면 돌파하며 성장한다. 이들에 비하면 애순이의 정면 돌파는 빠른 편이다. 소문 때문에 아이가 둘 딸린 남자의 재취로 들어가려던 그녀는 빗길의 방파제를 달려 사랑을 되찾는다. 그렇게 소문은 추억이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그처럼 <폭싹 속았수다> 1막은 임상춘 작가의 유니버스를 요약한 내용이었다. 총 16부작인 이 이야기에서 더 많은 부분은 애순이의 엄마 광례와 애순이의 딸 금명이에게 할애된다. 1960년대부터 (아마도) 1990년대까지 이어지는 할머니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현실 투쟁을 그리는 게 <폭싹 속았수다>의 줄기일 것이다. 애순이 엄마 광례(염혜란)도 사실 애순이 못지않은 소문의 여자다. 남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남편 잡아먹은 X’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아이가 딸린 새로운 남편과 살게 되자 이번에는 ‘아이들마다 성씨가 다르다’고 수근댄다. 애순이와 광례가 다른 점이 있다면, 광례에게는 애순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귀신이 무섭나? 자식이 무섭지.”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먹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는 광례에게 소문은 시답잖은 문제다. 애순이나 광례만큼은 아니지만, 애순이의 딸 금명이도 소문을 낳기는 마찬가지다. 불법 과외 때문에 자신을 데리러 오는 고급 세단에 올라탄 금명의 모습은 친구들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하지만 금명이도 애순이 같은 엄마와 관식이 같은 아빠가 있는 게 소문보다 더 큰 문제다. 자신의 꿈을 지탱해줄 수 없는 가난한 부모라는 것,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라는 것, 그걸 알아서 답답한데 그렇게 답답해하는 자신이 싫다는 것. <폭싹 속았수다>는 3대에 걸친 여성들이 각자의 시대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묘사한다. 다른 듯 보이지만, 비슷하다. 사실은 같은 세상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컷. 유은미/넷플릭스 ©2025

2025년 3월 17일 현재, <폭싹 속았수다>는 3막과 4막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건 금명이의 현재다. 그동안 몰랐던 부모의 인생에 조금씩 접근해가던 금명이는 결국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이 드라마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은 금명이의 현재는 광례와 애순이의 삶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칠 수도 있고, 결국 그녀도 엄마가 되어 위 세대와 비슷한 삶을 살 수도 있다. 2막 8화에는 금명이의 현재를 상상하게 하는 중요한 대사가 있었다. 누명을 쓴 금명이를 도와준 어느 졸부 집의 가사도우미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 덕도 고대로 업도 고대로 간다이.” 어느 쪽이든 애순이와 똑 닮은 딸 금명이는 애순이처럼 현실의 파고를 극복할 것이다. 광례와 닮은 딸 애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이 드라마도 “명치에 든 가시처럼”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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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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